제 5화. 섭섭해진 뉴스야
아홉시.
마루에 걸려있었던 괘종시계가 둥-하고 시간을 울리면, 할머니는 이불을 깔고 뉴스를 틀었지. 그리곤 한 팔에 나를 뉘여 어깨를 토닥토닥 하며 앵커들의 그 딱딱한 발음 사이로 흘러나오던 세상 이야기를 듣곤 했었어. 나한테 뉴스는 맛없는 종합캔디 같았어. 계피맛, 박하맛 뭐 이런 거만 가득 들어있는 촌스런 종합캔디. 딱 그거였어. 그래도 그때 할머니의 토닥임이, 쪼물닥거리는 할머니 손의 주름살이 좋아서 뉴스 하는 9시를 꾹 참았던 거 같아.
작년 11월부터 MBC의 뉴스데스크가 시간을 옮겼어. 아홉시에어 여덟시로. 뜬금없이 여덟시라니? 그 한시간의 간격 속에 수 많은 계산과 이윤들을 들어가 있겠지만, 계산기를 버리고 딱 먼저 든 생각은 '섭섭해'였어. 아홉시 뉴스가 주는 공정성, 신뢰성 뭐 그런 느낌들이 깡그리 사라져 버린 거 같았거든.
오늘도 벅찬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습관적으로 티비를 켰어. 맥주 한 캔을 따면서 그 앞에 앉았는데,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MBC의 편성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더라. 시청률, 광고 등 숫자로 매겨지는 가치 때문에 옮겨진 여러 프로그램들의 내용도 영... 그랬어.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마시고는 티비를 껐어. 적적해진 방안에 홀로 앉아 있는데 예전 9시 뉴스가 그리워지드라. 어떤 풍파에도 MSG를 첨가하지 않던, 그 촌스러운 뉴스의 맛이 보고 싶어졌어.
<뉴스데스크>는 여전히 브라운관에 나오는데, 어째서 그 맛은 추억이 됐을까?
어린 아이에게 뉴스는 그리 매력적인 프로그램이 아냐. 열시 드라마를 기다리기 위한 하나의 관문(?)정도로 생각되지. 보기 싫어도 부모님, 혹은 집안 어른의 영향으로 봐야 하는 거니까. 나도 그러다 조금 조금씩 뉴스를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 마치 신문의 TV 편성표만 보다가 스포츠면을, 그 다음에 문화면을 그러다 정치를 경제를 칼럼을 보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지.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출동과 같은 코너들 속에는 잘못된 걸 잘못됐다 꼬집을 수 있는 정직함과 용기가 있었어. 그리고 그건 맛은 없지만, 필요한 거였지. 보도자료로 돌리는 이야기 외에 그 속의 진짜 자료를 찾기 위해 카메라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나에게 아홉시는 점차 용감해지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
이제 용기가 불끈하고 솟아났던 9시은 없어졌어. 공정방송을 지키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이 떠난 뉴스에는 대본을 읽는 남녀 한쌍이 앉아 있고, 정부를 위한 홍보 소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됐지. 좋아하던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 그렇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걸 보면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섭섭함을 뭐라 이야기 할 지 모르겠네.
지금 나의 아홉시는 매일이 방송사고인 것 같아.
출처 : MBC 뉴스데스크
저녁 8시 10분.
10분동안 2013년의 뉴스데스크를 봤어. 정치, 사회에 대한 굵직한 뉴스들이 사라진 메인 자리에 육류 섭취량에 대한 정보류의 뉴스가 차지를 했더군. 그리고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특집으로 한국인의 식습관에 대한 기사가 이어졌어. 생생정보통인지, 뉴스데스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아이템들을 보면서 뉴스의 재미를 잃었구나 싶더라. 재미없어. 드라마는 극적여야 재미가 있고, 코미디는 웃겨야 재미가 있고, 뉴스는 냉철한 시선이 있어야 재밌는거 아냐?
드라마에게 밀려 자리를 뺏긴 뉴스도 섭섭하겠지만,
뉴스에게서 그 어떤 소식도 들을 것 없는 나도 정말 섭섭하다구.
정선재 ㅣ 봄비가 즐거운... 우르르 쾅쾅, 쏴아쏴아. 봄비가 즈..즐거..운.. 쏴아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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