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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손녀방송국, 채널 223 ] 매체

제 2화. <남자셋, 여자셋><뉴논스톱> 그런 집은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제 2화. <남자셋, 여자셋><뉴논스톱> 그런 집은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 이제 시작이야.

계절학기의 시작. 토익의 시작. 알바의 시작. 다이어트의 시작...

여름방학과 함께 오는 무수히 많은 시작들 중에 가장 큰 일이 있다면,

 

“집을 구해야 한다는 거!!! >_<;;; ”

 

학기의 종료와 함께 집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이 더운 날에 내 발품 팔아가면서 이 곳 저 곳 돌아다녀도 나 하나 누울 맘에 쏙! 드는 집은 찾기 어려워.구조가 마음에 들면 신축이니, 풀 옵션이니 뭐다 해서 방값이 너무 세고, 이래저래 주머니 사정 고려해서 찾아 간 집은 휑~ 하니 아무것도 없어. (덩그러니 방 안에 서 있는 내가 가구요, 가구가 나요... 뭐 그런. 쳇.)

 

 

 

 

 할머니, 기억나?

96년부터 99년까지 했던 <남자셋 여자셋> 보면서, 할머니가 대학생 되면 다 저렇게 살 수 있다면서 그랬잖아. 음... 근데... 할머니, 그거... 거짓말이었구나. 살면서 꼭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의식주라고 배웠는데, 지금 그것부터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굴려야 하는 거잖아. 할머니의 거짓말뿐만 아니라, 뭔가 예전 청춘 시트콤들한테도 낚인 기분이야. <남자셋 여자셋>의 하숙집은 이층집에 으리번쩍했고, <뉴논스톱>의 기숙사는 휴게실까지 완벽했지. 더블 침대가 놓이고도 뛰어 다닐 만큼 넓은 방에, 형형색색의 예쁜 벽지, 아기자기한 인터리어 소품들까지. 나는 정말 그런 곳에서 생활하며 캠퍼스의 낭만을 그려가는 게 대학생인 줄 알았어.

 

 

근데, 이게 뭐야?

기숙사라고 들어왔더니 선풍기 하나 둘 곳 없고, 그마저도 학기가 마치며 이 한 몸 누일 곳을 찾아 전전긍긍해야 하니. 에휴~. 자취나 하숙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것 없더라고. <남자셋, 여자셋>의 그런 하숙집? 할머니! 단언컨데, 그.런.집.은.없.어! 10평이 채 되지 않는 방 안에 책상과 침대 하나가 다지. 그리고 그 위에 책들이 층층이 쌓여있고, 화장품들이 널부러져 있어.

이게 예전 청춘 시트콤 속 대학생활의 모습과 현실의 차이라고나 할까?

 

 

 

 

 

하긴, 테레비가 많은 환상을 낳는 가전제품이긴 하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디즈니의 세계만큼이나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게 테레비니까.

 나도 그런 꿈과 희망과 환상을 가슴에 품으며 지긋지긋한 공교육을 잘도 버텨왔는데....

 지금 우리는 예전 청춘 시트콤 속 화려한 집들 대신 전봇대에 붙어 있는 ‘500/35 풀옵션’ 이런 종이 쪼가리들을 살펴보고 있어.

예전에 할머니가 ‘집은 온전한 내 것이라서 편안하다.’고 했었잖아. 기억나? 왜~ 퇴원하면서 안 보여도 내 집이 제일 좋다고 그랬잖아. 음~ 요즘, 할머니의 그 말이 왜 계속 맴도는지 모르겠어. 학교 북문부터 구정문 까지 몇 번을 돌고 돌아 고른 나의 집에(‘방’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겠지만) 들어가도 그 어떤 편안함이 느껴지지가 않아서 그런가? 하긴, 6개월 후, 1년 후 나는 또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더 괜찮은 집을 찾아야 할 테니까, 지금 누워있는 이곳이 온전한 나의 것, 편안한 나의 집으로 느껴지지 않아. (근데, 시간이 지나고 지낼 방을 찾는데 도가 텄는데도 더 나은 집에 살지 못하는 건 왜일까? )

 

 

할머니, 요즘 테레비에선 청춘시트콤이 사라졌다!

 

700회라는 기록적인 방송횟수를 남기며 청춘 시트콤의 신호탄을 날렸던 <남자셋 여자셋>을 시작으로 저녁 일곱시는 대학가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들이 편성 됐었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아.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논스톱> 시리즈로 그 전성기를 이어갔었는데 말이야. 음,,, 생각해보면 <논스톱4>(2003~2004)에서 청춘물이 사라질 조짐을 보이긴 한 것 같긴 해. 일단, 집이 사라졌거든! 이층의 멋드러지는 하숙집을 대신해서 벽돌을 층층이 얹은 밴드 연습실이 주 무대가 됐지. (물론, 한 일화 당 몇 컷 나오는 기숙사는 여전히 좋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극중 인물 앤디가 늘 버릇처럼 하던 대사가 있어.

 

“조용히 좀 해주세요, 조용히 좀!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한 이때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시트콤에서 조차 그늘진 청년의 현실이 드리워지면서 청춘시트콤을 점차 자취를 감쳐 간 것 같아. 물론 <논스톱>시리즈 이후에도 <레인보우 로망스>와 같은 청춘 시트콤을 시도하긴 했는데... 조용히 사라졌지. 누가 보겠어. 일곱시에 학원 가야하고, 알바 가야하고 바쁜데. 게다가 그걸 보고 웃기엔, 지금 우리의 청춘은 시트콤이 아닌걸.

 

 

110만 실업시대라고 하더라.

대학만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집에서 청춘 즐기며 지낼 거라고 해놓고는, 혹독한 경쟁시스템 속에서 헥헥-거리는게 조금은 억울하기도 해. 청춘의 노래 대신 스펙의 숫자들이 떠다니는 캠퍼스에 서서 또 다시 계산기를 두들겨 봐. 내 학점, 토익점수, 경쟁률...

또 다른 숫자들을 얻기 위해 또 가방을 꾸려 밖으로 나가겠지? 그렇게 얻은 숫자들이 내 이름 위로 자리를 잡으면 나는 멋진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할머니,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꿈과 성장 대신 경쟁과 서바이벌의 서사가 자리 잡은 이천십이년 지금,

이제는 테레비 안에서도 나오지 않는 멋진 기숙사, 하숙집, 자취집을 그리워하며, 나의 가을 겨울을 함께 할 집을 알아보러 가야겠어.

 할머니, 나 다시 더 좋은 나의 집을 위해, 발품 팔러 간다~!

 

 

  정선재  ㅣ 자칭 타칭 티비 빼꼼이, 요즘은 할일이 장맛비처럼 쏟아져 티비 앞에 못 앉아 있는게 서러운 스물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