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아빠, 어디가?> 2013년 티비가 주는 최고의 힐링은 순수였어.
사람들이 티비를 켜는 시간은 언제일까?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할 때도 있겠지만, 밖에서 찌들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달래고 싶은 시간이 아닐까 싶어. 퇴근 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텅 빈 집 안 가득 티비 소리를 채워 넣는 것처럼 말이지. (뭐. 할 일없는 주말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들 수도 있지만. 그것도 휴식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2012년 작년 한 해 동안 티비 속의 핫 키워드는 단연코 '힐링'이었던 것 같아. 실시간 리트윗의 속도로 빠르게 달리는 사회에서 이제 티비도 구시대적 미디어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네. 티비가 전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 고철덩어리... 사람에게 더 다가가려고 하나봐.
작년 브라운관을 휘젓고 다녔던 '힐링'이라는 단어는 2013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애. 작년과의 차이점을 꼽으라면 시청자들에게 힐링을 전하는 방법들이 더 다양해진 정도?! 토크쇼에서 고민이나 트라우마를 털어놓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던 것이 2012년식 힐링이라면, 아무것도 모른 채 카메라 속으로 들어온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되는 것처럼 요즘은 시청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더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앞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서 지금 내가 <아빠, 어디가?!>의 아이들한테 푹 빠져 있다는 걸 눈치 챘을거야. 맞아. 후의 애교를, 준수의 엉뚱함을, 준이의 의젓함을, 지아의 귀여움을, 민국이의 눈물을(^^) 보면서 어떻게 이모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있겠어. 화려한 경력의 능숙한 예능인들도 긴장하는 주말 저녁 예능에서 아무 생각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잃어버렸는 줄만 알았던 하얀 도화지 같은 세계가 다시 맘 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어.
"과거는 잊어. 우리한테는 미래가 있잖아!"
이 말, 어떤 유명인사가 전하는 희망 메시지가 아냐. 이제 여덟살 되는 윤후가 한 말인데, 비밀낚시를 하면서 예전 아빠한테 섭섭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됐고, 이에 아빠 윤민수가 미안함을 보이자 윤후가 쿨하게 한 말이야. 어린 꼬마가 미안해하는 아빠를 달래는 모습이 재밌고 귀여워서 깔깔 웃으면서도 '아차!' 싶더라고. 철부지 아이들이 전하는 순수함 속에 제법 묵직한 삶의 정답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사회의 묵은 때들로 덮혀 이리저리 재고 따지고 하면서 정작 보지 못했던 가장 근본적인 삶의 답들. 그런 것들을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면서 웃으면서도 괜히 뜨끔뜨끔하게 된다니까.
내가 고 3때였나? 병원 때문에 할머니가 서울 큰 집에 잠시 있었을 때 있었잖아, 그때 코앞에 있는 물건도 흐릿하게 보이면서 베란다에 서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노는 꼬마들을 보고 있었던 거 생각난다. 내가 큰 소리로 불러도 난간을 붙잡고 그 아이들을 보고 있었지. 그때는 앞도 잘 안 보이면서 왜 그렇게 아이들을 보며 서 계실까 했는데……. 뿌옇게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를 조심스레 걸어나가고 있는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해.
공정하고 깨끗한 보도를 잃은 티비에게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나네. 피디 아저씨가 정해둔 관계와 상황이 아닌, 아이들이 자라면서 엮어내는 관계와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나, 성났던 마음이 눈 녹 듯 녹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미련하게 다시금 마음에서 싹이 필 것 같아.
정선재 I 가을과 겨울을 건너 다시 돌아 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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