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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규모의 건축 1 백화점을 가려면 일단 차를 사야된다. 백화점 탐방 같은 장거리여행을 준비함에 있어 - 가방따위 무거운 짐은 차에 던져두고 - 최대한 가벼운 차림을 갖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는 뚱뚱한 패딩이 대단한 유행을 탔지만, 백화점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멋쟁이들은 겨울에도 반팔패션을 고집한다. 여름 무렵에야 한결 낫지만, 가을·겨울철 날이 쌀쌀하다고 긴팔옷을 입거나 등에 가방이라도 지고 가면 낭패를 보기 쉽다. 이따금씩 겁없이 완전 무장을 갖추고 백화점을 방문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예외 없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듯한 답답함을 경험하고서야 반팔의 교훈을 얻는다. 등에서는 땀이 베어나오고 얼굴에는 촌병걸린 사람처럼 홍조가 이는, 무자비한 백화점의 가르침. 붐비는 사람들이 유난히 부담스럽고,.. 더보기
도시의기억, 기억의도시 1 만날 다니는 길이 지겨워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마이 갓. 생각지도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 길을 따라 다리 건너까지 친구를 바래다 주고, 친구는 다시 나를 바래다주고. 그렇게 몇번을 되풀이 했던. 훈훈했던 모범 어린이 시절의 추억. 우리동네에는 내가 세살 때 이사를 왔다. 그 때는 또랑 하나 지나던 촌구석이 큰 길도 나고 빌딩도 앉았다. 또랑 옆에는 폭신한 산책길도 깔았다. 참 마이 컸다 우리 동네도. 오늘 내일이 다르게 변하는 중에도 동네 구석구석은 옛날 모양이 남았다. 새 길, 새 집들 사이에 낯익은 장소가 언뜻거린다. 곳곳에 어릴 때 담가둔 기억이 익어간다. 김치같다. 익어가는 모양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 시큼하고 짭쪼롬하고. 꼬시고, 맵고. 단 맛도 나는 것 같고. 이러니까 동네가 새 .. 더보기
콘크리트 이야기 1. 저 자리는 망하는 자리다. 얼마 전까지는 식당이었는데, 다시 전자담배를 파는둥 어쩌는둥 하더니 또 가만있는 집 옷을 벗긴다. MDF판넬을 들어 낸 자리에 생짜배기 콘크리트 벽이 드러난다. 벌써 세 번째, 저 집 맨살을 본다. 이쯤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여지없이 신나 냄새를 풍기며 뚱땅거려 샀는다. 샷시를 갈고, 유리에다 새 시트지를 붙인다. 톱 소린지 전기꽂아 돌리는 사포 소린지, 웨엥- 하는 소리도 이제는 익숙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또 다른갑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멀쩡한 포장을 뜯는 모양을 보면 아깝다. 내 돈 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는 하난데. 위아 더 월드. 뜯어진 벽지와 타일, 합판들이 가게 앞에 쌓인다. 페인트 냄새에 코를 킁킁대면서 끊임없는 새단장의 까닭과 그 부질없음.. 더보기
건축 이야기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아는 척 할 때 써먹기 좋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건축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정색하면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대부분은 유익한 정보와 기술이었으나, 건축에 대해서만큼은 아쉬움이 남는다. 혹,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들어본적 있는가?(아직 네트워크 마케팅을 잘 모른다면 얼른 검색창을 열라! 이 글보다 훨씬 유익한 정보가 기다리고 있다.) 피라미드처럼 위에서 아래로 - 선생님들은 선배들에게, 선배는 후배들에게- 건축에 대한 환상을 전하는 그 ‘네트워크’의 사이에서, 순진한 나는 건축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에게 '문명' 이라는 것은, 건축과 기타 ‘시다바리’들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세상이 흥해도 건축의 공이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