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향한 환상 / 안도다다오 / 빛의교회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아는 척 할 때 써먹기 좋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건축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정색하면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대부분은 유익한 정보와 기술이었으나, 건축에 대해서만큼은 아쉬움이 남는다. 혹, 네트워크 마케팅 1이라고 들어본적 있는가?(아직 네트워크 마케팅을 잘 모른다면 얼른 검색창을 열라! 이 글보다 훨씬 유익한 정보가 기다리고 있다.)
피라미드처럼 위에서 아래로 - 선생님들은 선배들에게, 선배는 후배들에게- 건축에 대한 환상을 전하는 그 ‘네트워크’의 사이에서, 순진한 나는 건축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에게 '문명' 이라는 것은, 건축과 기타 ‘시다바리’들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세상이 흥해도 건축의 공이고, 망하더라도 건축의 책임이었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전쟁 없는 세상, 아무튼 어떤 신세계가 열리게 된다면 그 변화의 주인공 또한 건축이 되어야 했다.
이런 믿음은 학교를 벗어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나이를 쪼끔 더 먹고, 이마가 넓어지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는데, 한동안 짝사랑하던 건축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고 하면 좋을까. 그러다가 학교 밖에서 만난 건축에 대해서는 실망과 배신감까지 경험하게 된다. 아니 건축이 뭐라고...
결국은 돈이다. 그동안의 콩깍지를 벗고 깨달은 것은, 이 ‘돈주의’ 세상에서 건축 또한 돈의 다른 모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없이 사는 사람에게 건축은 500에 30짜리 월세방 이야기, 먹고 살만해지면 전셋집 이야기가 되었다가, 열심히 벌고 아껴 살다 보면 브랜드 아파트로 이야기의 등급이 오른다. ‘사’짜 붙은 어르신 쯤 되면 건축은 아예 ‘부동산’으로 자리 잡는다. 2
돈과 건축의 긴밀한 관계, 그 사이에 학교에서 배운 고상한 이론이나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아니, 있다... 만, 아주 쬐끔. 예를 들면 물은 잘 나오는지, 보일러는 도시가스로 돌아가는지, 도배는 새로 하는지 정도의.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라면 봉다리의 조리 예 같은 건축을 배운 것이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버섯에 소고기, 실고추가 올라가 알록달록했던 그것이, 이제 ‘물이 끓으면 면과 스프를 함께 넣고 5분간 더 삶으세요.’의 수준으로 전락. 아, 싫다.
내가 이런 상황을 싫어하는 것은 건축을 향한 믿음이 무너진 것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여럿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내가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내 이웃이 돈이 없기 때문이고, 당신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모양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가 사치스럽게 여겨지고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러니 사람들에게 집은 사물함이다. 사우나고, 모텔이다. 하루를 마치고 들어오면 씻고, 자고, 간단히 요기하고 다시 집을 나선다. 시간이 나면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를 켠다. 간신히 몸이 머물다 가는 이 10평 남짓의 공간에는 마음이 앉을 자리가 없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 메마른 풍경이 못내 마뜩잖다. 그래서 글을 쓴다. 라면봉지 조리 예 같은 건축이 힘들면 냉장고를 뒤져서 뭐라도 넣어보자고. 파 송송 계란 탁! 3
알맹이가 돈이라면 건축은 껍데기일 뿐이다. 나는 건축이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삶과 어우러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건축의 알맹이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 같이 사는 삶. 그런 삶이 곧 건축이면 좋겠다. 껍데기는 가라. 4
몸이 쉬듯, 마음이 쉴 자리를 만들자. 지친 마음에 온기가 들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구름이 어떻게 뭉글거리는지 내다볼 수 있게 창을 내자. 창을 내어 새 공기와 해를 방에 들이자. 숨이 가쁘도록 돈을 좇더라도, 한 번씩은 앉아 갈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 앉아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 차를 마시고 봄날을 향해 가자, 삶이 곧 건축이 되는.
브로콜리 너마저 / 유자차
바닥에 남은 차가운 껍질에 뜨거운 눈물을 부어
그만큼 달콤하지는 않지만 울지 않을수 있어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젠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제가 문득 너무 힘들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
그때는 좋았었잖아 지금은 뭐가 또 달라졌지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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