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자리는 망하는 자리다. 얼마 전까지는 식당이었는데, 다시 전자담배를 파는둥 어쩌는둥 하더니 또 가만있는 집 옷을 벗긴다. MDF 1판넬을 들어 낸 자리에 생짜배기 콘크리트 벽이 드러난다. 벌써 세 번째, 저 집 맨살을 본다.
이쯤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여지없이 신나 냄새를 풍기며 뚱땅거려 샀는다. 샷시를 갈고, 유리에다 새 시트지를 붙인다. 톱 소린지 전기꽂아 돌리는 사포 소린지, 웨엥- 하는 소리도 이제는 익숙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또 다른갑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멀쩡한 포장을 뜯는 모양을 보면 아깝다. 내 돈 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는 하난데. 위아 더 월드.
뜯어진 벽지와 타일, 합판들이 가게 앞에 쌓인다. 페인트 냄새에 코를 킁킁대면서 끊임없는 새단장의 까닭과 그 부질없음을 곱씹는다.
닭장 혹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 까만 뭉게구름을 뿜어대는 톱날모양의 지붕아래 웅성거리는 기계들. 그리고 콘크리트. 콘크리트. 콘크리트.
고혈압, 당뇨에 이어 현대인은 ‘콘크리트 혐오증’을 앓는다. 그래서 어떻게든 벽을 둘러막고 콘크리트를 숨기려 애쓴다. 타일과 장판을 깔고, 벽지를 바른다. 온갖 칠을 하고 천을 두른다.
그러나 이 유사 돌덩이는 어디를 가나 눈에 띈다. 삭막한 도심에서는 눈을 감아도 그 회색 뭉텅이가 아른거릴 지경이다. 정말 ‘인’테리어 2 작업이라는 것에 콘크리트로부터의 피신 의도가 담겨 있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쯤 멀쩡하게 생긴 고등아이가 빵 껍질을 툭 던지고 지나간다. 대체 빵은 언제 다먹고 빈손으로 가는 걸까. 쓰레기의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 포대에 담고 나니 길바닥을 보기가 한결 낫다.
이 포장길도 콘크리트다. 은근히 뽀얀게 회색보다는 쌀(米)색에 가깝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기분이 포근한 게 봄이 오는구나 싶다. 비쭉비쭉 길을 잘라먹는 그림자 모서리를 보면서 문득, 콘크리트가 예쁘다.
2.
콘크리트는 산업혁명의 그림자를 짊어지게 된다. / 1870년대의 영국 멘체스터
1900년경,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세계가 도시를 키우느라 분주할 시기. 때마침 콘크리트는 철근과 손을 잡고 궁극의 건축재료로 거듭난다.
이후 콘크리트는 고속성장의 그림자를 노나(함께) 가지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만약에 콘크리트 활용이 반 세기 정도 늦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지금처럼 미움받았으려나.
사실 콘크리트는 가장 유용한 건축 재료중의 하나다. 그 빼어남을 볼작시면 우선, 강도와 내성을 비롯한 성능의 훌륭함이 될진데. 한 번 딴딴하게 굳으면 무거운 가구며 사람을 잘 받들고, 물과 불, 각종 화학물질에 견디는 능력이 우수하다. 시멘트, 모래, 자갈을 물과 섞어 틀에 부으면 되니 시공 역시 간편하다.
가격을 보아도 콘크리트는 참 착하다. 2012년 현재 40kg 시멘트 한 포대가 4000원. (참고 : 인터넷 최저가 노래방 새우깡 40kg의 가격이 25만원 선이다. 물론 새우깡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완제품이지만 그래도.) 대충 봐도 이정도면 짱 저렴하다.
3.
나는 콘크리트가 좋다. 그 촉감과 결, 오묘한 회색이 좋다. 맨질맨질하게 새로 찍어낸 벽에도, 비바람을 맞아 모래알갱이나 자갈이 드러난 거친 면에서도 나름의 매력이 느껴진다.
사진의 천장부분이 노출된 콘크리트. / 루이스 I. 칸 / 킴벨 미술관
그 질감이 눈에 담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싶을 때, 한 번씩 이 벽이나 기둥 따위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똑같은 콘크리트. 차가운 덩어리도 내 손이 닿으면 온기를 품는다.
내 손이 약손. 마이다스의 손. 이런 이야기가 아니고- 못난 손으로도 쓰다듬고 닦아서 사람의 온도가 남는다면, 콘크리트라고 해서 어찌 이거이 이쁘지 않겄는가 이 말이다.
콘크리트의 거칠음을 나무라지 마라. 거기에는 사람 손길이 녹아 있다. 거푸집 짜 놓은 이음매가 남아 있고, 틀을 떼며 남은 상처가 있다. 해가 나면 그 조그만 상처에 그림자가 나린다. 볕 드는 모양따라 사람이 손 댄 흔적이 드러난다.
손때 남을 여지도 없이 금새 떼어 버리는 얇고 얕은 포장. 눈에 담으려면 멀찍이 떨어져야 하고, 손으로 쓰담아 보기에 너무 높은 초고층 빌딩은 정이 안간다.
번쩍번쩍 화려한 새 가게로 고개를 돌렸다가 이질감을 느끼고는 곧 고개를 돌린다. 나도 당신도 이미 20년, 30년째 헌 몸 아닌가. 아, 어쩌면 저것은 새로움으로 지나가는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시도인가.
싫은데요 realionic@naver.com
'+절찬리 생존중 > [ 껍데기는 가라 ] 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원룸에서 잃어버린 것들 (1) | 2012.09.06 |
---|---|
만원 사회 (1) | 2012.07.05 |
규모의 건축 (1) | 2012.06.05 |
도시의기억, 기억의도시 (2) | 2012.05.04 |
건축 이야기 (6) | 2012.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