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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껍데기는 가라 ] 건축

만원 사회

 

 

 

1

 

휴먼버블 / 에드워드 홀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적정 공간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바 있다[각주:1]. 다른 사람이 너무 가까이 오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예를들자면, 실제로 얼마나 가까이 왔을 때 신경이 쓰이게 되는지, 친한 정도에 따라 어느정도의 거리가 마주서기에 적절한지 등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한다. 이게 또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데는 좀 가까워야 편하고, 어느 동네는 조금 더 멀어야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위의 그림은 점선으로 둘러놓은 동그라미가 중요하다. 요만큼은 '나만의 사적인 영역' 이니까, 함부로 침범하면 불편하다는 의미. 그림을 참 귀엽게도 그려놓았는데, 이름도 귀엽다. HUMAN BUBBLE이라니. 우리말로는, 인간-구슬 정도로 하면 될 지 모르겠다. 아니다, 물방울은 아니지만 물방울 느낌이 나니까 그냥 '휴먼버블'로 읽는게 무난하겠다.

 

'휴먼버블'은 경우에 따라 움츠려들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 끼리는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에는 한층 강해지고 두터워지기도 한다. 공포영화를 보다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것도 이런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데, (카메라를 잔뜩 당겨서 주름 하나하나를 전부 담아내는)영상과 (손바닥이 벽지를 스치는 그 조용한 마주침까지 담아 낸)소리가 싸납게 내 영역을 파고든다. 긴장은 한층 팽팽해지고, 쭈뼛쭈뼛 오감이 예민해진다.

 

 

2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낯익은 실루엣의 낯선 아줌마/아저씨가, 콤보로, 나의 사적 영역을 침범해 온 날이었다. 지하철에서 밀고 당기고 부비고, 내 생전 겪지 못한 클러빙을 지하철에서 경험하네. 허허. 실로 이 기쁨에 -단발의 쌍욕으로 응답하며- 흥을 더하고 싶었지만, 아직 꿈틀거리는 두어마리 '샹'을 씹어 삼키고, '나는 왜 이리 작은 것에 흥분하는 소인배인가.'를 물으며 성찰을 하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고 말았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성찰은 실패. 나에게 자기반성의 시도는 자기기만이다. 젱장. 아니 가만 있어도 잘 타는데 왜 밀고 자꾸 건드리냐고!!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과 사람이 부닥치는 일은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위로해보지만, 억울하다.[각주:2] 에이씨 날도 더워서 끈적거리는데.

 

'휴먼버블'의 붕괴로 얻게되는 '과민성 접촉기피증'은 보통 하루정도 이어지는데, 더 재미있었던 것은, 오늘의 목적지가 '서면' 이었고, 아줌마/아저씨의 콤보어택을 벗어나 제일 처음 마주한 공간이 - '가로세로1미터 당 평균머릿수 2.5명'[각주:3]을 자랑하는 - '서면 지하상가'였다는 점이다. 웰컴 투 지옥 오브 헬, 서면.

 

 

 

3

 

거리를 가득 매운 사람들을 보라. 이 중에 제일 잘생긴 사람이 나를 닮았다.

 

말 그대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 따위에서나 쓰던 '만원-'[각주:4]은, 대중교통의 범위를 넘어 사회 곳곳에 적용되는 추세다. 카페도 만원, 술집도 만원, 주차장, 극장, 강의실, 거리에 이르기까지 전부 만원이다. 바야흐로 '만원 사회'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만원. 빽빽히 들어선 사람들에게 '사이'는 없다. 피부에 닿을 만큼 쪼그라든 '휴먼버블'이 가시를 곤두세우고, 오가는 사람의 어깨와 어깨 사이를 채우며 마찰한다. 내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휴먼버블'은 '영역이 침범당한다! 빨리 공간을 확보하라!' 잔소리지르며 끊임없는 경고를 보내오고, 개방된 공간에서 폐쇄의 불편을 느끼는 아이러니가 일어나기에 이른다.

 

지구촌이니 세계화니 하는 소리를 해쌋는 중에 - 온 세상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꼴이 되고 있지만, 사람은 '지구 단위'의 생명체가 아니다. '지구단위' 라면 수금화목토천해(명) 따위가 되어야 레베루가 맞는 것이고, 지구에 빗대자면 사람은 너무 작지 않은가. 끽 해야 수 킬로미터를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을, 도시[각주:5] 울타리 안 한군데로 모아놓으니까 서로 부대끼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숨가쁜 오르막을 열심히 악셀밟아 오르면 내리막이 나오기도 하는 법이다. 산업화, 공업화, 발전, 개발 또 뭐가 있나 아무튼, '도시'는 한껏 가속을 받고 고개를 올라와 지금 내리막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브레이크를 적절히 밟아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미리미리 속도를 줄여 두어야, 때가 되어 커브를 만나도 뒤집히는 일 없이 아름다운 드라이빙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잠깐만, 우리 조금만 거리를 두고 만나자. 본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는 적절한 때와 곳을 따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고, '지구'나 '세계' 같은 거 말고 우리 동네사람들이 되어서 만나다 보면, 미운놈도 이쁜 구석이 있음을 새삼 알게 될 것이다. '친구야 나는 니가 밉지만, 우리 조금 떨어져 지내다 보면 약간 좋아질 지도 모르겠구만!'

 

 

 

 

  1. (「Hidden dimension : 숨겨진 차원」, 1966 ) [본문으로]
  2. (글 한편 쓸 때마다 억울한 일이 하나씩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은 착각이겠지.) [본문으로]
  3. (학술적 근거는 업슴미다. 아래의 사진을 참조하면 대충 느낌을 알 수 있음.) [본문으로]
  4. (滿員 : 정한 인원이 다 참) [본문으로]
  5. (서양의 도시는 성당 종소리가 들리는 둘레의 마을 단위에서 비롯된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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