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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놈은 거실에, 작은 녀석은 큰방에 두었다. 집안에 별 일이 없으면 큰놈만 켜고 방문을 전부 열어둔다. 그렇게만 해도 보잘것 없던 선풍기가 바람의 결을 달리한다. 처음 한동안은 마냥 즐거웠다. 끈적임 없이 싸늘한 도시바람, 도도한 도시바람의 매력에 빠져 괜히 다리도 꼬아 앉고, 믹스커피도 한봉 말아 마신다. 가을이라도 맞은 양 먼지쌓인 책도 한번 꺼내어 들여다본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는 -언제나 그렇듯- 갈등을 부르는 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신기술의 편리를 사랑하는, 타협적이고 조화로운 성격의 소유자인 나로서도 그 딜레마를 쉬이 피해가기는 어렵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에어컨 때문에 방문을 열어두니까 수시로 가족들이 방을 드나드는 상황이 되는것이다. 젠장 이래가지고는 글을 쓸 수도 없고, 엄빠주의 게시물을 읽을수도 없다. 방문을 열어 둔 채로는 운동을 할 수도 없고, 마음놓고 잠을 자기도 불편하다.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영화를 보기도 어렵다. 결국은 반쯤은 거실이 되어버린 내 방에서 고민을 시작한다. 찬 바람이냐, 독립된공간이냐. 쾌적함이냐, 마음의 안정이냐. '오늘 뭐먹지?' 이후로 나에게 닥친 최고의 고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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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에 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방이 한 개. 한자리에서 모든것이 이루어진다. 잠을 자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운동 하고, 밥먹고 또 그릇을 씻고, 약속이라도 생기면- 똑같은 그 자리에서 외출을 위한 몸과 마음의 채비를 한다. 얼핏 보면 이만큼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생활도 없을 것 같으나, 실상은 모든 활동과 마음이 얽히고설켜 이도저도 아닌, 회색의 하루하루가 되풀이 되고만다.
우리가 원룸에서 잃어버린 것 들을 보라. 도서관에 앉아 정갈한 마음으로 책을 펼칠 때야 귀에 들어오는 사각사각 종이소리, 가까운 사람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차를 나누어 마시는 도란거림. 맑은 물에 옷을 헹구고, 볕이 뜨는 날 내어 말리고, 마른 냄새가 남은 옷가지를 개키는, 이 모든 순간의, 특정된 공간 / 그 순간만의 느낌이 몽땅 지워진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피곤한 일인가. 삶을 이루는 작은 일들이 맛을 잃고 말라버리면, 우리에게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강박 말고 어떤것이 남나. 1박2일? 무한도전?
루이 칸 / 엑서터 도서관
공간은 때에 따라 분명히 분리될 필요가 있다. 각각의 역할이 다른것이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여기에 하나하나 값을 매겨 놓았다. 공간의 분리를 얻기 위해 치루어야 할 대가는, 독립된 공간이 우리의 삶에 끼치는 영향 만큼이나 비싸다. 방이 하나 늘고 창이 하나 더 날 때 마다, 식당이 따로 마련되거나 중간에 덧문이라도 추가될 때 마다 집 값이 늘어난다. 가난한 이들에게 추가 옵션은 과분하고, 그래서 이들의 공간은 몸과 짐이 들어갈 딱 고만큼의 규모. 삶같은 삶은 과분할 지경이다.
철학자 이진경은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을 통해 인류사에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도입되는 과정을 살피고 그 뜻을 풀이한다. 고유의 의미를 가진 각각의 때와 장소가, 근대의 시계-시간 3, 좌표-공간 4으로 대치되면서 서로다른 깊이와 의미를 가진 장면 장면이, 이를테면 짐을 싹- 덜어내고 남은 빈방과 같은 어떤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5
이는 실제 근대에 일어난 사회 변혁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는 현상이다. 기계적 시간과 평면적 공간 개념의 도입은, 그 무렵의 인류가 의지해 온 갖은 믿음과 의미를 몽땅 쓸어내고 과학으로 대체하는데 그치지 않고 - 산업사회를 세우고, 노동자를 '인적자원'으로 개발해내는 바탕으로 자리잡는다. 한편으로 케케묵은 미신 따위를 몰아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류가 사건과 사물에 부여한 의미들을 깨끗히 지워버렸다.
에디 카드, 12살. 노스 포말의 방적기. / 루이스 하인
뜨는 해를 맞이하며, 이웃끼리 밤 사이의 안부를 나누고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아침은 6:00am에서 7:00am의 60분으로 정리되고, 이만큼의 시간이면, 예를들어 숙련된 인부가 5분에 하나씩, 총 12개의 제품을 조립해 낼 수 있는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고, 매 주말이면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던 공간은 22번지와 26번지 사이의 일반상업지구로 바뀌는 것이다.
현대는 간편해지면서, 통합을 거치면서, 뭉게지면서, 우리 삶에서 그 의미를 지워가고 있다. 터치스크린과 온갖 센서들은 애초에 사물을 만지고 조작하던 일련의 활동을, 손가락질 하나로 바꾸어 놓았다. 디지털과 인터넷은 우리삶을 통째로, 그 생생한 경험을 모니터 안으로 차곡차곡 재어 놓고 있다. 나는 아직 문을 열 때, 문손잡이가 돌아가고 '딸깍'하는 소리가 좋은데, 문자나 카카오톡 보다 맞잡은 당신 손이 더 좋은데, 디지탈은 0에서9 사이에 나를 포섭하려는 시도를 그치지 않는다.
- ( 해탈.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5a3521a ) [본문으로]
- ( '엄마아빠'주의 : 자칫 선정적으로 보일 소지가있어 등뒤를 살피고 읽기를 권장하는 게시물을 알릴 때 쓰는 줄임말. ) [본문으로]
- (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10825838BA ) [본문으로]
- (시계로 만들어진 시간. 시계는 물 흐르듯 이어진 삶을 마디마디 끊어 낸다.) [본문으로]
- (특색을 잃고, 좌표에 따라 일련번호를 부여받은 공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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