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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껍데기는 가라 ] 건축

우리가 원룸에서 잃어버린 것들 1 작년에 생전 처음으로 우리집에도 에어컨을 달았다. 쪼끄만하고 옆으로 긴놈 하나하고, 덩치가 내 동생만한놈 하나. 두개가 한셋트다. 바야흐로 우리집에도 차가운 도시바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에어컨은 이불보같은 껍질을 뒤집어쓰고, 일년에 삼백오십일을 없는 듯 지내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름한철, 반짝하는 동안 만큼은 온갖 세상의 저주에서 나를 구원해 줄, 뭐랄까- 열반으로의 인도자가 되었다. 큰 놈은 거실에, 작은 녀석은 큰방에 두었다. 집안에 별 일이 없으면 큰놈만 켜고 방문을 전부 열어둔다. 그렇게만 해도 보잘것 없던 선풍기가 바람의 결을 달리한다. 처음 한동안은 마냥 즐거웠다. 끈적임 없이 싸늘한 도시바람, 도도한 도시바람의 매력에 빠져 괜히 다리도 꼬아 앉고, 믹스커피도 한봉 말아 마신다. .. 더보기
만원 사회 1 미국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적정 공간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바 있다. 다른 사람이 너무 가까이 오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예를들자면, 실제로 얼마나 가까이 왔을 때 신경이 쓰이게 되는지, 친한 정도에 따라 어느정도의 거리가 마주서기에 적절한지 등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한다. 이게 또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어데는 좀 가까워야 편하고, 어느 동네는 조금 더 멀어야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위의 그림은 점선으로 둘러놓은 동그라미가 중요하다. 요만큼은 '나만의 사적인 영역' 이니까, 함부로 침범하면 불편하다는 의미. 그림을 참 귀엽게도 그려놓았는데, 이름도 귀엽다. HUMAN BUBBLE이라니. 우리말로는, 인간-구슬 정도로 하면 될 지 모르.. 더보기
규모의 건축 1 백화점을 가려면 일단 차를 사야된다. 백화점 탐방 같은 장거리여행을 준비함에 있어 - 가방따위 무거운 짐은 차에 던져두고 - 최대한 가벼운 차림을 갖추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에는 뚱뚱한 패딩이 대단한 유행을 탔지만, 백화점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멋쟁이들은 겨울에도 반팔패션을 고집한다. 여름 무렵에야 한결 낫지만, 가을·겨울철 날이 쌀쌀하다고 긴팔옷을 입거나 등에 가방이라도 지고 가면 낭패를 보기 쉽다. 이따금씩 겁없이 완전 무장을 갖추고 백화점을 방문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예외 없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듯한 답답함을 경험하고서야 반팔의 교훈을 얻는다. 등에서는 땀이 베어나오고 얼굴에는 촌병걸린 사람처럼 홍조가 이는, 무자비한 백화점의 가르침. 붐비는 사람들이 유난히 부담스럽고,.. 더보기
도시의기억, 기억의도시 1 만날 다니는 길이 지겨워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마이 갓. 생각지도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이 길을 따라 다리 건너까지 친구를 바래다 주고, 친구는 다시 나를 바래다주고. 그렇게 몇번을 되풀이 했던. 훈훈했던 모범 어린이 시절의 추억. 우리동네에는 내가 세살 때 이사를 왔다. 그 때는 또랑 하나 지나던 촌구석이 큰 길도 나고 빌딩도 앉았다. 또랑 옆에는 폭신한 산책길도 깔았다. 참 마이 컸다 우리 동네도. 오늘 내일이 다르게 변하는 중에도 동네 구석구석은 옛날 모양이 남았다. 새 길, 새 집들 사이에 낯익은 장소가 언뜻거린다. 곳곳에 어릴 때 담가둔 기억이 익어간다. 김치같다. 익어가는 모양도 그렇고, 맛도 그렇다. 시큼하고 짭쪼롬하고. 꼬시고, 맵고. 단 맛도 나는 것 같고. 이러니까 동네가 새 .. 더보기
콘크리트 이야기 1. 저 자리는 망하는 자리다. 얼마 전까지는 식당이었는데, 다시 전자담배를 파는둥 어쩌는둥 하더니 또 가만있는 집 옷을 벗긴다. MDF판넬을 들어 낸 자리에 생짜배기 콘크리트 벽이 드러난다. 벌써 세 번째, 저 집 맨살을 본다. 이쯤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여지없이 신나 냄새를 풍기며 뚱땅거려 샀는다. 샷시를 갈고, 유리에다 새 시트지를 붙인다. 톱 소린지 전기꽂아 돌리는 사포 소린지, 웨엥- 하는 소리도 이제는 익숙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또 다른갑다.’ 하고 생각하면서도, 멀쩡한 포장을 뜯는 모양을 보면 아깝다. 내 돈 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는 하난데. 위아 더 월드. 뜯어진 벽지와 타일, 합판들이 가게 앞에 쌓인다. 페인트 냄새에 코를 킁킁대면서 끊임없는 새단장의 까닭과 그 부질없음.. 더보기
건축 이야기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아는 척 할 때 써먹기 좋은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건축에 대한 약간의 지식과, 정색하면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대부분은 유익한 정보와 기술이었으나, 건축에 대해서만큼은 아쉬움이 남는다. 혹,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 들어본적 있는가?(아직 네트워크 마케팅을 잘 모른다면 얼른 검색창을 열라! 이 글보다 훨씬 유익한 정보가 기다리고 있다.) 피라미드처럼 위에서 아래로 - 선생님들은 선배들에게, 선배는 후배들에게- 건축에 대한 환상을 전하는 그 ‘네트워크’의 사이에서, 순진한 나는 건축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에게 '문명' 이라는 것은, 건축과 기타 ‘시다바리’들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세상이 흥해도 건축의 공이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