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쪽에서 산과 강을 껴안고 자연 속에 살던 내가
가정을 꾸리면서 부산의 남쪽 ,
콘크리트섬 같은 이 공간에 뿌리 내리게 됐다.
하지만 예상대로 나와 이 공간의 정서적 교감은 쉽지 않았다.
막연히 바닷가 근처라 좋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번잡하고 시끄럽고, 소비를 부추기는 공간이 넘쳐나는 이곳은 좀처럼 정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특히나 70년대 개발과 산업화의 열매로 만들어진 곳이 여기(남천동 삼익아파트 단지) 아니던가.
그 태생적 반 생태성이 나로 하여금 이 공간을 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좀처럼 정 붙이기 힘들것 같던 이곳도
시간이 흘러 곳곳에 스며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발견하면서
조금씩 정을 붙여가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도 이곳이(남천2동) 예전엔 바다였던 걸 기억하는 사람은 이젠 그리 많지 않다.
광안대교가 없던 광안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그런 우리 동네의 옛 바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봄이면 예쁜 벚꽃 터널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삼익 비치 아파트 길 역시 예전엔 바다였다.
광안리 백사장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으니
아마도 예전엔 넓게 갯바위가 퍼져 있고 뒤로는 해송이 우거진 낮은 언덕이었을 것이다.
그런 바다를 부수고 만든,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섬 같은 곳이 여기다.
하지만 이런 공간도 시간이 지나 다른 삶의 이야기가 덧대어지면서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 중 하나가 지금의 벛꽃 터널길이다.
아파트에서 바다 쪽으로 걸어가보니 콘크리트 섬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은 오솔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도 삶의 이야기가 덧대어진 또 따른 생명이 자라고 있다.
오솔길을 따라 풀냄새, 바다냄새 맡으며 광안리 쪽으로 걸어가보면
백사장이 바라보이는 콘크리트섬의 끄트머리다.
그 끄트머리에서 옛 바다의 기억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새벽에 서는 도깨비 어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통통배가 시장 바로 앞에 접안해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바로 넘기는 곳.
그래서일까, 삶의 진한 비릿내는 어느 큰 포구 못지 않다.
콘크리트 섬에 어렵사리 붙어 있는 남천2동의 바다이야기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발길을 남천해변시장 쪽으로 옮긴다.
그 길에서 만난 수영장.
한때는 이곳 매립지 아파트들과 함께 부산에서 잘 나가는 수영장이었다는데..
저곳에 덧대어진 삶의 이야기는 멈춰서 버린 지 오래다.
삼익뉴비치 담벼락길이 바다였던 이 공간의 마지막 길이다.
이제는 이 바다였던 공간을 일터로 살았던 사람들의 공간 속으로 찾아간다.
아래 사진으로 볼 때 남천 해변시장 앞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바다였고 왼쪽은 어촌 마을이었다.
동네 어르신 말씀으론 아래 사진의 오른편이 그 옛날 해녀들의 물질터였다고 한다.
남천해변시장 앞 작은 횟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그 옛날에는 어촌마을이었던 이곳.
하지만 이젠 적어도 몇 십 년씩 장사를 해온 횟집들로 변해있다.
횟집들은 그 예전 바다의 기억을 붙잡고 있는 어촌마을의 다른 모습 아닐까?
횟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뒷쪽에 커다란 노거수가 자리 하고 있다.
400년이 훌쩍 넘은 이 나무는
이 자리에서 그 옛날 해녀들의 물질과
남편을 바다로 보낸 아낙네들의 간절한 기도를 수없이 보고 자랐을것이다.
다시 옛 어촌마을의 흔적을 찾아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골목 옛 기억을 간직한 공간과 길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보물 같은 공간.
500년이 훌쩍 넘은 동네우물이다.
어촌마을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었을 우물.
지금도 금줄이 쳐 있는, 마을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공간이다.
그렇게 옛 어촌 마을을 돌아 지금의 남천포구에 섰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숨비소리.
해녀다.
이제껏 현재와 과거 남천동의 바다이야기를 따라 길을 걸었는데
그 길 끝에서 과거 이곳의 주인이었던 해녀를 만나다니.
우연치곤 신기하다.
해녀를 통해 이 공간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느낌이랄까.
멍하니 해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옮기며 이공간이 나에게 건네는 말에 귀 기울여 본다.
'공간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공간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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