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동에 살던 시절이었다.
시내에서 지인들과 기분 좋게 한잔 하고 늦은밤 지하철을 탈 때면 당시 종점이었던 호포역에서 내리기 일쑤였다.
비몽사몽 내린 역사에 털썩 주저 앉아 반대편 열차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서서히 술이 깨곤 했다.
그리고 그 밤에도 쉼 없이 흐르던 낙동강과 땅위의 별처럼 반짝이던 김해평야의 불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술마신 날의 호사였다.
오픈된 지상역인 호포역은, 뒤로는 금정산 앞으로는 낙동강과 김해평야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화창한 날은 화창한 대로 비오는 날에는 비오는 대로 운치가 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알고 일찍부터 터를 잡고 살던 이들이 있었다.
호포 지하철 차량기지가 생기기전 이곳에 있던 호포2반 마을이다.
지금은 호포역 뒤편 금정산 중턱으로 집단이주 해 ‘호포2반 새마을’이라는 이름의 마을로 변해있다.
늘 가야봐지 했던 그곳을 오늘 가려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지도 서비스>
호포역을 나와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철로 아래로 난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 터널이 참 재미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더 신비롭게 하기 때문이다.
동화나 영화에 나오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통로 같은 느낌이랄까.
터널을 나오면 바로 가파른 콘크리트 산길이 나온다.
그리고 그 길 끝에 호포2반 새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낙동강과 김해평야를 마당삼아 금정산 중턱에 어렵사리 자리한 호포2반 새마을.
본래 부산이 산에 집이 많지만(산복도로에서도 알수 있듯이) 그런 동네와는 다른 느낌이다.
산 중턱에 이런 마을이 있다는게 신기하다.
산 아래 마을을 삽으로 떠서 옮겨온 느낌이다.
마을을 천천히 걸어본다.
그런데 골목길이 다른마을과는 조금 다르다.
길이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층층으로 단조롭게 나눠져 있다.
그 모습이 저 아래 원래 마을자리에서 이어지지 못하고 산중턱으로 이주돼 끊어진 마을 사람들의 삶 같다.
골목에서 의래 만나게 되는 아이들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은 고사하고 마을 주민과도 마주치기 힘들다.
간혹 마을 옆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다니는 등산객들만 보일뿐이다.
그러던 중 만난 고양이. (사진속 빨간 동그라미 속)
반가운 마음에 써터를 누르려니 쌩하고 저만치 도망가 버린다.
' 주인 아저씨나 아줌마 쫌 모시고 온나. 마을에 대해서 쫌 여쭤 보구로~'
너무 조용하니 심심하다.
쏟아져 내리는 계곡 물소리와 산새 소리만 가득하다.
그 풍경이 흡사 속세에서 살짝 비켜난 신선 마을 같다.
아니 개발의 논리에 쫒겨 신선이 되기를 강요 받은 마을이라고 해야 겠지.
내려가기 전에 마을 입구에 자리한 정자에 앉아 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본다.
세상은 여전히 개발의 몸살이다.
강의 주인들을 내 쫒고 황금빛 모래를 마구 퍼올린 자리엔
인공수로와 식생을 제대로 파악 했을까 싶은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다.
물고기와 새들과 농부들은 또 어느 산속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기를 강요 받고 있는걸까.
마을을 내려가는 발길이 무겁기만하다.
은빛물고기 porco_ross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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