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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호상/[ 골목마실 ] 사진 에세이

(바캉스 특집) 송정 어디까지 가봤니?





지인들과 만나 늦은 시간까지 담소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데 아파트 현관에서 모기향 냄새가 납니다. 

그 순간 ‘아, 이제 정말 여름이구나.’ 싶습니다.

 모기향 냄새는 여름의 시작을 알려주는 아련한 향수 같은 것입니다. 

어린시절 모기가 많던 우리집은 여름내내 모기향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물론 모기향 말고도 좋아하는 여름 냄새들이 많이 있죠. 

새벽녘 이슬을 머금은 풀냄새, 나무냄새, 저녁에 선풍기 돌아가는 냄새 같은 것들..

그런 여름을 맞아 멋진 피서지의 골목을 소개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습니다. 

제주도의 올레나 통영의 동피랑 마을? 아니면 맘 같아서는 저기 오키나와의 골목길을 걷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 부산에도 멋진 피서지가 많죠. 

그중에도 부산 사람들의 해수욕장이 있는 송정으로 떠납니다.


해운대가 이방인들의 해수욕장이라면 송정은 부산사람들의 해수욕장입니다.

어린시절 버스를 타고 청사포 끄트머리에서 산길을 돌아 어렵게 왔던 송정은 

나지막한 어촌집들이 군락을 이룬 전형적인 어촌형 해수욕장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직은 그때의 추억을 간직한 민박집들이 몇군대 남아 있습니다. 

물론 예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송정에 오면 늘 맘이 편해지는 이유중에 하나 입니다.

지푸라기 같이 작은 것이라도 그 옛날의 추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 남아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송정이 아직도 부산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송정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 합니다. 

바람도 강해 집니다.

 문득 어제 들었던 라디오 일기예보가 생각납니다.

 ‘내일은 차차 흐려져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방에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비가 오겠습니다. 예상강수량은 제주도를 비롯한...’

라는 내용입니다. 어제만 해도 ‘일기예보 저거는 맨날 천날 틀리는데 안믿는다.’하고 무시했는데 이런날은 꼭 맞습니다.

 송정 전체를 돌아보려던 계획을 바꿔 송정해수욕장의 시작점으로 향합니다.







송정해수욕장에서 오른쪽 끝으로 갑니다.

 부전역에서 출발한 동해남부선이 달맞이 고개를 돌고 청사포를 지나 만나게 되는 곳. 바로 구덕포입니다.

 부산 사람들이라고 해도 구덕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다들 송정해수욕장에서만 놀다가 가기 때문이죠.

구덕포로 향하는 길은 좁습니다.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작은 길에 지척엔 바다를 두고 있습니다.

 예부터 해운대의 미포, 청사포와 더불어 삼포로 불렸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어업이 주 였을 마을엔 횟집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그만 포구에는 구덕포라는 표지석이 자신이 포구임을 쓸쓸히 말해 줍니다.







마을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니 바닥에 바싹 누워 자라고 있는 노송이 있습니다. 

그 형태가 참 특이 합니다. 

제주에서 바닷바람 때문에 비스듬히 자라는 나무들은 봤지만 이렇게 바닥에 바싹 붙어 기면서 자라는 나무는 처음 봅니다. 

수령이 300년이 넘은 마을의 수호나무라는군요. 

매년 정월대보름과 유월보름에 풍어제를 지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 비를 피해 기와 끝에 웅크리고 앉은 녀석 앙증 맞습니다.







  


마을 뒤편으로 가니 다행히 어촌마을 골목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작지만 예전 송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입니다. 

그렇게 걷다가 골목 끝에 자리한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소담스런 분홍색 꽃까지 피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계십니까? 

문을 두드리니 안쪽에서 인기척이 있습니다.


- 뭐 마실꺼 있습니까?

하는 물음에 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 문을 열어 보여주며


- 실론티, 콜라, 사이다, 게토레이 뭐 이런거 있습니더


- 실론티 하나 주이소.


비바람도 피할겸 처마밑 마루에 앉아 음료를 들이키며 주인장께 말을 건냅니다.


- 이 가게가 참 예쁩니더.

 가게 앞에 피어 있는 꽃도 예쁘고 송정앞바다가 바라보이는 낮은 언덕빼기에 자리한 집도 예쁘고.

 이 가게는 오래됐습니꺼?


- 이 집은 오래 됐고예.

 내가 태어난 곳이니깐에. 60년은 훌쩍 넘었지예.

가게는 예전에 태풍 매미 온 다음부터 한기라예.


태풍 매미 전에는 바로 앞집에서 가게를 했었는데 태풍때 모든게 떠내려 가 버려 그뒤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 했다고 한다.



△ 비오는 날을 용케 맞춘다는 백합

: 비오는 날이면 펴서 오늘도 비가 오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비가 내렸다는 주인장 말씀.




-그라면 구덕포 토박이시네예.


-그렇지예.


-아이고 귀한분을 만났네.

옛날에는 여기 대부분 고기잡이만 하셨지예?


-그렇지예. 고기잡이 하고 또 논 일하고.


-논 일예?

이짝에 논이 어데 있습니까?


-뒤에 철길 안 있습디꺼.

 그 뒤에 산하나 있지예?

 그 산 넘어 가면 지금의 해운대 신시가지 있는 좌동이라.

 거서 농사 안지었습니꺼.


-와~ 여서 그 까지나 농사지러 다니셨습니꺼. 

산 너머 가꼬예?


-요 산 넘으면 바로라. 

그라고 그때는 다들 그래 살았응께네 먼지도 몰랐지.


외지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온 고향집이지만 뒤에 철길만 없어지면 팔고 나갈꺼라신다. 

누군가에게는 아련한 삶의 추억인 동해남부선도 누군가에겐 삶의 짐이 되기도 하는 것.


-인자 바다는 고만 보고 살라꼬예.


마당에 앉으면 송정해수욕장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던 곳이 

마당 앞쪽에 외지인들이 지은 건물로 이젠 바다마저 반쪽이 되어 버렸다. 

그런 현실에 자조 섞인 원주민의 한숨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가게를 나와 마을 뒤편 철길로 향합니다.

철길 너머 산아래 4가구가 띄엄 띄엄 자리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철길 바로 아래 자리한 집이 아담합니다. 

비가 오늘 날씨에도 여기 저기 밭에서 작업중인 마을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 순간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옵니다. 화물 열차네요.


'마을에 좋은 소식만 싣고 온나~ 그라고 낡은거라고 몽땅 싣고 가지는 말고~'


멀리 사라지는 기차를 바라보며 속으로 외쳐 봅니다.






구덕포를 나오는 길, 마을 모습이 어쩐지 더 쓸쓸해 보입니다.

원주민들의 삶이 보이니 더 쓸쓸해 보이나 봅니다.

바캉스 특집으로 신나게 시작한 글이 다소 우울하게 마무리 되는 군요.

하지만 바캉스가 여행지에서 흥청망청 놀다 오는게 전부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것이라면

여행지에서 만날 원주민들과 이야기 나눠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로 나도, 그들도 힐링 된다면 그것이 진정 바캉스일테니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