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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호상/[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마지막회> 그저 졸음이 쏟아질 뿐

 

 

 

 

 

 

 

 

Epilogue

그저 졸음이 쏟아질 뿐

 

 

 

 

 

 

 

다시 집에 돌아온 이후부터 자꾸 잠이 왔다. 깜빡인다고 눈을 감았는데, 뜨고 보면 언제나 다른 시간, 다른 세상이었다. 가게의 집기들을 내가는 일꾼들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보니 시영이네 집 거실이었고,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 올라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떠보니 처음 리브를 만났던 바로 그 병원 로비였다. 또 다시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나와 남편은 내과 과장의 사무실 안에 있었다. 남편은 이제 의족 없이 목발을 짚은 채였다.

오랜만에 만난 담당 의사는 즐거운 여행이라도 묻고 있는 듯 어디를 다녀오셨느냐 물었다. 나는 목발에 의지하고 서 있는 남편을 올려봤다. 그 시간들이 영락없이 거짓말 같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지금 이 시간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푹푹 발이 빠지는 눈 이야기를 했을 때, 의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에이, 거짓말마세요. 아무리 강원도라고 하더라도 오월에 무슨 눈이에요?’ 거짓말이라는 이야기에 나와 남편은 동시에 흠칫 놀랐는데, 갑작스런 폭설 같은 것, 뉴스에서도 본 적 없다 덧붙이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암세포가 뇌로 전이를 시작한 것 같다고. 가끔 환각이 보이거나 환청이 들리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눈썹이 없는 여자와, 자꾸 작아지다가 결국 내 품 안에 안겼던 아이를 떠올렸다. 혹시 내가 만났던 리브라는 사람도 환각이 만들어낸 거짓말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지만, 엉뚱하게도 그냥 .’ 해버리고 말았다.

의사는 다시 한 번 힘겹게 입을 열어 내가 앓고 있는 폐암의 종류가, 5년 이상 생존율이 15%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의지와 협조가 절대적이라고 덧붙였다. 보통 암에 걸리면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암 진단을 받는 그 순간, 환자분은 다시 훨씬 더 치열하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삶을 사셔야한다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 오히려 보물 같은 시간이다, 그는 털털 웃어주었다.

5년이라는 말에, 15%라는 말에, 그리고 치열하고 적극적인 삶이라는 말에 남편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지만, 나는 또 다시 그냥 .’하고 대답했다.

 

남편은 장애인 복지 공단과 지역자활센터에 일자리를 신청해 놓았다. 넉넉한 월급을 받는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더 이상 아무런 이유도 달지 않았다. ‘.’하고 대답했던 나처럼, 그저 .’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리된 가게를 둘러보며 필요한 것들을 시영이네 집으로 옮기는데, 우편집배원이 사각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언제 주소를 주고받았는지, 손으로 꼭꼭 눌러쓴 인상 좋은 손 글씨는 도계에서 만난 그의 모습과 꼭 닮았다.

봉투 안에는 사진 몇 장이 담겨 있었다. 다시 내게 찾아온 리브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리브의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나는 사진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햇살이 잘 드는 벽에 선 내 모습, 술에 취해 푸석한 얼굴로 웃고 있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어정쩡하게 나란히 늘어선 남편과 나의 모습. 그런데 어디에도 리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보낸 작은 쪽지 위에는 카메라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그 때 찍은 사진 중에 이 세 장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평소에 한 번도 없던 일이라 자신도 이상하고 또 죄송하다, 그렇게 적혀 있었다. 놓쳐버린 시간처럼, 다시 어디에서도 주워 올릴 수 없는 시간처럼 리브는 그렇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거기에는 낮은 건물의 식당 하나가 있었다. 유리문 안에는 연탄난로가 있었고, 몸을 잔뜩 웅크린 여자가 들어서는 손님들을 차곡차곡 좁은 방 안에 정렬해 앉히고 있었다. 거긴 시영이 엄마가 말했던 아귀찜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새빨간 화장을 한 여자가 문을 나서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느라 막 문 밖으로 나왔는데, 그녀의 머리 위에는 허름한 간판이 위태롭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모두들 편안하게, 맛있는 음식 드시다 가시라는 듯 친절하게 안미옥(安美屋).’

갑자기 불안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내가 정말 리브를 만났던 것일까. 처음부터 병원에 있고 싶지 않았던 것도 나였고, 정류장을 찾고 싶었던 것도 나였고, 회귀하는 생물처럼 처음 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니, 그 또한 나였다. 그렇다면, 모텔에서도 나 혼자였고, 대성이에게 이름을 적어주지 못했던 것도 나 혼자였고, 고래를 만나러 간 것도 나 혼자였을까. 내 곁에서 떠들던 것은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모습의 나였는지도. 그래서 그렇게 그와 나의 언어는 서로 어긋났던 것인지도. 갑자기 오싹 소름이 돋았다.

- 아따, 배부르네, ? 언니도 맛나게 드셨소?

배를 문지르며 시영이 엄마는 내게 물었다. ‘안미옥을 나서며 모두들 포만감으로 행복했다. 어쩌면 그 때, 길을 잃었던 어린 나도, 엄마나 가족 따위보다는 그저 배를 채우는 따스한 밥 한 그릇이 간절했던 건지도.

- 거그가 아구찜은 젤 괜찮애. 티비에도 나오고 그랬잖여? 형님은 잘 못드시는 것 같던디, 괜찮았소?

시영 아빠는 목발을 짚은 남편과 보조를 맞추며 살갑게 물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또 다시 .’이었다. 말을 잃은 그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또 다시 위태롭게 흔들리며 걷고 있는 그의 걸음걸이는 끔찍하도록 평범했다. 그런데도 내 몸은 자꾸 떨렸다. 어떤 공포에 질렸는지 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그래도 뭐 티비에 나오고 그럴 정도는 아니지 않어요? 그냥 맛이 괜찮은 정도지.

창주아빠 뒤에 숨었던 그의 아내가 고개를 빼며 대답했다.

- 워메, 창주 엄마는 항상 그렇게 삐딱하게 나오더라, ? 뭐 아구찜 맛 땜시 왓소? 언니랑 형부랑 다 같이 바람도 쐴 겸, 언니도 이제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니께, 그래서 나온 거시지.

시영엄마는 그녀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 , 누가 뭐랴? 그 정도는 아니더라, 줄 서서 기다리고 하는 사람들이 쪼매 오버스러우니까 하는 야그지. 나도 알어요, 언니 병원 들어가는 거.

창주엄마는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 어쨌거나 언니, 꼭 치료 잘 해서 건강해져서 나오시오, ? 나랑 창주엄마랑 병원 문지방이 닳도록 자주 놀러 갈랑께.

- 괜찮아, 몸도 무거운데 괜히.

부른 그녀의 배를 넘겨보았다. 부러워하던 내 모습이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떠올랐다. 체납고지서처럼 그건 자꾸 마음을 무겁게 했다.

- 몸은 괜찮지?

- 괜찮다 뿐이요? 겉보기만 거대했지, 나보다 더 빠르고 잽디다. 낄 데 안 낄 데 쫓아다니며 있는 참 견, 없는 참견, 참견, 참견은.

이번에도 창주엄마는 고개를 삐죽 내밀어 끼어들었다.

- 맞어, 그건 창주 엄마 말이 맞네. 아주 내가 저 사람 잔소리 때문에 머리가 빠져요, 머리가.

시영아빠가 기회다 싶었는지, 속에 담았던 말들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 워메메, 이 냥반이 쉰소리는? 낄데 안 낄 데 다 쫓아다니며 참견하는 건 창주 엄마지, 나야 배부르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기만 하면 애 나올 때 힘드니까. 내가 저것들 낳을 때도……. 워메, 이것들 고새 어디를 가부렀대? 워메, 저것들. 시영아, 시원아!

그녀는 부른 배를 움켜쥐고 학생들이 모여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자판기 같은 기계들 여러 대가 모여 있었고, 아이들 둘은 모여 있는 학생들 너머를 훔쳐보느라 까치발을 디디고 있었다.

- 저것들, 지 엄마 무서운 줄 모르고. 디졌다, 이제. 어쨌거나 형님도 그렇고, 형수님도 그렇고 씩씩하게 잘 이겨내쇼. 울덜이 곁에 있으니께 걱정 마시고.

- 맞소, 꼭 이겨내소.

시영아빠와 창주아빠는 남편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

남편은 또 그렇게 대답해놓고는 그만이었다. 무어라고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는데, 모든 것이 사라진 시간이 두려워 오슬오슬 떨리는데, 그는 여전히 침묵으로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 워메, 저 여자는 뭐하느라 사람을 부르고. 뭔 일인디, 안 나오고 그려?

손짓을 하는 시영엄마를 향해 그는 너털거리며 걸어갔다. 두 사람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자판기 같은 기계 앞에 서서 무언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깔깔거리며 두 사람은 기계 안에서 무언가를 뽑아 들고 걸어 나왔다. 시영이와 시원이는 자신도 보자고 아빠와 엄마의 팔을 잡아끌었다.

- 아니, 뭐하는 거여, 저게?

창주엄마도 궁금한지 그들을 따라갔다. 손에 든 것을 들여다보며 그들은 깔깔깔 웃었다.

- 당신이 잘못 눌러서 그려. 이것이 뭐시여, 이것이?

- 뭘 내가 잘못 눌러? 당신이 하도 보채니께 그랬던 거지.

- 이거 워쩔거야, 이런 애 나오면 정말 워쩔 거냐고?

- 워쩌긴 뭘 워째? 이쁘기만 하구먼. 히히히. 근데 기집애냐, 사내냐? 난 햇갈려서 모르겄다!

시영아빠는 손 안에 든 것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뭐시여, 뭔데 그려?

창주아빠도 고개를 빼고 기웃거렸다. 시영엄마는 시영아빠에게 사진을 빼앗아 그에게 건넸고, 나머지 한 장은 내게 건넸다.

- 저그서 엄마 아빠 사진을 합성해서, 앞으로 나올 애기 사진을 만들어 준다잖어? 근디, 이 냥반이 엉뚱한 걸 눌러놓는 바람에 그냥. 으이그, 으이그.

시영엄마는 시영아빠를 향해 혀를 끌끌 찼다.

- 호호호, 언니 눈썹 좀 보쇼. 아주 웃기지 않으요, 그죠, ?

창주엄마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깔깔 웃었다. 나도 그녀가 건네준 사진 속을 들여다보았다. 시영엄마의 눈과 시영아빠의 코와 입을 가지고 있는 아이. 그리고 그 누구의 눈썹도 아닌, 누군가 그려준 듯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크기와 색깔의 눈썹을 달고 있는.

- 그 누구냐, 남자배우. , 송승헌, 송승헌 눈썹, 히히히.

울컥 눈물이 치밀고 올라왔다. 차곡차곡 덮여가던 두려움이 한순간 퍽 터져나갔다.

- 워메, 언니, 왜요? 뭐가 이상해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영엄마가 물었다. 그러나 나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 , 아냐. 정말, 정말 웃기네. 얼마나 웃긴지 자꾸 눈물이……. 예뻐, 정말 예뻐. 이 아이가 앞으로 태어날 아기란 말이지?

- 아이고, 태어날 애는 무슨? 그냥 돈만 버렸지, 히히히.

시영엄마는 아쉬운 듯 털털 웃었다. 그러나 내 두 눈에는 계속해서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내민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보듯, 공포로 쪼그라들었던 심장은 설렘으로 잔잔해졌다.

- , 이 사진 한 장 주면 안 돼?

- 아유, 안 되기는? 다 가지쇼, ! 시영아빠, 당신이 가진 것도 내 놔, 언니 주게.

- 싫어! 나도 한 장 가지고 있을라니께. 흐흐흐, 얼매나 이뻐? 흐흐흐, 형님, 이쁘죠?

그는 들고 있던 사진을 남편에게 내밀었다. 남편은 또 다시 .’ 대답했지만, 그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가 남편의 곁에서 조금씩 커갈 때, 그는 알게 될 것이다. 어딘지 익숙하고 친근한 아이의 웃는 모습을. 전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자꾸 웃게 되고 즐거워지는 그런 경쾌함을.

- 뭐야, 왜 그래?

울먹이는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은 물었다.

- 오빠, 우리 탱고 배울까?

- 무슨 소리야, 그게 갑자기?

- 그냥그냥 탱고를 추고 싶어졌어. 같이 출거지?

- 이 사람이? 갑자기 그게 무슨……?

얼굴이 붉어지며 그는 도망치듯 멀어졌다. 시영이네와 창주네는 왁자하게 떠들며 사람들 속으로 걸어갔다. 남편도 뚜벅뚜벅 목발을 짚으며 그들을 따랐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 모두는 아이의 웃는 모습을 하나씩 나누어 갖고 있었다. 절대 죽지 않는 아이, 어디서든 호홋 웃으며 살아나는 아이. 어쩌면 이다음 언젠가 탱고라는 춤을 추게 될 아이.

나는 다시 한 번 들고 있는 사진 속을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내 꿈속에, 품에 안겼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이의 입이 오물거리며 말하던 소리가 이제는 또렷이 들려왔다. ‘살았다!’ 외치는 바로 그 소리. ‘호홋.’ 웃는 그 소리. 나도 아이를 따라 환하게 웃어본다. 그리고 손을 들고 자그맣게 중얼거린다.

 

살았다!’ 그렇게. [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