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잘가라, 낙원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리브가 있는 그 병원이었다. 거짓말처럼, 마술처럼 남편과 나를 실은 구급차는 정확히 그 곳에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남편의 다리는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낡아 헐거워진 의족이 움직이지 않도록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동여매어서, 물집이 잡히고 터진 살점 속으로 의족이 살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약국에서 파는 알코올로 아무렇게나 소독을 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의 다리는 곪을 대로 곪아 온통 염증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를 나무랐던 의사는 남은 다리마저 잘라내고 싶으냐, 다시 한 번 호통을 쳤다. 병원 의사가 유치원 선생인 줄 아느냐, 또 다시 일장 훈계를 늘어놓을 것 같더니 그는 한숨을 푹푹 쉬며 상처만 후벼 팠다. 남편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늘어진 자루처럼 그는 축 처져 있었다. 시간이라는 덫에 걸린 짐승같이 그는 푸르륵 푸르륵 거친 숨만 내쉬고 있었다.
나는 리브가 누워 있는 응급실 침대에 엎어지고 나서야 울음이 터졌다. 엉망이 된 남편의 다리를 지켜보다 뛰쳐나왔을 때, 어디에도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여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진 리브를 보았을 때, 마개가 터진 듯이 울음이 쏟아졌다. 그 울음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는데, 나는 그의 다리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모른다.’라는 것이 어떤 위로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인 그의 곁이 그저 가장 편안하게 느껴졌다.
- 언니, 언니?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지우다가 말았는지, 색깔의 때처럼 그의 손톱 위에는 분홍색 매니큐어가 아무렇게나 엉겨 있었다. 잠이 든 기억 같은 건 없었는데, 시간의 굴을 통과한 것처럼 나는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 나 담당하는 의사 얼굴 봤어?
화장도 지운 채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이면서도, 그의 양 볼은 금새 홍시처럼 붉어졌다.
- 흰 가운 입은 남자들은 왜 그렇게 핸섬해 보이는 걸까? 아응, 여기 나 담당하는 의사도 굉장히 핸섬하다? 호홋, 언니는 아직 못 봤지? 그치? 호홋.
부르르 몸을 떨며 그는 수줍은 듯 얼굴을 가렸다.
- 나, 그 오빠한테 한번 대쉬해 볼까? 스물 중반쯤 되는 것 같은데, 인턴인가? 호홋. 스물 중후반이면 아주 나랑 딱 맞는데, 호홋. 어때, 언니? 이 동생의 파트너로 의사 정도면 훌륭하지, 그치? 호홋.
그는 계속해서 말끝에 웃음을 달았다. 그러나 나는 그 웃음을 모른다. 그 웃음의 의미를,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나는 알지 못한다.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내가 오늘 어디에 다녀왔는지, 무엇을 만났는지도, 알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
- 언니?
그는 물었다.
- 왜?
나는 대답했다.
- 난 언니를 모른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정확히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말이었다. 마치 그가 내 머릿속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우리들의 시간이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이것도 꿈일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는 두리번거렸다. 이상하게도 사위는 지워진 것처럼 고요했다.
- 내가 알고 있는 건 안순옥이라는 언니 이름하고, 언니가 올 봄 최신 유행인 핑크 같은 거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거 하고. 엄마를 무지무지 찾고 싶어 한다는 거 하고, 나처럼 비슷한 병에 걸렸다는 정도? 호홋.
말끝에 달린 웃음은 어쩐지 기침과 닮았다.
- 물론 우리 언니, 맨 날 세상 근심 혼자서 다 짊어진 것처럼 죽을상을 하고 있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찾고 싶은 것도 많고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사는지, 얼굴에는 철판을 깔았는지 웃을 때도 그냥 배시시, 찌그러지듯 웃고 말기나 하고. 또 여자가, 여자가 피부 관리며 패션 감각이며 정말 여자로 태어난 게 어쩜 그렇게 안 어울리는지 기타 등등 그런 것들은 내가 딱 봐서 잘 알지. 암, 알고말고.
리브는 피식 웃었다.
- 근데 시간이 너무 짧긴 하더라. 시간이 그렇게 짧은 건지 몰랐네. 주구장창 늘어진 게 시간이고 계절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것 같더라. 짧아, 너무 짧아. 뭐 사람을 알고 자시고 하기에는 너무 짧아. 그러니까 모르는 게 당연하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그는 응급실 천장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봤다. ‘짧다.’ 하는 이야기를 이제야 나도 알게 되었는지, 괜히 코끝이 시큰했다.
- 근데 그거 하난 알겠더라.
고개를 들었는데, 그의 모습은 물빛으로 흔들렸다.
- 언니도 나도… 돌아갈 데가 없다는 거.
무슨 말인가 싶어, 큰 눈을 멍청하게 껌뻑였다. 무언가에 찔린 듯 가슴이 아팠다.
- 왜, 사람들한테는 그런 게 있잖아? 뭐 설날이나, 추석날 같은 때, 돌아가고 싶고, 돌아가는 그런 고향. 좋았든 싫었든 어린 시절 생각하면서 호호 거리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 만나는 거. 그래서 그렇게 웃고 떠들고 그럴 수 있는 고향. 근데, 언니도 나도 그런 게 없잖아, 안 그래?
그가 한 말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졸졸 내 안에서 물이 흘렀다. 봄 햇살 때문에 내 마음 속에도 쌓였던 무언가 녹고 있는지.
- 맞잖아? 언니도 없잖아? 빤쓰인가, 빠쓰인가, 거기가 언니 고향은 아니잖아? 거기 간다고 가족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니가 거기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거기에서 터미널 간판 붙들고 울고 짜고 한 기억 밖에 없다면서?
지워졌던 것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텅 빈 간판을 붙든 채였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빠쓰 정류장’이든, ‘버쓰 정류장’이든.
- 나도 그렇거든. 고향에 가도 거기에는 내가 없어. 사람들도 나를 모르고, 나도 사람들에게 나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도, 내가 알고 있는 나도 거기에는 없어. 그렇다고 날 수술해준 의사선생님 병원이 있는 압구정 사거리에 가서 여기가 내 고향입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호홋.
그는 또 다시 커다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누가 지웠는지, 그의 손톱 끝에 분홍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 죽으면, 영혼이라도 고향에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 무섭고, 두렵고…….
그의 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근데 있잖아, 언니.
밀어(密語)라도 전하듯 그는 조심스레 속삭였다.
- 그런데도, 무작정 돌아가고 싶더라? 어딘지도 모르는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데, 막 돌아가고 싶더라고. 그치, 언니도 그 기분 알지, 그치?
자꾸 흐르는 눈물 때문에 고개를 숙였던 건데, 어느새 나는 끄덕이고 있는 내가 되었다.
- 있으면 좋겠다, 거기.
중얼거리듯 그는 말했다.
- 언니도 그랬으면 좋겠지, 응? 빠쓰 정류장 말이야, 그런 게 정말 있겠어? 생각해봐, 빠쓰 정류장이라고 쓴 터미널 같은 게 있겠냐고?
모르겠다,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그렇다는 말이든, 아니라는 말이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 시간조차도 믿고 있지 못하는 내게 그건 너무 어려운 대답이었다.
- 근데 있으면 좋겠지? 거기, 있으면 좋겠지, 그치?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언젠가 남편에게 내가 했던 말이었다. 내가 모르는 피안을 그리며, 중얼거렸던 말.
- 어머머, 이 언니 또 청승맞게 울고 있어. 내가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하여간 청승 청승! 팔자도 더럽지, 성격도 그지 같지, 게다가 타고난 청승까지? 아휴, 아휴, 정말, 못산다, 내가!
입을 삐죽이며 그는 내게 눈을 흘겼다.
- 어머머, 회진 돌 시간 됐다, 언니, 거기 가방 좀, 가방 좀! 가방 안에 팩 좀, 팩 좀!
그는 빼앗듯 가방을 열어 사각의 비닐봉지들을 꺼냈다. 그리고 그 하나를 꺼내 얼굴에 펴 발랐다. 수염으로 뒤덮였던 그의 얼굴은 금새 흰 마스크 팩으로 뒤덮였다. 흰 눈이 내린 듯 그의 얼굴은 새하얘졌다.
- 언니, 언니도 하나 줄까? 이거 비싼 건데 내가 특별히 언니를 위해서 하나 쏘지, 자!
리브는 내게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토닥토닥 얼굴을 두드리는 그의 손은 가지런했고 세심했지만, 나는 하얀 그것을 그저 손에 들고 멍청히 앉아 있었다. 내 안에서 무엇이 터졌는지 자꾸 눈물이 흘렀다. 닦아내고 또 다시 닦아내도 그건 소용없었다.
그날 밤, 나는 또 다시 꿈을 꾸었다. 그런데 꿈에 나타난 것은 전곡터미널에서 만났던 그 여자였다. 눈썹이 없던 여자. 내게 담배를 건넸던 여자. 나는 입간판 옆에 서 있었다. 입간판 위에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여자는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함께 가자고 말하듯 검은 허공 속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허공 속에서 천천히 버스 한 대가 다가왔다. 아무런 목적지도 씌어있지 않은, 얼굴이 없는 운전사만 보이는 낡은 버스였다. 여자는 문이 열린 버스에 오르더니, 내게 타라고 손짓했다. 무언가 말하며 움직이는 입은 자신과 함께 가자고, 그 버스를 타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곳에 가 닿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버스 안을 들여다보았다. 몇몇 낯 선 얼굴들이 보였다. 그건 모두 잔뜩 기대에 찬 얼굴이거나, 너무도 간절히 어딘가에 가 닿기 위해 갈구하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내게 천천히 손짓했다. 어서 타라고, 어서 우리와 함께 같이 가자고.
그러나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에 실망의 기운이 스쳐지나갔지만, 다시 내게 채근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등 뒤에서 누군가가 건네준 것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어, 내게 내밀었다. 그건 하얀 천으로 쌓인 ‘무언가’였다. 그것을 받아들자, 안에서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안을 들여다보니, 갓난아기가 옹알거리며 누워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아이의 얼굴은 많이 낯이 익었다. ‘아, 예쁘다.’하고 중얼거리는데, 아이의 눈썹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기이하게 커다랗게 진한 눈썹. 마치 누군가 장난삼아 그려준 것처럼 어설픈 그런 눈썹.
옹알이를 하는지 아이의 입이 오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고개를 드니, 어느새 버스는 문을 닫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눈썹이 없던 그녀는 나를 고즈넉이 바라보았다. 안녕이라고 말하는지 그녀의 입이 움직였는데, 물론 나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그저 품 안에 아기를 꼭 끌어안았을 뿐.
너무도 포근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눈을 떴을 때, 리브의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그의 가방도 사라지고 없었다. 또 다시 복도 끝에서 누군가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는지,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던 건지. 허물처럼 벗어놓은 하얀 팩 마스크 한 장만, 리브 대신 침대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어쩐지 그것도 그처럼 경쾌하게 ‘호홋!’ 웃고 있는 듯 했다.
<22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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