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소멸의 시간
- 언니, 언니! 이것 좀 봐! 호홋.
먼지가 낀 유리문 밖에서 리브는 손을 흔들었다.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듯 그의 손짓은 부산스러웠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TV 앞에 묶여 있었다. ‘예멘’이라는 나라의 이름도 낯설었지만, ‘시밤’이라는 도시의 이름은 더욱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곳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신(神)인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살해하고 있는 그들.
- 언니, 언니! 빨리 나와 보라니까? 재밌는 거 있어!
나도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하는 생각을 떠올리던 순간이었다. 안타깝게 나란히 늘어선 다섯 명의 희생자 중에 맨 마지막, 거기에는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안순옥. 39세.’
- 언니, 모해? 빨리 나오라니까? 빨리!
리브는 이제 아예 대합실로 뛰어 들어와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얼이 빠져버린 나는 힘없이 그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 웃기지, 그치?
그가 나를 세운 것은 작은 철 기둥 앞이었다. 아마도 버스가 서는 곳에 다른 자동차들이 주차하지 못하도록 막은 일종의 가로대였을 것이다. 그런데 허리춤까지 오는 기다란 철 기둥 끄트머리에 누군가 웃는 얼굴을 그려 놓았다. 동그란 철판 위에 그려진, 한쪽 뺨에서 다른 쪽 뺨까지 죽 이어져 있는 비현실적인 웃음. 그건 좀 전에 TV 화면 속 사망자 명단에서 본, 내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비현실적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 온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들려 있던 그림책 하나. 그 속에 고양이 한 마리는 그런 비현실적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고양이는 먼저 사라지고, 한쪽 뺨에서 다른 쪽 뺨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웃음만 남아 킬킬거렸다.
- 웃어, 언니. 옆에 그 웃는 얼굴처럼 환하게 웃어. 내가 사진 찍어 줄게. 호홋.
그는 웃는 얼굴 옆에 나를 세워두고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네모난 것을 꺼내서는 나를 겨냥했다. 여기, 이상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 자, 찍는다? 웃어, 웃어!
- 오빠, 오빠!
사라졌다. TV에 떠오른 내 이름 옆에 남편의 이름도 있었을까. 꿈틀거리며 목덜미를 기어 올라오던 공포가 어깨 위에 툭 떨어졌다.
- 악!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나와 리브의 얼굴을 두리번거렸다. 사진을 찍던 리브는 제 잘못인 것처럼 슬그머니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뒤로 감추었다.
- 그냥 사진 찍는 건데…….
자신을 바라보는 남편의 불쾌한 시선을 눈치 챘는지, 리브는 황급히 몇 마디 덧붙였다.
- 가자, 대진터미널이라는 데가 좀 더 가면 있다는데? 근데 거긴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한대.
동굴 속처럼 그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어느 구멍에 빠진 듯 눈앞이 자꾸 침침했다. 눈을 비비고 또 다시 비비는데도 그의 얼굴은 흐릿해졌다. 이상하다, 여기?
- 여보, 여보?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느 시간의 구덩이 속으로 미끄러져가고 있는지, 조금씩 그의 목소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 했다.
- 안 내려요!
어느새 버스는 어둠 속에 정지해 있었다. 운전기사는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뒷거울을 통해 우리들을 봤다. 굴속에 들어온 버스에서 내리듯 우리는 더듬더듬 내려섰다. 버스가 떠나고 나자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까만 암흑 속이었다. 철썩거리며 파도소리만 들려오는 바다는 새까맣게 일렁거렸다. 멀리서 낙하한 별처럼 바다 위에 부유하는 빛덩이 몇 개가 보였지만, 우리들 발밑을 밝히기에 그건 너무 멀었다.
- 어머머, 저 아저씨 터미널에 내려달랬더니, 어디다가 내려준 거야?
리브는 제자리를 뛰며 종종거렸다. 겁도 없이 남편은 새까만 길 위를 건너갔다. 길 건너에서 그는 검은 그림자로 서서 우리들에게 손짓했다. 어느 경계를 지나듯 까만 길 위를 건너니, 그제야 기울어진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진시외버스터미널. 그리고 화살표는 산등성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700M라는 글자를 등에 진 채였다.
- 어머머, 저 위에 어디 터미널이 있다는 거야? 귀신들 전용 터미널이니? 새까만 산 속에 있게?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명 너무 먼 인가였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은, 다른 갈림길 같은 건 보이지 않는 산속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나는 엉겁결에 곁에 있던 리브의 손을 붙잡았다. 웃는지, 놀라는지, 눈과 코와 입이 사라진 까만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봤다. 기울어진 간판 앞에서 남편의 얼굴도 새까맸다. 간판 위에 글자들도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 잠깐 기다릴래? 내가 올라갔다가 올게.
- 아니! 같이 가, 다 같이.
리브의 손을 끌고 남편의 곁으로 바짝 섰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갑자기 신뢰할 수가 없었다. 내 곁에 섰는 남편과 리브 말고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거짓처럼 느껴졌다. 새까만 그것들은 내가 모르는 신호라도 주고받고 있는 듯 했다. 나를 더욱 깊은 구멍 속에 빠트리려고, 이제 더 이상 갈 곳 없는 궁지로 나를 몰아넣으려고.
남편은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무섭다고 리브는 몇 번 더 칭얼거렸지만,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붙들고 나는 리브를 붙들고 리브는 직직 끌리는 핑크색 가방을 붙들고 우리는 천천히 언덕 위로 올라갔다. 기울어진 화살표가 가리키던 바로 그 언덕 위였다.
- 뭐야, 여긴?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을 들여다보며 리브가 중얼거렸다. 겁도 없이 쿵쿵쿵 유리문을 두드렸지만, 오금이 저려 나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 이게 터미널이야? 뭐가 이래?
정말 그건 터미널이라기보다는 널따란 공터였다. 학교 운동장을 닮은 그 공간을 둘러싸고 낮은 건물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 유리문 안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유리문 위에 ‘매표소’라는 글자는 허공 위에 둥둥 뜬 것 같았다.
- 좀 둘러보고 올게. 들어가 있어.
- 안 돼!
엉겁결에 남편의 손을 붙들었다. 내 손끝으로 떨림이 전해졌을 것이다. 공포에 질린 나약한 인간의 떨림.
- 괜찮아, 혼자 있는 거 아닌데 뭘. 괜찮을 거야.
이상하다? 그는 지금 리브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라고 말하는 투였다. 리브를 올려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없는 동안 저 사람이 널 지켜줄 것이다, 라고 손가락질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상하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이, 남편은 새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리브는 천천히 유리문을 열고 있었다. 허공에 둥둥 떴던 글자들이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작은 문 안에서 새어나오는 흔들리는 불빛은 모든 것들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금방 누군가 켜 놓은 듯한 촛불이 흔들리고 있는 걸 보니, 인적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다, 라고 안심을 하는 순간 무언가 발목을 핥았다. ‘악!’ 소리를 지르며 의자 위에 주저앉았는데, 리브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강아지였다. 두 마리. 흰색 털이 뽀송뽀송한, 아직은 세상의 것들이 무작정 반가운 강아지 두 마리.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 그림자는 흔들리는 불빛 때문에 커졌다 작아졌다. 강아지를 어루만지던 리브의 모습도 작아졌다가 다시 커졌다. 남편의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의자 위에 앉으니 피곤함이 머릿속을 조금씩 지우고 있었다.
- 언니.
곁에서 강아지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리브의 목소리는 등 뒤에서 다가왔다.
- 응?
- 내가,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여전히 그는 강아지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는 중이었다. 수군거리는 그 목소리는 ‘언니’라고 부르지만 않았다면 강아지에게 하는 속삭임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뒷덜미에 또 다른 입이라도 열렸던 건지. 귀를 쫑긋 세우고 나는 그를 바라봤다. 바람이라도 부는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던 불빛은 크게 흔들렸고, 리브의 그림자는 좀 기괴하게 움직였다.
- 좀, 이상하지?
좀 전까지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말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러나 지금 제일 이상한 건 그의 말투였다.
- 뭐, 가?
- 여기, 여기도 그렇고.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실이다. 이상하긴 하다. 터미널이라는 이 곳. 사람들을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는 이 곳.
- 담배, 태울래?
담배 갑을 쥐고 있는 그의 손톱은 깨져 있었다. 매니큐어를 지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지, 덜 지워진 분홍색 매니큐어는 색깔의 때처럼 손톱 구석에 뭉개져 있었다. 그도 많이 피곤했던지, 들 뜬 화장 때문에, 턱 밑이며 목덜미에 분가루가 덕지덕지 엉겼다. 하얗게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은 왠지 하루 종일 울던 사람 같았고.
- 기억 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뒤집혔던 시간이 와락 달려들었다. 기억났다, 그 순간. 그에게 처음 담배 한 개비를 받아들던 순간. 새까만 어둠이 뭉쳐 있던 복도 위에서 둥실 떠오르던 그의 하얀 얼굴. 분명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 언니? 꿈에서 이상한 아이를 본다고 그랬지?
숨이 막혔다. 영락없이 그 때와 꼭 닮았다. 마치 시간의 종이가 접혀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주문을 누군가 외운 것처럼. 담배 연기를 내뿜기 위해 그가 입을 오므렸는데, 그 안에서 또 다시 알 수 없는 아리아가 흘러나올 듯 했다. 세상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는, 세상을 바꾸는 그의 주문.
- 언니는, 여기 이 시간을 믿어?
강아지를 어루만지던 그의 손이 멈췄다. 그가 작은 공간 안을 빙 둘러보는 순간, 차곡차곡 접혔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더 이상 버스가 들어와 서지 않는 터미널, 화면 위에 떠오르던 내 이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기우뚱거리지 않는 남편.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유리문 바깥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에게 꿈을 기억하게 했던 카메라를 든 사람들, 내 곁을 따라다니던 어색한 눈썹을 단 아이의 모습, 언제나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고래. 그리고 내내 그리워하던 내 사랑, 남편을 만났던 우연. 우연? 아닌가, 그 모든 것들은 내 바람이었던 건가?
유리문이 퉁퉁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까만 어둠 속에서 시간들이 영화필름처럼 흘러갔다. 바다로 가라고 말하던 아이, 가질 수 없는 희망을 말하던 대성이, 눈썹이 없던 여자,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 사람? 사람인가, 그는 분명 사람인가?
갑자기 머리 위에서 검은 그림자가 출렁거렸다. 그건 검은 물감처럼 조금씩 리브의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새빨갰던 그의 원피스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박스스타일이라고 말했던 그것은 조금씩 발밑으로 길어지고 있었다. 도포처럼 새까만 옷자락, 하얀 얼굴, 그리고 새빨간 입술.
- 언니. 언니는 지금 살아있다고 생각해?
- 읍!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온 몸의 구멍으로 비명이 새어나올 듯 했다. 그의 목소리는 ‘만나고 싶은 사람 없어?’ 라고 묻던 그 때와 정확하게 겹쳤다. 탕탕 바닥을 내리치면 쩍 하고 갈라질 것만 같던 그 순간.
- 언니, 여기는 언니가 생각하는 거기가 아니야.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다.
- 우린 이미 죽었어, 언니. 실은 나, 언니 데리러 왔어.
발작을 하듯 두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 아, 아냐. 아냐, 아냐!
아니라고 말하는 내 입술은 아무렇게나 요동쳤다. 주춤주춤 몸을 일으켰다. 발버둥치는 몸짓 때문에 낡은 나무 의자가 턱턱 옆구리를 찔렀다. 어디서 솟았는지 리브의 손이 내 팔꿈치를 움켜쥐었다.
- 악!
- 언니, 두려워하지 마. 상관없잖아?
부릅뜬 그의 눈에 시뻘건 핏줄이 터졌다. 그는 천천히 팔을 움직여 바닥에서 무언가 주워들었다. 강아지였다. 낑낑거리는 그것의 절박한 갈구는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다.
- 사실은 얘네들, 여기 표를 팔던 부부야. 근데, 이렇게 변해버렸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시 리브를 올려보았다.
- 큭, 내가 마술을 걸어서,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어. 큭, 큭큭!
리브는 커다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 큭, 히히히히!
그의 웃음소리는 작은 공간을 꽝꽝 울렸다. 순간 퍽 소리를 내며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던 불빛이 머리 위에서 켜졌다. 바닥을 구르며 웃고 있는 리브를 따라 강아지 두 마리는 펄쩍펄쩍 뛰었다. 남편은 그제야 유리문을 밀며 들어왔다. 그의 뒤에서 중년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플래시가 들려 있었다.
남자는 이곳의 전기 배선이 낡아 자주 정전이 되어 골치라고 말했다. 간성읍 내로 가는 버스는 길 아래쪽에서 타고, 서울 가는 버스가 아침저녁으로 서너 번 있기는 하지만, 저녁 일곱 시면 막차는 끊어진다고 했다. 다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 시내버스를 타야하는데, 그마저도 한 시간 정도는 더 기다려야 버스가 올 거라며 흘끗 벽시계를 올려 보았다. 작은 쪽문 안으로 들어가 흔들리는 촛불을 그는 훅 불어 껐다. 꺼진 것은 겨우 촛불 하나인데, 작은 대합실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남자가 켠 형광등 하나는 우리 머리 위를 밝히기에는 너무 힘겨웠다.
산길을 내려오는 중에도 리브는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장난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여전히 웃음을 꾹꾹 눌러 담은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남편은 끝까지 그의 웃음을 외면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안하다 말하며 호호거렸지만, 나는 그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를 내거나, 손가락질을 해주지도 못했다.
여전히 나는 혼란스러웠다. 장난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뒤틀렸고, 먼 바다 위 낙하한 별들의 개수는 더욱 늘어났고, 남편의 걸음걸이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다.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아이가 나타나 ‘짠, 살았다!’ 라고 말할 것 같고.
우리는 시간 속을 걷고 있었다. 이상하고 신기한 시간 속이었다. 하늘을 올려보니 아직도 별들은 무수히 남아 저마다의 크기로 반짝였다. 기우뚱 기울어진 초승달은 어느새 웃고 있는 입모양이 되었고. 기억 속의 그 때처럼 고양이는 사라지고 킥킥거리며 웃는 입 모양 뿐이었다. 토끼가 사라진 동굴 속처럼 깜깜한 여기. 맞다, 삶이란 처음부터 그렇게 이상하고 신기한 시간 속이었다. <19화에서 계속>
'+이정도면호상 > [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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