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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글픽쟁이의 맵시 ] 디자인

할매 Must Have Item!

 

 

 

 

 


 

파마머리, 꽃무늬셔츠, 몸빼바지, 효도신발……. 할머니들의 대표적인 패션코드.

할머니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강남에 사는 돈 많은 할머니? 아니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유학파 할머니? 아마 둘 다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저런 패션의 할매 스타일이 대부분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내적 또는 외적 요소들로 오랜 시간 누적되어온 “할머니”들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고정관념”보다는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앙드레 김” 하면 순백의 화이트 컬러가 익숙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할매가 입는 옷을 다른 할머니들도 입는다. 다들 그렇게 입는다. 하지만 개성 없고 촌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대다수의 할머니들에게 이러한 패션코드가 널리 적용되는 이유는 편리함과 경제성이라는 측면이 가장 클 것이다. 물론 세대와 세대 간의 미적 기준도 다를 것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할머니스런 패션코드”는 할머니를 가장 할머니스럽게 만든다. 그 할머니가 그 할머니 같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마치 우리 친할머니 같아서 전혀 낯설지 않다거나 그저 잘 해드리고 싶어진달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따위는 금세 허물어질 만큼 이 “할머니스런 패션코드”는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오륜마을에 갔더니 할머니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파마머리를 하고 계셨다. 물론 다 똑같아 보이는 꽃무늬 셔츠라도 그 패턴이나 색상은 각양각색이다. 셔츠에 쓰인 색상이나 꽃의 크기에 따라 할머니들의 패션센스 레벨은 달라진다. 멋쟁이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고 치자. 농담 조금 보태서 그 할머니의 셔츠 꽃무늬가 마을에서 제일 크지 않을까? 헤어스타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마롤, 파마약, 심지어 파마를 말아주는 미장원도 모두 다 똑같은 건지 파마의 조밀함(?) 정도마저 “Crtl+C, Crtl+V”를 한 것 마냥 죄다 비슷했다. 무슨 매트릭스에 나오는 '스미스 요원'도 아니고……. 사실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널리 통용되는 미적 기준이고 개개인의 차별화된 개성이나 스타일일 것이다. 우리들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파마머리, 꽃무늬셔츠, 몸빼바지, 효도신발이 왜 할머니들의 Must Have Item이 되었을까? ‘늘 그래왔으니까 그렇겠지’란 논리는 사실 재미없다. 분명 이유는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할머니스런 패션코드”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름하여 할매 Must Have Item!

 

 

 

할머니들의 파마머리는 왜 죄다 똑같을까? :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머리숱은 적어져 머리카락 밑이 훤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흘러가는 야속한 세월엔 장사 없다. 할머니들이 파마를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비어보이는 두피를 가리기 위함일 것이다. 또 뽀글뽀글한 파마는 한번 해놓으면 꽤나 오래간단다. 딱히 헤어스타일에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어느 정도의 단정함은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할머니들의 파마가 왜 다 똑같은가에 대해서도 궁금증은 간단하게 풀린다. 말려진 컬이 촘촘할수록 자리 잡힌 헤어스타일은 오~래 지속된다. 조밀하게 말면 말수록 파마의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셈이다. 사실 할머니들 쌈짓돈으로 파마를 말면 얼마나 자주 말 수 있겠는가.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오래오래 가는 “뽀글파마”가 할머니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이었을 것이다. 실용적이며 경제적인 측면을 추구하다보니 이것도 하나의 패션이 되어버린 것이다.

 

할머니들은 왜 꽃무늬를 좋아할까? : 나이가 들수록 꽃무늬에 눈이 가나보다. 패션은 돌고 돈다 하여 최근에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플로럴 프린트”가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꽃무늬”는 할머니들의 로망이자 전유물이라는 느낌이 있다. 또한 놀랍게도 “꽃무늬”만큼은 대한민국 할머니들을 비롯한 전세계 할머니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Global 할매 Must Have Item이다. 과연 이유가 뭘까? 꽃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특정 세대층에서 이러한 성향이 공유되는 이유가 뭘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연물을 좋아하게 되어서가 아닐까?”였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이러한 과정이다. 속되게 쓰는 표현으로 죽을 때가 가까워져서라는 말은 절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노년층에서 유독 “꽃무늬”를 선호한다는 것은 나이가 듦에 따라 바뀌는 친자연적 성향과 취향 때문이 아닐까.

 

할머니들은 왜 몸빼바지를 즐겨 입을까? : 우리가 흔히 일컫는 “몸빼바지”는 “일바지”라고 불러야 맞다. 몸빼라는 말은 엄연히 일본어이며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강제로 입게 한 노동복이었다. 그 당시 일제는 몸빼 착용을 권장하기 위해 “몸빼 필착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또 이에 불응할 시에는 크고 작은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이 일할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정도로만 알고 있는 “몸빼바지”는, 실은 일제 강점기가 남기고 간 뼈아픈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우리말로 수용된 외래어처럼 몸빼라는 말과 실체는 자연스레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몸빼를 즐겨 입는 지금의 할머니들은 일제 강점기를 몸소 겪은 세대이니 할머니들에게는 더욱 친숙할 것이 분명하다.

몸빼는 남자들도 한 번쯤은 입어봤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할머니들이 몸빼를 입는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요즘 세대들이 입고 다니는 스키니나 타이트한 핏의 의복들이 편한 복장은 아니지 않은가. “저렇게 입으면 피가 통할까?” 싶을 정도로 꽉 조여오는 요즘의 옷들이 할머니들에게 편할 리 없다. 그리고 합당한 이유는 더 있다. 몸빼는 가격도 저렴하다. 시장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이면 산다. 저렴해야 앞뒤가 맞다. 일할 때 입는 노동복이 비싸다면 그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겠는가. 미리 염색된 원단으로 치수별 재단도 필요 없으니 만들기도 쉽다.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통 넓은 프리사이즈니 말이다.

 

할머니들의 신발 앞에는 “효도”가 붙는다! : 할머니들 사이에서는 [Comfort靴, 컴포트화], 일명 “효도신발”이라고 불리는 신발이 대세다. 브랜드를 막론하고 신발 끝이 뾰족하지 않고 뭉뚝한 형태가 대다수라 죄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이 신발은 굽이 낮고 밑창이 푹신한 신발이다. 말 그대로 편한 게 절반 이상이다. 애초에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신발은 아니었으나 중장년층에서 꾸준한 인기를 끌면서 이 신발은 자식들의 효도 수치와는 상관없이 “효도신발”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다 큰 자식들이 사주지 않으면 신을 수 없는 신발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효도신발”이라는 이름은 정감이 가서 참 좋다. 내로라하는 효자는 아니지만 친할머니가 살아계셨더라면 이참에 하나 장만해서 신겨드렸을 게 분명하다. 할머니들이 효도신발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간단하다. 근력과 관절이 좋지 않은 할머니들에게는 신고 활동하기 편한 신발이 필요했을 것이고 굳이 종류를 따져보자면 그 신발이 컴포트화 형태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신발이 “효도신발” 내지는 “효도화”로 불리며 할머니들의 발걸음을 함께 했다.

 

 

 

현대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고 남들과 똑같은 것을 거부한다. 모든 것이 차별화되는 희소의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패션은 일반적인 접근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별개의 영역인 것인지 이와는 달리 할머니들 사이에 유사성이 강한 문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 눈에 세련된 차림이 아니어도 좋다. 늘 그래왔듯이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꽃무늬 패턴 셔츠, 풍덩한 몸빼바지, 그리고 이 패션의 마지막! 화룡점정으로다가 효도 신발까지. 이렇게 친히 갖춰주시고 시골집 대문 앞에서 손 흔드는 그런 만인의 할머니가 좋고 그립다. 인사나 절이라도 넙쭉 하면 “옛다 기분이다 까까 사무라”하시며 용돈이라도 대뜸 주실 것 같은 그런 할머니가 좋다는 것이다.

 

명절에나 한번 뵐까 말까하는 할머니들이 오륜마을에 많이 계셨다. 우리 할머니와 생김새는 다르지만 오륜동 할머니들에게서 "할매 Must Have Item"을 보니 친할머니 생각이 난다. 앞집, 뒷집, 옆집, 윗집 할머니도 이 순간만큼은 시골집 대문 앞에서 반갑게 손 흔들어 반겨 주시던 내 친할매가 된다. 정말 이 "할머니스런 패션코드“는 마성의 힘이라도 지녔나보다.

 

혹자는 촌스럽다고 할지언정 우리네 할머니들은 이런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어 주셨으면 좋겠다. 이런 할머니를 우리는 레알 할매라 부른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daum.net/sudal7/18324040

 

 

by 작은고추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문화이모작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