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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글픽쟁이의 맵시 ] 디자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수 없는 기억에

햇살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중략)

저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밑~ 그향기 더하는데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요즘 가수 오디션 및 서바이벌 TV프로그램에서 많이 불려지고 있는 노래다. 1998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라일락 향기가 지금은 향긋하지가 않은 것 같다. 현대의 거리에서 시원한 가로수 그늘 밑에서 라일락 향기를 맡기란 어렵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팔랑거리는 것이 아니라 과자봉지나 전단지가 펄럭이며 오묘한 악취를 풍긴다. 노래 가사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으며 떠나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회상하지만, 정작 거리의 가로수에 나가면... 음~~ 스멜~~ 오묘한 악취를 맡으니 시험기간이면 밤샘공부하느라 감지 않은 그녀의 머리냄새가 생각난다. 떠나보내길 잘했다고 생각들 판이다.

 

 날이 더워지니 거리에서 생과일 쥬스나 빙과류를 많이 사먹게 된다. 시원한 가로수 그늘 아래는 아니지만 더위를 식혔다. 그런데 이런! 주위를 둘러보니 쓰레기통이 없다. 궁물이 흥건한 이 껍데기를 어디다 버린담? 작은 과자봉지였다면 양심적으로 가방주머니에라도 넣어서 나중에 쓰레기통에 버리겠건만, 촉촉이 젖은 이 껍데기는 어디 넣을 수가 없다. 공공환경개선을 위해 윗분들께서 거리의 쓰레기통을 다 치우셨다. 그러다보니 길가 어느 귀퉁이에 쓰레기를 슥 버리거나, 어느 가게 앞에 종량제봉투가 있으면 쑤셔 넣는다. 그런데 이마저도 주위의 시선 때문에 어렵다면? 이제 길바닥을 내려다보지 않는다. 내 눈높이에 보이는 어느 담벼락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고 가거나 가로수, 전신주 등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쑤셔 넣는다. 고사상에 올려진 돼지 콧구멍을 본 듯 사정없이! 개중에 조금의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은 쓰레기를 고이 접어서 예쁘게 꽂아놓는다. 쓰레기가 아닌 듯, 가로수의 나뭇잎인 듯.

 

 거리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쓰레기의 문제, 혹은 쓰레기통에 생활쓰레기를 투기하는 행위 등의 문제로 인해 쓰레기통을 치워버렸더니 이젠 쓰레기들이 눈높이에서 아른거린다. 대안없는 이러한 조치로 인해, 발밑에서 볼 수 있던 오물님들이 ‘날 잊지말아주오’하며 눈높이에 올라와서 미간을 찌뿌리게 한다. 아이스크림 막대바와 빨대, 용기 등이 사정없이 꽂혀있는 가로수와 전신주에서는 궁물이 흐른다. 어떤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마이무따이가...

 남의 집(주택이나 상점 등) 대문, 담벼락에 꽂힌 쓰레기들은 웃기기까지 하다. 삼일절에 태극기가 꽂혀있어야 할 자리에 웬 아이스크림 막대기가?

 거리에 쓰레기통들을 다시 비치해달라고 조르고 싶진 않다. 그러면 쓰레기들이 더욱 넘칠테니깐.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에게 거리에 쓰레기 버리지 말자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궁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조금 있으면 진득하게 굳겠지? 지금 당장 내 손에서 떠나보내지 않으면 내 손은 진득하게 궁물이 눌러 붙겠지? 그러면 애인과 데이트하며 손을 잡을 수가 없단 말야~ 안대애~~

 

 쓰레기통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만 쓰레기통처럼 보이지는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버렸다. 쓰레기를 넣을 수는 있지만 쓰레기통은 아닌 것! 하지만 전혀 새로운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원래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계속 사용해왔다. 지금 말하려는 것은 단지 ‘진짜’가 아닐 뿐이다.

 전신주나 가로수처럼 생겼지만 쓰레기를 넣을 수 있는 구멍이 그것이다. 대놓고 쓰레기를 넣으라고 할 순 없다. 그랬다간 투기가 극성일테니깐. 하지만 아닌 듯 맞는 듯 너스레 떨며 서있는 ‘쓰레기기둥’이라면 멀쩡한 전신주나 가로수들이 아이스크림 막대기에 칼침맞는 일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몰래 쓰레기기둥의 구멍에 쓰레기를 쏘옥 넣으면 된다. 그리고 새벽밤에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몰래 그 ‘가짜’ 가로수에서 쓰레기들을 수거해주면 된다... 물론 버리는 사람이나 치우는 사람이나 들키면 안된다. 암묵적인 구멍이니까.

 

 이런 제안을 슬그머니 꺼내보는 입장에서도 다시 쓰레기통을 재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내 제안을 실행하려면 비용이 들텐데 투자대비 효용성이 낮다는 판단으로 인해 예산편성에서 고려되지 못할 것 같기는 하다. 행정가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은 지양해야될 일이지만, 쓰레리기둥이 거리의 새로운 개념의 볼거리가 된다면 좋을 것 같은 상상에 손을 들어줄 수 없을까?

 그래서 쓰레기기둥을 어떻게 만들면 될지 생각해보았다. 쓰레기기둥의 구멍은 너무 예쁜 동그라미가 되어선 안된다. 쓰레기를 넣게끔 유도하려면 적당히 일그러지고 거칠고 더러울 필요가 있다. 쓰레기에게 더럽혀져야 되는 본분을 망각한 채 생뚱맞은 조형물로 취급당해선 안되니까. 구멍의 높이도 신중히 정해서 뚫어놔야 된다. 손에 들고 있는 쓰레기를 투입하는 팔의 각도를 고려한 높이다. 그리고 구멍은 한두개로는 부족하고 여러개가 있는데 군데군데 의도적으로 쓰레기를 꽂아놓을 필요도 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쓰레기를 일부러 조금 남겨두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신들도 몰래 이 구멍들에 쓰레기를 꽂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리고 구멍만 뚫을 게 아니고 쓰레기기둥의 꼭대기는 계단식으로 만들어서 구멍에 채 들어가지 못한 쓰레기들을 모실 수 있는 공간도 둘 필요가 있다.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인 마냥 내용물은 비어있는 껍데기들을 전시하는 것이다. 물론 가지런하게 놓여있진 않을 것이다. 바람에 굴러떨어져 거리를 더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멀쩡한 가정집 대문이나 담벼락을 쓰레기들의 습격으로부터 다소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쓰레기통이 사라진 거리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받고 있는 담장, 전신주, 가로수들을 지켜내자.

 

모세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일으켰다.

여기 누가 와서 쓰레기로 가득한 거리를 갈라 기적을 일으켜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