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에 일이 있어서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갔었다. 약 1년여만에 둘러본 센텀시티 거리에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예전 출퇴근길에 한창 공사중이던 제2벡스코와 오디토리움이 (조감도에 그려져 있던 그 모습대로) 웅장하게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완공된 제2벡스코는 본관과 구름다리로 연결이 되어 정말 멋진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벡스코가 센텀시티에서 혼자 위용을 뽐내고 있었던 때가 불과 몇 년전인데, 주위의 여러 마천루들도 가세하여 그야말로 으리으리한 곳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지척의 거리에 영화의 전당, 영상후반작업시설(AZworks), 문화콘텐츠컴플렉스, KNN신사옥 등 멋진 건물들이 즐비해있다. 정말 하나같이 멋진 건물들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인기를 독차지하던 벡스코에게 경쟁자들이 생긴 거 같은데, 벡스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사람들의 이목은 새롭게 들어서는 건물들에게 쏠릴테니까...
MICE(기업회의 Meeting, 부가가치 창출 Incentive, 국제회의 Conference, 전시사업 Exhibition)산업과 영화·영상산업이 부산의 핵심정책이 되면서부터 으리으리한 고층건물들이 해운대구 센텀시티를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시설들의 집적효과로 부산의 산업 발전 및 경제 활성화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들이 전파를 타고 있는데, 그러한 효과들을 체감하기는 커녕 눈만 어지러울 따름이다. 여기가 부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최신식 건물들은 내게 경외감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눈을 피로하게 한다. 키재기하는 듯 들어선 건물들 사이로 햇볕조차 안드는 곳이 많다. 뭐... 여름에는 그늘져서 시원하기는 하겠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벡스코가 갓 들어섰을 때엔 꽤 멋져보였다. 그러나 영화의 전당, 영상후반작업시설(AZworks), 문화콘텐츠컴플렉스, 제2벡스코와 오디토리움 등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멋진 디자인과 첨단시설로 무장한 건물들이 난립하면서 오히려 각각의 멋은 상충되는 것 같다. 뛰어난 목소리를 가진 가수들이 서로 돋보이려고 하다보니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듯 한 느낌이랄까...
그외에 부산 곳곳에 랜드마크를 표방하는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랜드마크에 걸맞게 멋진 외관으로 포장된건물들이다. 하지만 디자인계에 뛰어든지 얼마 안된 초짜인 내가 감히 건방을 떨자면 통합아이티덴티티의 부재를 꼬집고 싶다. 이왕이면 이 멋드러진 건물들을 모아놓았을 때 연상되는 통합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면 이 건물들의 멋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인데, 실상은... 마치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크랭크인하였으나 대스타들을 묶어주는 치밀한 스토리의 부재로 감동은 없는 영화같다... 각각은 얼짱 출신들이지만 모아놓으니 뭔가 어설픈 아이돌 그룹같기도 하다.
이러한 광경 속에서 벡스코는 주위에 들어선 후배 건물들을 보면서 씁쓸해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누리던 인기를 뺏길지 모르니 말이다. 아니다, 어쩌면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그들도 인기가 식을것이라고... 왜냐고? 자꾸만 들어서는 멋진 건물들이 각자 부산의 랜드마크, 문화산업의 중심지 등을 외치면서 싸울테니까. 그러면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영화의 전당, 제2벡스코 등도 언젠가는 그 왕좌를 물려줘야할지도 모른다.
한번 더 딴지를 걸자면, 부산 영화·영상산업의 중심축이라고 하는 ‘영화의 전당’의 디자인을 독일의 BMW박물관을 디자인했던 사람의 공모안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전용관이라는 건물을 부산에 대해선 모르는 외국인이 디자인했다.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건축가가 없는 것인가? 부산다움을 구태연하게 바다 파도와 갈매기가 아니고서라도 세련되게 담아낼 수 있는 건축가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일까? 부산 ‘국제’ 영화제의 명성에 걸맞게 국제공모전으로 당선된 뛰어난 디자인을 그 자체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건물 자체의 멋부림에 빠져서 ‘부산’의 지역성이 뚜렷히 느껴지지 않는 건물이 ‘부산’의 랜드마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부산 놈으로서 못마땅하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그 건물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감귤을 벗겨낸 듯, 가리비를 닮은 것 같기도 한 건물은 바다와 조화롭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 시드니만의 매력인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따라할 수 없는 독자적인 도시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우리 부산처럼 해양도시이면서 세계적 명성을 구축한 인근 사례를 또 찾아보면, 싱가포르를 언급할 수 있겠다. 그들은 지역의 전통성을 적절하게 현대화한 경우이다. 싱가포르의 전설 중에 ‘멀라이언’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다. 몸은 인어에 머리는 사자인 환상의 동물인데, 고대 싱가포르의 전설에서 대형 폭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도시 테마세크를 구했다고 한다. 1965년 독립과 더불어 멀라이언의 상징과 스토리를 차용한 싱가포르는 국제무역항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훌륭한 도시 이미지는 ‘최신식’ ‘최첨단’을 맹목적으로 좇을 것이 아니라 도시 고유의 매력을 다듬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통합이미지를 일관되게 적용시킨 디자인을 도시에 입힌다면 정말 멋질텐데! 다이나믹 부산이든, 로맨틱 부산이든 그 슬로건에 맞는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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