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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너도 돼지 먹어? 나도 돼지 먹어!” 극단 코오로의 <아기돼지 삼형제>

 

돼지의 맛을 아는 당신에게
어린 날, 즐겨 읽던 <아기 돼지 삼형제>를 기억한다. 짚으로 만든 첫째의 집이 늑대의 입김 한 방에 날아갈 때의 공포, 늑대가 둘째돼지를 찾아갈 때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어린 나는 귀엽고 약한 돼지 편이었다. 돼지를 잡아먹는 늑대가 굴뚝 속에 들어가 타들어가 죽는 장면에서 크게 안도하는 철저한 돼지 편. 하지만 동화책을 내려 놓고 식탁에 앉으면 입장이 달라지고 만다. 나는 돼지로 만든 돈까스와 햄을 늑대처럼 맛있게 먹었다. 케찹 살살 뿌린 돈까스에 군침 흘리고, 잘 구워진 삼겹살에 환장하는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 마리 배고픈 늑대였다.

좋은 각색이 전통을 만든다
재밌는 가족극을 고를 때, 유명한 동화를 다룬 작품은 삼가게 된다. 원작의 맛까지 흐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작이 좋다고, 공연까지 좋은 경우는 드물다. 바로 각색 때문이다. 각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이 작품이 지금,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과거의 교훈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낡은 작품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좋은 각색을 하기 위해서는 극작가의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극단 코오로는 <아기 돼지 삼형제>라는 작품을 40년 동안 쭉 공연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이 유명한 작품을 어떻게 각색했을까’ 궁금했다. 밀양연극제에서 만났다.

늑대의 한탄, 비열한 캐릭터는 이제 그만!
 중반까지 이야기는 원작과 거의 흡사하다. 돼지들이 차례로 집을 만들고, 늑대가 등장한다. 이야기의 색다름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돼지가 주인공인 동화나 우화는 많다. 곧잘 게으름과 부패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만 동화 속 늑대의 비열함과 응큼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극단 코오로의 늑대는 기타를 멘 팔자 좋은 한량으로 등장해서 말한다. “나는 매일 이런 못된 역할만 한다.” 심지어 늑대는 둘째 돼지를 잡아먹기 전, 웅성이는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너도 돼지 먹어? 나도 돼지 먹어” 관객석에서 한 아이가 소리친다 “나는 돈까스 좋아해!” 늑대가 받아친다. “먹어 먹어”

돌고 도는 생태계의 원리
 
두 마리 돼지를 잡아먹고 난 늑대는 마지막 셋째 돼지를 노린다. 목숨이 위협받는 지도 모른 채 튼튼하게 집을 지은 셋째는 편안하게 잠을 잔다. 벽돌 무너뜨리기에 실패한 늑대는 굴뚝을 이용해서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뜨거운 화로의 불에 몸이 휩싸이고, 타죽고 만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셋째 돼지는 탄 늑대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늑대는 죽고, 탄 늑대의 몸은 돼지의 일용할 양식이 된다. 돌고 돈다.

 

돼지의 맛이 낯설어지는 순간 
  관객은 연극을 보며 은연중에 늑대를 야만으로 취급한다. 고상하게 나이프와 포크로 잘라 먹는 나는 문명이고, 생고기로 뜯어먹는 늑대는 야만으로 보는 것이다. 둘 다 육식이라는 사실은 같음에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너도 돼지 먹어? 나도 돼지 먹어"라고 이야기하는 늑대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극단 코오로는 아기돼지 3형제를 통해서 "부지런한 자가 살아남는다"라는 교훈이 아닌 생태계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먹고 먹히고, 태어나고, 죽고. 이 모두가 자연을 이루는 과정이며 전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도 그 속에 있다고 말한다.
 지금 리 주변을 둘러보자. 콘크리트 바닥은 죽은 짐승을 썩히지 못하고, 도시의 곤충들은 살 데를 잃어간다. 도시의 모든 것들이 너무도 인간을 위한 것들이다. 사람도 생태계의 일부분이라는 당연한 이야기가 필요한 시대다. 극단 코오로의 <아기돼지 삼형제>가 오랫동안 상연되는 이유는 바로 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