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물&장소&문화

[인물] 대책없는 것에 대한 응시 - 작가 이여주

  연애를 하면 그 대상만 확대되어 보이는 경향이 있다. 다른 것들은 잘 안 보이고 모든 생각의 차단과 시작이 그곳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술가들처럼 언어를 하나 더 가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런 통로가 있다. 어쩌면 지독한 편견일지도 모르는 그러한 상태, 그러면서도 그 자체로 의미로 가득한 부표들을 나는 ‘우주의 얼굴’이나 ‘세계의 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은 학교 다니면서 노트 뒤에 습관적으로 끄적이면서 많이 그렸던 것 같고요. 건축과 들어가서 드로잉이나 그런 것들이 손에 좀 익었던 것 같고, 그냥 이것저것 그리면서 일기처럼 그랬던 것 같아요.”


  일기라... 확실히 예술은 하나의 언어인 모양이다. 모국어도 아니고, 문자도 아니지만 일기를 쓸 수 있는 언어. 예술가들은 그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한다.  화가 이여주. 그녀의 그림은 대개가 몸을 분해하고 재구성한다. 그 중에서도 주로 얼굴인데 눈과 입을 그 자체로, 혹은 주변의 창이나 건물 등의 구조와 함께 재배치한다. 계단, 벽 등의 구조물 속에 인체가 녹아들기도 하고 인간처럼 보이는 형상이 구조물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녀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구조물과 인체(그 중에서도 얼굴)는 확실히 그녀 그림세계의 얼굴이고 입이다.


“건축일을 하면서 공간이나 직선들을 이용해 뭔가 구축물을 만드는 게 재밌었는데, 그게 그림 그릴때도 나오는 같아요. 그러다가 저의 주 관심사인 인간에 대한 것들이 겹쳐지면서 이상한 형태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탈주하려고도 하고, 서로 배경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 마음속을 해부해 보는 듯한 그런 그림들을 주로 그렸던 것 같고, 얼굴도 많이 그린것 같아요.”


  그녀에게는 생활의 파탄으로부터 지켜줄 건축디자인이라는 보루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 쉽다는 말은 아니지만, 생활을 꾸려나가는 기술 하나는 가진 셈이다. 그리고 그 기술은 그녀의 그림세계에도 작용해서 공간과 구조, 인간을 분석하고 배치한다. 그러니 건축일이라고 하는 것은 생계와 더불어, 작가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 세계와 저 세계 둘 다에 닿아있다.


  그런데 그녀 우주의 얼굴과 세계의 입은 유머스럽거나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하고 불완전한 인간에 주목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외로움, 불완전함, 그런 것은 장소이기 이전에 인간의 속성 같기도 하고요. 도시에서 제가 그런 것을 더 느끼는 것은 아마 제 삶의 기억들이 거기 더 많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건물 하나 지어지고 허물어지는 것, 사람 한 명 들고 나는 것에 대수롭지 않은 도시는 더 무심해서 외로움은 커진다. 이 도시에서 작가의 기억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작가의 언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가장 어이없는 불완전함과 고독의 경험에 대해 물었다.


“가장 어이없는 불완전함의 경험은..누군가 돌아가시게 되면 느낄 때 있어요. 있다가 없는것, 대책없이 존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때요. 고독의 경험은..가끔 낯선곳에 혼자 있는데 해가 질때요.”


  일상의 해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있던 해가 사라지는 것이나 어제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죽어버리는 것은 정말 대책 없는 일이다. 그러니 그녀의 작품은 있음과 없음이라는 도식적 이분법이 아니라 “있었던 것”의 “사라짐”이라는 정서 경험에 대한 응시의 결과물이자 그림일기다.




  자연 속에서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을 늘 지니고 있는 작가. 그녀는 자연 속이라면 인간에 대한 탐구의 결도 달라질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 속에서, 그 도시를 만드는 건축일을 하면서 인간의 고독과 불완전함을 관찰하고, 느끼고,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이 그림일기들은 여전히, 지독한 편견이면서 또 충만한 대책없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 아닐까.




by 씨부렁 박

motwj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