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르겠다는 말이 참 부끄러웠다. 막연히 작가는 모든 것에 능통하고 잘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배워야 할 게 한 두개인가... 도서관에서 가서 역사책을 한 권 빌리더라도 모르는 게 천지였다. 아주 막연히 스트레스만 받고 있을 때, 멘토를 찾아갔다. 그는 “많은 것을 알기보다, 하나라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서도 계속 모르는 상태로 있는 게 나쁜 거지”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그래서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조소 공부하는 26세의 젊은 작가를 만났다. 수많은 질문을 했는데 뒤로 갈수록 “아직 모르겠다”라는 답변이 많았다. 분명 어디서 들은 말도 있을테고, 말하려면 할 수 있을 텐데 변명도 하지 않았다. 아주 진중하고 담백하게 “모르겠다”라고 말할 뿐. 오버하지 않고, 뻥치지 않고 고스란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감명을 받았다.
작가 정치성 (26세)
당신을 몰라요. 소개 좀 해줘요
보통은 어디에서 사는 누구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나 그대로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성향을 말하자면 보시다시피 차분하고 진지하다. 눈빛도 진지하다고들 한다. 입만 열면 나오는 말들도 전부 진지하고... 그 모습 그대로 나의 에너지라고 보면 좋겠다.
예술을 맛있게 먹고 싶은 사람. 예비 예술가라고 소개하고 싶지만 아직까진 예술을 어떻게 먹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조소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
조소를 선택 했다기보다는 끌림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물론 입시체제 속에서 제한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 상도 많이 받고, 나름 재능을 인정받았다. 유독 관심도 많았고. 물론 가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아버지는 젊었을 적 예술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공대를 지망하셨다. 아무래도 아들에게는 잘하는 걸 시키고 싶으셨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현재 섬유공예를 하신다. 아무래도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환경과 끌림. 두 가지 모두가 나를 자연스럽게 미술로 흘러 들어가도록 만든 요소다.
정치성 작가는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다 살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뭐야?
정치성 작가의 드로잉 드로잉 전시 잘 봤어. 언제부터 작업한 거야?
2012 한 중 교류전 전시 작품 <무제> 정치성의 완성은 언제쯤 이뤄 질거라 생각해?
CAFE Mogm에 전시된 정치성 작가의 드로잉 파괴하고, 파괴하고, 파괴해야만 했다. 구원은 그 대가로써만 이루어졌다. 대리석 속에 떠오르는 벌거벗은 얼굴을 파괴할 것, 모든 형태 모든 아름다움을 파괴할 것. 완성이란 입구이므로 완성을 사랑할 것, 하지만 알게 되면 곧 그것을 부정할 것, 죽게 되면 곧 그것을 잊어버릴 것, 미완성이 절정이다. -시집 <살라망드르가 사는 곳> 창작인들은 완성과 미완성. 두 상태 사이에서 산다. 정치성 작가
제일 중시하는 건 내공이다. 그리고 통찰력. 평소에 사회학에 관심이 많고, 이론도 많이 탐구하는 편이다. 대중문화의 기호학에도 관심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졸업이 아쉽다. 교양과목을 좀 더 배웠어야 했다. 미대에서는 따로 인문학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실기 위주니까. 큰 문제라고 생각 들지 않나. 결국 자기 스스로 이론과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깨닫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교양을 쌓기 위해선 수많은 기본소양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도 배움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년에 대학원으로 진학해 공부를 쭉 이어갈 생각이다.
좋아하는 작품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의미가 담긴 작품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프랭크스텔라의 <아마벨>이라는 작품이 있다. 현재 서울 포항제철 본사 앞에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배경에는 가슴 아픈 사건이 있다. 친구의 딸이 비행기 추락으로 죽게 된다. 프랭크스텔라는 그 비행기 잔해로 작품을 만들었다. 친구의 어린 딸을 피어나는 꽃으로 형상화하며 애도의 뜻을 담은 것이다.
작년부터 드로잉에 빠졌다. TV를 틀어놓아도 드로잉만 했다. 아무리 재밌는 것이 나와도 작업만 쭉 이어갔다. 이틀 내내 드로잉만 한 적도 있다. 나는 한번 영감을 받으면 한꺼번에 쭉 작품을 뽑아내는 스타일이다. 그 후 1년 동안 정체기가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펜을 잡았다. 이번 전시회는 그 때 나온 드로잉을 전시한 것이다.
조소에서 드로잉은 기록의 일부이다. 단순 형태를 만들더라도 정면과 측면이 필요하다. 그럼 드로잉이 2개 필요하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평면 작업 하는 분들 중에는 드로잉을 싫어하는 분도 있다. ‘머릿속에 다 있는 걸 왜 굳이 그려야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드로잉은 에너지를 종이에 담는 일이다. 선들을 내 에너지라고 보면 된다.
내 작품들은 병을 닮았다. 드로잉에 빠져 있을 때, 아름다운 윤곽선에 대해 생각하다가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아름다운 윤곽선 뭐가 있나?’ 여러 가지 나온 대답 중 콜라병이 있었다. 그리고 단번에 마음이 사로 잡혔다.
언젠가 수많은 드로잉 작품을 쭉 펼쳐놓고 마음에 드는 것을 뽑아 입체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이 봤을 땐, 미완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내게 드로잉은 이 순간의 완성작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미완성으로 보이는 면이 크다. 이건 작년 전시에서 받은 느낌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런 느낌을 많이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전에는 전개되지 않은 에너지를 다 펼쳐놓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하나의 형상, 윤곽선을 담은 것으로 보면 된다. 내가 봤을 때 작품은 그 자체로 ‘에너지’지만, 일반 사람이 봤을 때는 ‘병’이다. 이것 역시 미완성으로 본다면 미완성이겠지만, 내게는 순간의 완성이다.
없다. 아직 ‘배우는 사람’이란 인식이 커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3, 40년 뒤를 보고 작업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바람이 있다면, 문화부 장관이 되는 것. 한 마디로 사회적인 멘토가 되고 싶은 것이다. 예술 속에 사회가, 사회 속에 예술이 녹아있다.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녹아있고, 다르지만 함께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사회를 재밌고 즐겁게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현재 입시체제만 보더라도 숨막히지 않나. 특히 문화, 예술 쪽은 형편이 없다. 미술교사와 음악교사가 줄어들거나 합쳐지는 경우도 있다. 아직 문화부 장관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내공을 쌓다보면 자연스럽게 풍길 정신의 냄새를 기대한다. 빨리 유명해지면 좋겠지만 초조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드로잉 작품을 미완성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를 완전한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완성’이란 완벽한 것이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 지금 이 순간의 내 작품. 바로 이 순간의 완성이다.
늘 완성시키지 못하면 불안하고, 완성이 지나면 허무가 다가온다.
미완성은 업보처럼 따라다니며 완성을 재촉한다.
하지만 정치성작가는 말한다. 지금 이 순간 자체로 자신의 완성이라고.
드러나는 완성에만 몰두하지 말고 과정 그 자체를 사랑했으면 한다고.
나는 진지한 그의 눈에서 순간의 완성을 읽는다.
그리고 그의 완성을 읽어줄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E-mail: jcsop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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