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자! 장두영 월드
“가능성 있다” “아름답다” “재능있다”
칭찬을 먹고 자라는 예술가. 하지만 아무리 자뻑에 능한 예술가도 자기의 재능을 확신하기 힘들다. ‘손만 잡고 잘게’ 사랑하는 오빠도 믿기 어려운 마당에 '재능'이라는 추상적인 놈을 믿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싹수를 알아보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 누군가가 싹수를 발견해주고, 격려해주지 않는다면 싹수는 금방 고독해지기 마련이고, 시들기 쉽다. 골방에 처박히기 너무 아까운 오월, 웰컴투 전시회!를 외치며 당신에게 새파란 싹수를 들이민 작가가 있다. 바로 장두영이다.
어디 한번 가보자! 웰컴 투 장두영 월드
2012 창원아시아미술제에서 만난 장두영 작가
별명은 장교수
닉네임을 ‘장교수’ 라고 지은 적이 있다. 그 뒤로 쭉 ‘장교수’라 불리고 있다. 진지할 때는 너무 진지하다 보니까 별명이 더 잘 들어맞는 모양이다. 친구들이 이야기하길 수업시간에 <작품>에 대해 꿋꿋하게 비판, 비평 하는 모습이 딱 교수님 같단다.
작품 속에 삶을 담고 싶은 예비예술가
예술가면 그냥 예술가지 예비예술가가 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예술가 지망생 정도랄까. 진짜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붙이려면 역사에 남을 정도의 작품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정도의 위치에 다다랐다고 생각이 들 때, “예술가”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굳이 대중들 사이에서 인정 받지 못하더라도 한국미술사에 남는 사람이고 싶다. 그 정도로 좋은 작품을 하고 싶다. 명성은 따라 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아님 시대를 앞서가던지. 결국에 예술이란 삶을 담는 것 아닐까. 세상에 없는 것, 어떤 기(氣)를 받아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삶을 함축적으로 작품에 담는 것. 어차피 그림을 감상하는 주체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삶을 많이 경험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에게 나쁜 경험은 없다.
인터뷰 중인 필자와 장두영작가 /성산아트홀
2012년의 희. 노. 애. 락
희: 아무래도 전시를 많이 할 수 있다는 것.
노: 노여움은 글쎄. 작은 오해 때문에 작업실을 옮기게 된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길지만 말이 여기저기 옮겨지면서 큰 오해를 낳았다.
결론적으로 어차피 작업실을 옮기려고 하는 상황이어서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
애: 아무래도 혈기왕성한 20대다보니 연애에 관한 것이다.
락: 내면의 변화. 과거에는 내 작품에 대한 좋은 반응에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 정도면 괜찮은 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가능성 있는데?” “좋은데?”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늘었다. 이제는 사람들의 “정말 좋다!”라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자신감도 더 생겼고.
창원 아시아 미술제에서 선보인 장두영 작가의 작품
오래된 마산의 글씨에서 영감을 받다
복고적인 폰트를 많이 참고했다. 드라이브를 하다가 표지판을 본 적이 있나? 그건 결코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정보를 주기 위한 글씨다. 나는 그게 더 심플하고 이뻐 보였다. 외국을 다녀오면서 한글을 조형적으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연구를 해봤다. 한글이 정방향이라 조형적으로 한계를 가진다고 한다. 물론 한글을 조형적인 요소로 쓴 사례는 있지만 형태의 한 부분, 색의 한 부분으로 사용할 뿐 전면적으로 내세운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 직접 한글을 디자인하여 회화에 적용시켰다.
의미보다 느낌이 감기는 그림
그림에서 내가 선택한 단어는 짧다. 문장구조로 봤을 때 감탄사, 내뱉는 말, 동사만 있거나 주어만 있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느낌도 든다. 일부러 그랬다. 관객들이 보고 다른 것을 연상시키거나,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설명이 들어가지 않는 단어를 사용했다.
웃자, 미친, 야 임마 너, 지랄, 미친년놈, 개념 좀, 넌 꿈이 뭐니?
‘넌 꿈이 뭐니’의 경우는 메시지가 보인다. 요즘 청년 실업, 스펙 사회라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 않나. 청년은 할 것도 많고 이루지 못할 꿈도 꾸는 시기인데... 그런 생각이 작업으로 이어진 경우다. ‘웃자’ 의 경우는 없다. 대체 뭐에 대해서 웃을 것인지, 아님 같이 웃자는 건가?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그렸다. 관객이 와서 어디에 가보게끔, 하게끔 하는 그림. 그게 뭐가 되었던지 간에.
이미지를 채집하라
작품의 인물을 정할 때의 방법. 첫 번째, 인상 깊은 이미지를 모은다. 인터넷, 잡지 가리지 않고 모은 뒤 두 번째, 이게 왜 영감을 줬나? 고민을 한다. 그렇게 이미지를 한 번 더 걸러 사용한다. 공교롭게도 전시된 작품의 인물은 모두 외국인이다. 외국인을 택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 외국인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익숙해진 것이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현상에 대해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냥 세계화... 보편화 됐구나 라고 받아들일 뿐. 하지만 이렇게 외국인 그림을 모아 전시하면 다르다. 관람객들은 ‘도대체 왜 외국인들만 전시했을까?’ 라는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 메시지? 없다. 그게 다다.
장두영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들
첫 번째는 소통
현대미술은 난해하다. 워낙 작품 안에 담긴 이야기가 많다 보니까 즉각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건 뭐야?’ 라는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특히 즉각적인 것을 선호한다. 요즘 사람들은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TV, 현수막, 포스터 등 광고에 쓰일 법한 이미지들을 소재로 하여, 작품화 한 것이 이번 아시아 미술제에 전시한 작품이다. 그런 익숙함 때문인지 내 작품을 보면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지랄> <미친년놈>이 특히 인기가 많다. 그런 걸 보면 내가 제대로 잘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지역에서 그림으로 먹고 살기
성산아트홀과 카페51에서 모두 전시를 하고 있지만 한 작품도 팔리지 않았다. 이벤트 옥션에서 몇 작품 팔린 것을 제외하면 정식 거래가 없었다. 카페 51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은 에디션작품이라고 해서 스무개 정도 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보통 미대를 졸업하면 호당 4~5만원 정도를 받지만 가격도 30호에 80만원 정도로 낮게 책정을 했다. 정상적으로 계산하면 한 작품 당 100~150만원이다. 그걸 누가 사가겠나. 사람들에겐 그냥 미대 나온 작가의 작품일 뿐인데.
한 번 상상을 해봤다. 옛날처럼 영화, 영화배우 포스터를 방에 붙이듯이 미술작품을 자유롭게 붙일 순 없을까. 그런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소장하는 시대. 작품을 포스터화 시켜서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붙여놓는 퍼포먼스도 생각해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선 예술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우려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대중과 소통하는 게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림의 유통구조
굳이 갤러리가 아니더라도 내 감성에 맞는 클럽이나 바에 작품 전시를 했었다. 그럼 작품을 보고 사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가격만 얘기하면 놀란다. 왜 이렇게 비싸냐는 거다. 정상적인 작품 유통과정구조라면 작품을 거는 갤러리가 있고, 판매는 관장이나 큐레이터가 관장한다. (물론 작가에게 직접 문의하는 방법도 있다.) 그리고 작품이 팔리면 수익료를 화랑과 작가가 배분한다. 하지만 지역은 갤러리도 많이 없을뿐더러 일반인들 중에 미술 판매 형태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림을 사지 않는 그림팬
내게도 팬이 있다. 작품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림도 좋아하고 나의 이상과 삶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내 작품을 산 팬은 한 명도 없다. 가지고 싶어 하지만 사지 않고 “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지금 사 놓아라, 나중에 비싸진다”라고 얘기한다. 가격이 높아져야 재료의 선택,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작업만 하는 사람이라면 작품을 더 비싸게 팔아야 그 다음 작업을 장담 받을 수 있으니까.
그림 소개하는 장두영 작가
질 낮은 작품을 생산하는 구조
작업만 하면 당연히 질은 높아지게 되있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선 작업만 할 수가 없다. 역시 그림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팔기 위해 따로 돈 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게 반복되면 어떨까? 당연히 작업만 하는 작가들에 비해 뒤쳐지기 마련이다.
두 말하면 입 아픈 척박한 지역미술시장
지역에선 그림을 소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중의 입장에서 그림은 사치다. 너무 비싸니까. 백 만원짜리 그림과 당장의 밥 중 무엇이 가치가 있을까. 하지만 대중들에게 의식을 바꾸라고 강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건 온전히 예술가들의 몫이다. 작품의 질을 높여가면서 대중들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예술의 가치를 인식시켜야 한다. 하지만 의식과 노력만으로는 바뀔 수 없다. 본질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서울에 집중된 문화, 그래도 할 수 있다?
졸업 전에는 “지역에서 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 점점 확신이 사라진다. 결국에는 서울에 가야하는 구조다. 지역에서 커도 결국에는 서울 진출. 모든 문화가 너무 서울집중이지 않나. 내 꿈은 너무 고급화되어 있는 미술을 대중화 시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사는 지역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싶다. 하지만 내 힘으로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면 힘있는 단체에 소속되거나, 유학을 다녀와서 타이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유학을 다녀와서 커리어를 만들고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게 가장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이유
서울에서의 작업도 계획에 있다. 커리어가 필요한 게 현실이니까. 작은 전시의 경우, 서울에서도 해왔다. 하지만 당분간은 창원에서 작업에 매진 할 생각이다. 창원은 일단 작업할 수 있는 환경여건이 좋다. 시간을 아껴가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도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면 서울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
갤러리카페 CAFE51에서 열리고 있는 장두영 작가의 <웰컴투전시회>
<웰컴투전시회>에서 의미를 찾지 말라
카페 51에 전시된 작품의 경우, 작업 자체가 인터넷 상에서 디지털화 되어 있는 이미지를 모은 것이다. 현대인들이 과거에 비해서 이미지 모으는 방식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그것을 작가 입장이 돼서 표현한 것이다. 마치 마음에 드는 연예인, 아티스트 사진을 스크랩하는 것처럼. 행위는 같다. 그게 주제였다.
전시제목이 <웰컴투전시회>다. 그냥 내 그림을 보러 오는 것을 환영하는 거다. “난 너희들이 좋다. 와서 보라.” 그 자체로도 너무 좋으니까. 아무 의미 없다. ‘작품에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아시아미술전에서 외국작가들과 미팅하는 자리가 있었다. 인도네시아 작가에게 물었다. “저것은 인도네시아 작가의 삶을 표현한 것이냐?” 물었더니 “그냥 느낀 것, 느낌자체일 뿐이지, 의미는 없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에 대한 책임이 작가에게 있는 건 맞지만 설명에 치중하다보면 본 의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의미를 찾는 것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어쩌면 관객의 몫이다. 작가는 그저 작업에 집중하면 된다.
장두영 작가의 손
고흐, 이중섭이 겪은 생활의 비극을 마치 천재의 숙명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이중섭에게 작품을 볼 줄 아는 괜찮은 투자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혼자 병실에서 쓸쓸히 죽진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그의 작품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술가가 작업을 계속 이어가려면 기본적인 생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먹고 살기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예술가는 절대 혼자 클 수 없다. 예술가의 싹수를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양분이 필요하다. 칭찬과 비평 뿐만 아니라, 작업을 계속 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지원도 필요하다.
영화배우 포스터처럼 사람들의 방에 자신의 그림이 걸리는 상상을 한다는 장두영작가. 그림의 대중화를 외치는 26세의 젊은 작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다.
6월 고개 내민 장두영 작가의 싹수가 궁금한가? 6월 31일까지 스페이스1326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글 숨별 /사진 강대중
장두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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