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람마다 재능이란 게 다 있는 걸까?
만약 내 재능이 알고보면 코파기나 발톱깎기면 어쩌지? 그럼 나는 뭐가 될까""
대학 시절, 그림 그리는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나는 '사람마다 다 밥벌이할 재능은 있지 않을까...'하고 대충 얼어무리고 말았다. 그 때까진 뭐가 되는 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졸업 후에 그 질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그럴듯한 뭐가 된다는 건 뭣처럼 어려웠다. 대학을 입학하며 끼와 재능을 조금은 인정받았다 생각했고 당연히 재능이 곧 직업으로 이어지리라 믿었다. 하지만 웬 걸. 졸업 후에 나를 작가로 반겨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나는 사회의 부속품이 되기 위해 이력서를 들고 발로 뛰어야 했다. 꼭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랄까. 나는 서서히 '재능'이라 믿었던 그것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고, 때론 꿈을 원망하기도 했다.
콘티 이야기하는 명식과 나 / 2004년 여름.
고등학교 때 난 적어도 괜찮은 뭐가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 때 <신명식>이라는 친구를 알게 됐다. 명식군은 내 영화의 남자주인공이기도 했다.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게 아니어서 어설펐지만 명식군은 끼가 다분했다. 명식군은 학교를 마치면 춤을 추기 위해 연습실로 달려갔고, 축제 때마다 팀을 꾸려 무대에 서기도 했다. 명식군은 어딜 내놔도 잘 노는 아이였다.
그리고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잘 노는 게 재능이었던 명식이는 어떻게 살고 있고, 지금은 뭐가 됐을까?
다행이 휴대폰엔 명식군의 번호가 있었다. 미니홈피도 그대로였고,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제의를 했고, 만났다. 무려 8년 만에... "누나, 진짜 오랜만이예요" 명식군이 나타났다. 예전처럼 씩씩하게 인사를 주고 받지만 어째 목소리가 이상하다.
"목이 쉬었어요. 밤마다 소리를 너무 질러서..."
명식군은 밤마다 DJ를 하고 있었다. 놀면서 우연히 DJ를 접하게 된 것이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 DJ를 배워주는 학원도 없고, 알려주는 데도 없었기에 어깨 너머로 DJ를 배웠다. DJ를 하면서 자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지도 알게 됐다. 명식군이 하는 일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아침에는 군대 선임의 소개로 초등학교에서 체육 강사를 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 1인 창조기업의 대표로도 활동한다.
명식군의 직업은 파티플래너+ 클럽DJ+ 체육선생님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건 분명히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때로 친구들이 "DJ일은 가난하다"고 만류하면 화가 난다. 배고프면 일을 하면 되고 잠을 좀 덜 자면 된다. 그럼 배고프지 않다. DJ가 배고프다는 건 선입견일 뿐이다. 문제는 의지다.
"저는 생각 잘 안해요. 그냥 바로 해요. 행사나 축제도 기다리지 않아요. 제가 먼저 하겠다고 이야기해요.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파티가 하고 싶으면 제 장비 들고 가서 그냥 해요. 바로 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딴따라예요. 스스로 그렇게 얘기해요
음악하는 사람, 예체능이라는 말에도 거부감이 들어요.
예술가라는 거창한 말보다 딴따라라는 말이 좋아요"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게 좋았다는 명식군. 생각보다 많은 일에 도전했고, 또 세상을 알고 있었다. TV에도 나오고, 아이돌 연습생이 되기도 했다. 돈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도 겪고 재정난으로 일하던 클럽이 문을 닫는 일도 있었다. 좋게 말하면 경험이겠지만 세상에 닳아버린 청년이 내 앞에 있었다. 살면서 이제껏 명식군은 단 한번도 쉬거나 멈출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 밥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사정은 자신을 더 바쁘게 만들었다.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지는 것.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는 것. 그것이 생활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행복하냐?는 물음에 명식군은 망설인다.
"제가 하는 일은 체계가 없어 자유로워요. 하지만 요즘은 고민이 생겼어요.
또래 친구들이 직장을 얻고 안정적인 생활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부러워요.
뒤쳐진다는 느낌이랄까... 너무 달려오다보니 놓친 게 많다는 생각도 들구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이 후회 될 때가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여행 다운 여행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다. 그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는 모양이다. 스물여섯 동갑내기 친구들은 자격증을 따고, 토익시험을 준비하고, 취업을 한다. 이제 친구들은 명식군과는 전혀 다른 궤도를 돌게 될 것이다. 승진도 보너스도 없는 궤도, 길 마저도 자신이 개척해야하는 궤도에 서 있는 명식군은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명식군은 이야기한다. 아직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갈증이 난다. 뭐가 되는 것은 나중 문제다. 굳이 직업이라 한정 짓지 않고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앞으로 또 뭘 하고 싶냐는 말에 대답이 술술 나온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로스팅도 배우고 싶고 제과, 제빵 기술도 배우고 싶어요'
"어떻게 들리실 질 모르겠는데 전 꿈이 없어요.
꿈이 없어서 정말 좋아요. 꿈이 없다는 건 뭐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니까요"
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청년, 26세 명식군은 세상을 놀이터라고 표현한다.
세상을 놀이터 삼아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타고 싶다.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받던 질문 "뭐가 될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세상은 뭐가 되는 것으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뭐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굳이 직업으로 뭐를 설명해야 할까? 설명이 더 길어지더라도, 자기 존재 자체로 뭐가 되는 건 어떨까. 훗날 내가 엄마가 되거들랑 까먹지말고 자식들에게 말하고 싶다.
"뭐가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라"
☞ 명식군이 궁금하다면!
신명식(로빈) www.facebook.com/FantasticROBIN
숨별 withssu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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