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표지 작가 권하형 (1989~ )
이상하다. 인생은 동영상인데, 추억은 사진처럼 남는다. 혹시 머릿 속도 용량이 정해져 있어서 기억을 압축파일로 간직하려는 걸까. 만약 지나간 인생의 모든 사실과 시간을 저장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 부딪혔던 첫 키스, 학창시절의 찌질함까지도 모두 재생 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사람이 망각의 동물인 것이 불행이기보다 다행이지 않을까.
모든 생명은 진화를 하고, 인간 역시 유리한 구조로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부끄러운 진실 대신 두꺼운 망각을 입은 게 아닐까. 동영상의 재생이 아닌 정지된 순간의 장면을 기억하는 인간에게 사진은 시간을 각성하게 만든다.
여기 결정적 순간을 쫓는 사람이 있다. 오월 표지작가, 사진 찍는 권하형이다.
나는 4학년이다
요즘 사진학과 졸업을 앞두고 많은 고민에 휩싸여 있다. 나는 고민 끝에 교직 이수를 택했다. 당장 졸업 후의 생계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자살이나 왕따, 학교폭력 등 의 문제로 예체능 교육을 활성화 시키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예체능 교사 채용이 많이 발생되는데 이에 대비하여 중등교사2급 자격증을 따고 있다. 하지만 교사가 나의 목표는 아니다. 차선책일 뿐이며, 해보고 싶은 것은 사진기자이다. 기자가 되기 위해 지금은 졸업작품을 잘 만드려고 노력중이다. 하지만 특별히 취업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계속 찾는 중이다.
만약 내년에 사진기자가 되지 못할 경우에 빨리 포기 할 생각이다. 그리고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배운 사진공부로 한 두해 돈을 벌어 1년간 여행을 다니고 싶다. 안정된 직장과 보장된 노후가 마련된 이후에 여행을 하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나에게 많은 경험을 하는게 나의 목표이다. 취업 한 친오빠는 현재로부터 도망치는 거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이 도망이라고 할지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바보 같은 선택, 사진
사실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가다보니 사진과를 택했다. 학창시절에 영화과를 가길 원했지만, 그저 영화와 사진이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영화과가 아닌 ‘사진학과’를 선택했다. 이 바보 같은 선택이 지금까지 한 선택 중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영화는 함께 작업을 하다보니 내 뜻대로 하기엔 걸림돌이 많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소심한 나로서는 많은 불편함이 따랐다. 그와 반대로 작업 주제를 고민하고 촬영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수정, 재촬영, 완성까지 모든 과정에 내가 존재하는 작업인 사진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미학, 철학, 기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사진에 관해 공부를 하고, 생각을 하고, 촬영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비평을 하고 사진과 함께 생활을 하다보면 항상 이 생각을 한다. 내 바보 같은 선택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다큐멘터리 사진은 대상과의 소통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지향한다. 순수, 광고, 저널 등의 작업이 아닌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피사체 선정 에 대한 고민과 촬영의 비율은 전체 작업이 10이라면 고민이 2, 촬영은 8이다. 광고의 경우 많은 시간을 프리프로덕션에 투자한다. 저널은 전달해야하는 객관적, 중립적 관점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기록이니까 촬영작업이 거의 9할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자료조사와 고민만으로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함께 생활하고 소통하면서 촬영이 진행된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자면 피사체를 선택한 이후에 촬영과 동시에 대상에 대한 이해가 진행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다른 작업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며 대상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이발 史]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 가는 이발소와 이발사에 대한 기록 <이발 史> 프로젝트의 시작
이발소의 독특한 풍경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이발”,“이발소”,“이용원”,“낡은 이발소”,“오래된 이발소”,“산골 이발소”,“마을 이발소” 등 관련 단어를 검색하여 나타나는 모든 페이지를 살펴보며 이발소 외부나 내부의 이미지 정보를 통해 내가 원하는 ‘이발소’를 선정했다. 원하는 이미지를 찾았다고 해도 이발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그리고 주소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또 다시 자료 찾기가 반복되었다. 힘들게 찾아간 이발소를 들어가기 전에는 내가 여자인 것이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나름 준비를 한다. 당황할 어르신을 생각하여 작은 음료와 미리 촬영해둔 사진을 들고가서 어떤 촬영을 하려하는지, 왜 하려는지 충분히 설명을 드리고 이 곳을 찾기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멀리서 왔는지 최대한 상세히 말씀드린다. 대략 10곳을 찾아가면 4곳은 촬영을 성공하고 4곳은 사라지고 2곳은 거절을 당한다. 물론 거절을 당한다고 바로 포기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찾아가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동의를 구한다.
아시아지역 전문가를 꿈꾸며
2011년 서울 영등포 문래동... 이름 없는 이발소를 2개월 정도 촬영한 적이 있다. 짧았던 작업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향수가 느껴지는 바랜 이발소의 이미지 때문일까? 길게 꾸준히 이발소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발소 자료를 검색 할수록, 이발소는 점점 사라지고 앞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관심과 발전을 위한 노력도 좋지만 사라져가는 문화를 기록하는 것도 전자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서둘러 촬영을 시작했다. 이발소뿐만 아니라 이발사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포츄레이트 형식과 함께 내부의 요소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했고, 사진의 무게를 더하기 위해 대상의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시켰다.
여자와는 달리 남자들은 염색 약을 한번에 사용을 하지 못해 다음을 기약하며 염색 약통에 이름을 적거나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체크를 해두고 사용한다. 또한 옷에 염색약이 묻지 않도록 보호되는 긴 천을 두르지 않고 신문을 이용하여 천을 대신 했다.
진드기 같은 섭외과정
나의 관심 지역은 아시아다. 아시아 모든 나라에서 생활도 하고 싶고, 동남아시아의 지역전문가가 되어 개도국에게 도움도 주고 싶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진 기록을 통해 각 나라의 현지 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좋은 딸이 되고 싶다. 훌륭한, 잘난 딸이 아니라 내 엄마 아빠에게 좋은 딸이 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게 나의 궁극적 목표이다.
권하형의 팬이 되시겠습니까?
자극적이고 강한 임팩트가 있는 한 장의 사진이 요구되는 사회에 발로 찍는(직접 찾아 다니며 발로 뛰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진은 다큐멘터리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여러분에게 다큐멘터리 사진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의 사진과 글을 보고 읽어준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죄송하다는 말도 덧붙이려 한다. 아직 진행 중인 작업을 보여드려 작업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발 史>는 지금도 작업중이다.
누구나 진실을 원하지만 진실은 끝없이 구하는 자에게 얼굴을 내민다. 그렇기에 진실을 담아내는 것은 위대한 일인 동시에 위험한 일이다. 시대의 목격자가 되기로 자처하는 권하형. 아는 만큼,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는 편집의 시대에 권하형이 선택한 프레임은 어떤 모양일까. 앞으로 권하형이 보여줄 진실의 순간이 궁금하다.
일시: 2012년 11월 7일~13일
장소: 서울 인사동 서울 미술관 '상명대학교 졸업작품 전시회'
- 권하형의 완성된 <이발 史>가 펼쳐집니다
숨별 withssum.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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