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앞 SOSA] 라로사 탱고 1기 졸업공연 감상
- 26일 늦은 시간에 열린 라로사 1기 졸업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라로사의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은건 행사가 시작되기 약 1시간 전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계속 고민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그때 공연보러가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전지식은 없었다. 그리고 결정은 즉흥적이었다.
라로사는 장전동에 있는 춤을 가르치는 단체이다. 춤의 장르는 탱고, 라틴인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림쟁이인 나에게 탱고, 살사, 라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물어보시면, 나는 "정열" 이라고 짧게, 단어로 대답하겠다. 그 이유는 이 춤의 장르에 대해 워낙에 아는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춤 자체가 남녀가 사랑의 대화를 나누듯 가까이 붙어서 한번씩 "오레!"라고 소리를 지르는 -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눈으로 잡아먹을듯 서로를 주시하며 춤추는 - 단편적인 기억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탱고는 이런 멜로디로 춤을 추는거다.
"빰 빰 빰 빰, 빠바바 빠~밤,
빰 빰 빰 빰, 빠바바 빠~밤 "
이렇게 박수치는 그 박자에 힘이 들어가는 4분의2박자로 영화에서 춤추는 배우가 입에 장미를 물고 있다가 파트너에게 입으로 건내주는, 그런 연출이 많이 나오는 춤으로 알고있다. 아무튼 "뭔가 심심할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그래도 공연이니까 뭔가 볼거리가 있겠지!” 라는 기대감으로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나는 한 분야에서 오랜시간 연구를 하면 그 연구를 한 사람은 분명 보통사람과는 다른 포스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게 기술이 됐든 철학이 됐든 말이다. 왜 공 하나가지고 발로 오래 가지고 놀다보니 축구선수들은 뛰면서도 공을 발에 붙여 다니지 않던가?! 뒷발로 공을 끌어올려 앞에있는 상대편 선수 뒤로 넘기기도 하고 말이다. 대단한 기술이다. 분명히 나는 그런걸 약간 기대하고 소사(sosa)로 향했다.
- 부대에서 5분을 걸어 도착한 소사(sosa).
소사는 라로사라는 단체가 활동하는 공간이다. 지하1층, 계단을 내려가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나보다 더 키가 큰 여성 한분이 볼펜을 주며 방명록에 탱고인, 비탱고인을 구분해 닉네임을 적게했다. 입장료가 탱고인은 7천원, 비탱고인은 무료로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부산에 탱고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비탱고인에게 돈을 받지 않는 것은 그들의 문화를 조금 더 알리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탱고인에 내이름을 쓰고 홀에 비치되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전체 모습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직사각형 방에 홀과 바(Bar)가 8:2의 비율로 나뉘어 있다. 이 모습을 굳이 비유하자면 볼링장같았다. 바(Bar)와 홀의 바닥 재질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홀의 바닥은 흡사 볼링장의 그것처럼 평평하고 미끄러지기 좋았다. 약간 과장하면 홀에 들어서자마자 스텝밟고 공굴릴뻔했다. 아니, 그러고 싶은 바닥이었다.
홀의 뒤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있으니 저 멀리 차가운 냉장고에 병맥주가 보인다.
사먹었다.
앉아서 홀짝홀짝 하는 중에 보니 이제는 저쪽 탱고나라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긴장을 풀어서인지 그때부터 음악소리가 느껴졌는데, 2분정도의 마무리가 있는 짧은 음악들이 시작되고 끝나고를 반복한다.
음악에 맞춰 먼저 와 계시던 탱고인들은 짝을 바꿔가며 탱고라고 생각되는 춤을 자연스럽게 추기 시작하는데, 언제 시작하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시작했다가 조용히 헤어진다. 내가 여기서 왜 헤어진다는 표현을 쓰냐면, 그것은 춤이 아니라 일종의 교감이었기 때문인데, 이 장르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탱고라고 생각되는 그것은 흡사…
흡사… (아, 나 이런것을 처음봐서 쉽게 묘사할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까 흡사..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와 토르크막토가 서로의 그것(머리칼과 더듬이)으로 교감하는 느낌이랄까?
춤을 추는 두분은 얼굴이 붙어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여성은 남성의 볼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댄다. 그러고서 눈을 감고 상체를 밀착시켜 남자가 리드하는곳을 따라 발이 따라가는 느낌이다. 때때로 여성은 실수를 해서인지, 남성의 그 리드가 기분좋게 하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줍게 입가에 웃음을 띄고 이내 다시 교감에 집중한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 춤은 상체보다는 하체에 집중된 춤이다. 맞은편의 탱고인들의 눈을 보니 대부분 상체보다는 하체를 본다. 그도 그럴것이 남녀의 상체는 바짝 붙어서 발보다 먼저 중심을 옮기는데 움직임이 거의 없는 이것은 정적이다. 하지만 하체는 파트너의 다리사이에 남자는 자신의 다리를 재빨리 넣기도 하고, 상대를 훑기도 하고, 왔다갔다 어디로 갈까, 일로갈까 절로갈까 하면서 고민도 하고, 바닥을 느끼하게 훑기도 하면서 아주 동적으로 움직인다.
아무튼 이 춤은 단순히 보이는게 다인 춤은 아닌 것 같다. 뭔가..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것을 파트너와의 정신적 교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언어로 바꾸면 깊은 성적대화 같기도 하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와 아주 깊이 교감하며 아주 열정적으로 이 탱고로 춤의 향연을 펼친다면 그리 유쾌한 기분이 들 것 같지는 않다. 내 한국인 정서상 그 모습이 꼭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추측컨데 그만큼 아직 한국인들의 인식으로는 이 문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부부가 함께 이 춤을 배우고 즐긴다면 서로의 유대를 돈독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같이간 일행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우리는 다른 일정이 있어 사정상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책상앞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내가 느낀 이 춤을 추는 사람의 감정을 좀 전달하면서 마치고 싶다.
바퀴가 달린 의자가 있다면 거기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자세를 뒤로 많이 젖혀 앉아보라. 그리고서 발로 의자를 서서히 미는데, 바퀴의 덜컹거림을 엉덩이와 허리, 등으로 느껴보라. 몸으로 바닥면의 아주 작은 요철까지도 느껴보려고 노력해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섬세한 것들이 느껴질 것인데, 그 대상이 사람이 된다고 하면 어떨까? 아주 흥미로운 탐구가 될것이다.
혹시나 TV에서 이 탱고라는 장르의 춤을 볼 기회가 있다면, 현란하게 움직이는 남녀의 다리가 아니라 두 사람의 맞닿은 얼굴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어떤 교감이 이루어 지고 있는지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걸 느낄 수 있다면, 점점 탱고의 매력을 이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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