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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장소&문화

[인물] 사람의 얼굴, 작가 노순천

 

9월호 표지/ 노순천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작년 겨울, 경남대 근처의 한 카페 책꽂이에 꽂혀있던 작은 도록을 발견했다. 소박한 표지와 편집이 마음에 들어 한 장, 한 장 넘겨봤다. 선이 둥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들. 아마도 '사람이다'라는 느낌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노순천. 글자에 환장하고 글자에 좌절하는 나는 작가이름과 그림이 딱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점의 그림과 전시를 더 구경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2011Asia Art Project>, 돝섬, 마산, 2011

 표지작가 인터뷰를 하기위해 태풍을 뚫고 버스를 탔다. 창원대 미술학과 대학원생인 그는 신축 도서관에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그냥 새로지었기에 구경하고 왔다고 했다. 대화를 오래토록 한 적도 없고 자주, 아니 가끔이라도 만난 사이가 아니건만, 왠지 알 것만 같은 확신이 찾아왔다. 사람과 작품을 동일시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작가 노순천의 작품에는 냄새가 난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냄새이며, 곧 사람의 냄새이다. 


 

내방에 얼굴 그리기/150x150x250cm/스테인레스스틸, 에어호스/2008

 작가 노순천의 작품은 몇가지 특성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빈 곳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다'와 '차다'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 역시 사람의 시각이다. 공간은 공간 그대로이며, 도화지는 도화지 그대로 채움이자 비움이다. 그의 작품들은 공간과 재료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해치지 않는다. 문득 작가는 자연친화적인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색이 적다. 흰 종이와 빈 공간. 있는 그대로의 바탕에 표현을 한다. 굳이 '색'에 다른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작품이 담백하게 보이는 몇 가지 이유다.

 

 


<너와나의 드로잉> 2009 아시아미술제

작가 노순천은 재주가 많다. 세상을 캠퍼스 삼아 방에도, 전시장에도, 하늘에도, 시내에도 그림을 그린다. 선을 구부려 만드는 선조, 재료를 깎고 다듬어 만드는 설치미술뿐만 아니라 자신이 재료가 되어 퍼포먼스도 펼치고, 그것도 모자라 밴드에서 노래도 한다. 최근 그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간 해왔던 작품과 전시를 정리하고 있다.

"지금껏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다.
 
요즘은 그것들을 통해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걸까? 
 (홈페이지 만들기를 통해)
정리하며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선이 흐르는 집> http://www.facebook.com/drawing0

 "한 러시아 영화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술가의 가장 큰 재능 중에 하나는 창작욕구이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스키'로 끝나는 이름을 가졌을 한 러시아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꺼낸다. 욕망. 그것만큼 숨기기 힘든 것이 어디 있으랴. <먹고 싸고 자고> 쓰리 콤보는 사람에게 절대적이다. 또한 예술가는 노출증을 즐기는 사람들. 휘갈기고, 그리고, 보여줘야 좀 살 것같은 사람들 아닌가. 작가 노순천은 자신을 "재능을 타고나진 않았지만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는 재능이 있지만 잉태만 몇 년씩 하고 있는, 취미는 "누워있기"인 친구들을 알고 있다. 강한 욕망의 표현. 그것은 충분히 자뻑해도 좋을 장점이라 생각하건만 작가 노순천은 인터뷰 말미에 어렵게 운을 뗀다.

 "사실, 아직도 무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MAKE a Drawing>, Art Gallery U, 부산, 2011

 누구도 앞 날과 자신을 확신하기 힘들다. 그동안 여러 젊은 창작자들을 만나왔지만. 어떤 위대한 이상과 창작혼에 앞서 늘 생활의 고민이 있었다. 삶의 균형잡기는 그만큼 힘들다. 노순천 작가는 자신은 아직 철이 없기에 현실적인 문제에 있어 합리적인 판단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철 들어서는 큰일 날 사람이다. 작품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페가 되는 일라며 고민하는 노순천 작가. 그의 작품은 맑다. 티 없이 맑음이 아닌 티가 보이는 맑음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다'라는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작가 노순천 만나기
http://nosooncheon.com/

 

글: 숨별(http://withssum.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