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동 글마루작은도서관 & 전포 꿈자람도서관-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일 테다.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대하고 으리으리하며 시험 기간이면 자리다툼이 전쟁처럼 치열한 그런 시립 도서관이나 대학 도서관들만이 머리에 떠오른다. 내가 들어가고 나오는 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서는 자리를 뺏는 자일까 경계하는 눈초리 외에는 기대할 수 없다. 공무원 시험 등등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서로의 독서나 공부를 방해해선 안 되는 고요를 원칙으로 하는 공간. 그것이 지금껏 내가 아는 ‘도서관’이었다.
지역에서의 가치를 위해 만들어진 작은 도서관의 정체를 알았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데에 더욱이. 그 중 두 군데에 나는 발을 디뎠다. 2011년 겨울 즈음, 운 좋게도 특강 수업의 기회가 있어 연결되었던 곳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특강 수업 강사로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터뷰어이자 기자로 그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한 해가 조금 못 되는 시간 만에 나를 만났던 분들은 단숨에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이 인사를 해 오셨다. 그래서 달랐다. 내가 알았던 ‘도서관’들과는 시작부터가 말이다.
-소통을 배웁니다, 꿈자람도서관에서-
<꿈자람 도서관 입구. 전포종합사회복지관 3층에 위치해 있다.>
전포 꿈자람도서관(이후 꿈자람)은 전포사회복지관 내 3층에 위치하고 있다. 이전부터 전포사회복지관 내에 쭉 있었지만 2010년에 재개관을 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적 공간이자 사랑방의 역할을 톡톡히 해 오고 있다. 실상 꿈자람이 있는 전포동의 바로 인근에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이 위치해 있긴 하지만 그곳은 당장 동네 안의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꿈자람은 전포동에 있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름이 이름인 만큼 본래 꿈자람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모든 학교에 주5일이 적용되면서 아이들이 정규 수업을 세 시에 마치고, 방과후 수업까지 하고 나면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대여섯 시는 된다. 도서관 이용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다 보니 평일에는 동네에 아이들이 없다. 이런 사정상 꿈자람 측에서는 이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엄마들을 위한 모임과 교육을 늘였다. 아이들이 주로 찾아올 만한 토요일에는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그리고 평일에는 주부들을 주대상으로 하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도 매우 다양하다. 역사 모임과 그림책 모임, 영화로 인문학하기, 힐링맘, 북맘 등이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 모임이 마련되어 있다. 확실히 대개는 엄마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도서관의 내부 정경. 세미나실도 있고 유아들은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별실이 마련되어 있다.>
꿈자람 도서관이 소통을 중시한다고 하면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고, 책은 문자를 이용한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이야기하는 소통은 그런 것과는 조금은 다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엄마들의 삶을 생각해보자.
엄마의 역할 중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가정 내에서의 자녀 양육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12개월 전후까지의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대단히 고생스럽다. 아이들의 낯가림도 심한 때라 엄마들은 잠은 포기하는 게 정상이고 목욕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린이집 등도 영아전담반 외에는 3세 이하의 어린이를 보내는 경우가 없어 이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의 책임은 오로지 엄마들에게 가 있다.
게다가, 결혼 후 여성들은 아기를 낳은 이후로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일도 없다. 아이에게, 남편에게, 집에 신경쓰는 것이 먼저다. 바깥 활동이 없으니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시간도, 장소도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엄마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 것인가.
<어린이들에게 책이란 읽혀도 읽혀도 부족한 것이다. 서가에 빼곡이 꽂힌 책을 보며.>
꿈자람에서는 이런 엄마들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엄마로서 자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소통을 먼저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믿음이 있다. 이 때문에 꿈자람에서는 엄마들의 자기 치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힐링맘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르네 피터슨 트뤼도의 저서 「힐링맘」에서 언급된 힐링 모임을 직접 진행해보는 것이다.
북맘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9년에 1기가 생긴 이 모임이 처음 시작될 때에는 자기 아이의 독서 지도를 위한 엄마들의 모임이었다. 그때는 아이에게 독서 지도를 하는 방법론이 중요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공감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북맘 모임은 책을 통해 자신과 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모임이 되었다. 지금은 이 북맘 모임이 꿈자람에서 가장 오래 되었으며 중심인 모임이라고 한다.
‘영화로 인문학하기’는 영화의 원작 소설이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 책을 읽다 보니 엄마들이 많이 치유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와 연결될 만큼 극적인 요소가 있는 작품들을 접하면서 인문학을 익히거나,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이를 나누면서 스스로의 마음에 정화 작용을 얻었던 것이다.
<여기가 바로, 도서관 옆 북카페.>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이러한 소통의 과정에 기본적으로 작용했다. 책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서로 달리 읽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공유하는 사회적 독서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교류를 바탕으로 글쓰기 활동까지 해서 이미 도서관 자체에서 책도 출간했다.
꿈자람에서는 이처럼 어머니들의 내적인 소통을 중시한다. 치유는 이를 위한 한 과정이다. 닫힌 자신의 마음을 열고, 스스로와 소통을 하는 과정을 통해 가족간의 소통이나 지역간 소통이 모두 가능하다는 믿음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들은 단순히 프로그램만 하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복지관 전체의 이용자가 된다. 이렇듯 꿈자람은 복지관 운영을 원활하게 하는 인큐베이팅의 역할까지도 해내는 것이다.
꿈자람에서 추구하는 소통은 먼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그림책 모임을 좀 더 전문적으로 강화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는 엄마들이 단순한 이용자로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가 스텝이 되어서 밖에 나가 자신의 역량을 바탕으로 활동하기를 꿈꾼다. 그런 식으로 지역민들이 내가 사는 곳에서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머물러 살기 좋은 동네가 되기를 꿈꾼다. 반드시 소통해야 할 꿈을 꾸는 곳. 그곳이 바로 꿈자람도서관이다.
<꿈자람도서관을 이용하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모인 책. 초판 한정에 사인본은 이제 없다. 아쉬워서 울어도 어쩔 수 없다.>
-평화를 배웁니다, 글마루작은도서관에서-
<글마루작은도서관. 여기 있습니다.>
옛날 중구는 부산의 중심지였고, 그러한 역사적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일본인 배가 부산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형성되었던 중심지가 이름 그대로의 중앙동이다. 용두산공원, 구 미문화원, 중앙동 40계단, 국제시장 등 한국의 근현대사에 이름을 올릴 만한 곳들이 바로 이 중구에 위치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 부산에 몰린 피난민들은 살 곳이 부족해서 산동네로 올라갔고, 그곳이 지금의 수정동과 초량, 영주동을 이루었다. 그런 영주동에는 부산에서 최초로 생긴 터널인 영주터널이 있다. 그리고 그 영주터널 위에 글마루작은도서관(이하 글마루)이 있다.
글마루는 MBC의 ‘고맙습니다. 작은도서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프로그램 종영 이후에도 계속된 이 프로젝트에 ‘작은도서관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의 협력이 더해졌으며, 여기에 국민은행 측에서 비용의 일부를 대어 만들어졌다.
사서와 시민단체 간사들 4명이 글마루를 운영하고 있다.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옥상에 안전 펜스가 설치되어 옥상의 야외 개방이 가능하게 되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작은도서관과는 좀 차이가 있다. 일하는 인원도 많은 편이고 규모도 좀 큰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입장으로서는 아무래도 편리한 점이 있다.
<1층 공간. 모임이 이루어지기에 딱 좋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도서관답게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논술 프로그램, 현재 1년 정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미술 체험활동인 역사판화 찍기, 그림책을 읽고 토론하는 성인 대상의 책 모임, 상시 전시 프로그램 등이 있다.
최근에는 원북원 프로그램으로 산복도로 투어와 결합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다. 원북원 프로그램은 부산시에서 매년 선정한 열 권의 도서 중 하나로 이루어지는 독후활동이나 프로그램을 부산시 측에서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이에 글마루가 선정한 도서가 ‘부끄러움들’이다.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 쓴 에세이 서적인 ‘부끄러움들’은 수정동 산복도로 인근의 생활에서 오는 불편이나 낭만에 관한 책이다. 글마루는 이런 산복도로의 한 출발지점에 있다. 그래서 글마루에서는 참여하는 어머님들이 산복도로를 다니면서 직접 사진을 찍고 스토리를 개발해서 사진첩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층. 프레젠테이션 강의가 가능한 넓은 공간이 있다. 이 뒤에도 역시 강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글마루 도서관에서 이보다 더 중요하게 진행하는 교육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화 교육이다. 평화의 참의미를 일깨우고 생활 속에서 평화를 실천하기를 추구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둔다.
사실 평화라는 단어를 그렇게 거창하게 볼 것 없다. 모두가 공평하게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평화가 아니던가. 분란을 멀리하고 자연스러운 화합을 도모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가 아닌가. 글마루는 평화의 이러한 지점에 주목한다. 글마루에서는 매 방학마다 평화교육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의견을 맞추어가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끔 하는 수업이다. 공감, 나눔, 비폭력의 가치를 담은 평화 도서도 별도의 서가를 구성하여 모아두었다. 이 서가에 있는 책들만 읽어도 각자 나름대로의 평화의 개념을 잡을 수 있다.
평화에 대한 가르침이 민주화 운동 같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부분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평화라는 개념이 대단히 많은 사안을 포괄할 수 있음을 글마루는 강조한다. 다문화 사회에 어떻게 우리가 피부색이나 출신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것인지, 엄마들이 어떻게 자녀들의 말을 존중하며 평화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지점이 바로 평화라는 것을 글마루는 중요하게 내세운다. 누구나 다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갈등 없는 사회의 시작지점이 바로 이 평화가 아니던가.
<최근 펜스가 쳐진 옥상. 10월 26일에 옥상 개방 기념 음악회가 있을 예정이다.>
글마루에도 어려움은 있다. 그 어려움의 근원에는 그 출신상의 부분이 적지 않다. 사실 지역 내의 도서관이라지만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지역민들의 요구에 의거했다기보다 관의 주도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의 도서관에 대한 애착심이나, 자원봉사나 재능 기부 등에 대한 의식이 많이 부족했다고 한다. 재능 기부도 후원이나 기부이고, 단순한 도서관이 아니라 지역 내의 사랑방으로서 기능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에만 일 년이 걸렸다고.
또 토요일 방과후 학교, 각종 문화행사 등에 책 읽기를 강조하는 가을철이면 그야말로 휴일 없이 바쁘다고 한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글마루는 한 걸음씩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위탁 운영을 받은 지 이제 1년 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한 번 더 도약을 하려고 한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좀 더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창의력을 개발하거나 몸의 쓰임을 익히는 과정들도 함께 해 보고자 한다. 또한 꾸준한 평화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코자 한다.
글마루가 추구하는 평화에의 가치와 열정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번져나가길 기원한다. 서로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는 법을 배울 때, 글마루가 꿈꾸어온 세상이 비로소 열리는 것이 아닐까.
<글마루 계단 벽에도 빼곡한 책들. 책은 읽어야 보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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