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쁜 담배
내게 처음 담배를 가르친 것은 시경이라는 동창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외국에서 근무를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가지고 들어온 거라며 내민 그것은 담배라기보다는 립스틱 같았다. 분홍색으로 온 몸을 휘감은 화려함에 나는 단번에 눈을 빼앗겼다. 새빨간 불에 타들어가는 분홍색 몸통은 스러져간 내 어린 시절처럼 뜨겁게 나를 위로했다. 무언지 모를 역겨움에 토악질을 하고, 화장실 벽 뒤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지만, 나는 그것이 담배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담배가 고맙게도 내 마음을 어루만졌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돈 때문에 그런 담배를 피우지는 못했지만, 가끔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때 그 예쁜 담배가 떠올랐다. 자주는 아니지만, 힘들 때마다 남편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던 것은 그 때 그 예쁜 담배가 간절히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폐암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시경의 얼굴을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그녀가 건넨 예쁜 담배 한 개비가 이 막막한 운명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자, 동창생들에게 시경의 거처를 묻는 내 목소리는 거의 악다구니가 되어갔다.
그러나 춘천까지 찾아가 만난 그녀는 카페 의자에 앉자마자 담뱃갑부터 꺼냈다. 그 때처럼 분홍색으로 친친 감은 것은 아니었지만, 담배개비마다 서로 다른 고양이가 그려져 있던 그것은 눈이 반짝 뜨일 만큼 예뻤다.
소설가가 된 그녀는 요즘 장편을 하나 집필 중인데, 글이 잘 풀리지 않아 담배만 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결혼은? 남편은? 애들은?’ 그렇게 물어놓고 핸드백을 뒤적여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딸 하나, 아들 하나였다. 하얗고 보드라운 볼을 가진 딸아이와, 제법 남자다운 테가 나는 아들 하나.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워 지금까지 한 번도 끊어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애들이 배울까 학생 때처럼 몰래 숨어 피운다, 말하며 깔깔깔 웃었다. 남편도 자신의 담배 피우는 모습에 반해 청혼을 했으니, 이놈이 재산이라며 담배 개비를 하나 더 꺼내 입에 물었다. 이번에는 새빨간 고양이가 그려진 담배 개비였다.
어쩌면 그녀와 대판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소심한 내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천박하게 그녀의 머리채를 끌어 잡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냥.’이라고 대답하며 씩 웃었다. 그녀는 ‘이 먼 곳까지 웬일이냐?’ 물었던 참이었다. ‘싱거운 년.’ 이라고 나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빛에 죄라도 지은 것처럼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녀는 강릉에 있는 대학교에서 강연이 있어, ‘시간이 없다.’ 말하며 일어섰다. 미리 연락을 좀 하고 왔으면 오래 수다를 떨었을 텐데, 시간이 없어 아쉽다, 덧붙였다. 그러고는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보드랍고 깨끗한 손. 가지런하게 정돈된 손 끝. 반짝거리지 않는 은은한 색으로 칠해진 손톱. 예쁜 담배처럼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우아하고 평온한 여유로움의 냄새. 그녀는 그렇게 서둘러 카페를 나가버렸다.
더 이상 그녀에게는 남겨진 시간이 없어서.
소용없는 일이다. 남편은 거짓을 찾기 위해 기세등등하여 담당의사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진실의 힘은 세다. 6개월, 혹은 1년이라는 시간은 전세 계약서 위에 남겨진 임대기간처럼 그를 바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고작 닥쳐온 절망의 끄트머리를 움켜쥐는 일. 우리를 옥죄고 있는 시간의 줄을 잡아당기는 일. 그래서 나는 남편을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무엇이든 잡히는 대로 당겨보고 싶겠지만, 오히려 내겐 조금 여유가 생긴 것도 같다. 그것을 ‘여유’라고 부르는 일이 옳은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잠깐의 ‘휴식’이나, 혹은 ‘정체(停滯)’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싶다. 그도 아니면, 끔찍한 폭풍 직전의 ‘고요’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싶고.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머물러 있다. 시간이 없어서 가버린 그녀와는 다르게, 어쨌든 내게는 남겨진 시간이 있어서.
- 언니, 저 기억하죠?
불공평한 것이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언니, 언니, 그 때 그 언니, 맞죠?
그래도 사람들은 말한다. 생각에 따라 삶의 모양은 바뀔 것이다. 냉수는 블루마운틴이 되고, 비명은 노래가 될 것이다. 희망의 미덕이란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함이라고.
- 맞다, 맞다! 그 언니 맞네? 팔자치 언니, 그죠?
그러나 그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막대사탕 같은 것에 불과하다. 새빨간 단물을 쪽쪽 빨며 그걸 집어 삼키리라 기대하겠지만, 나는 어린 애가 아니다. 내가 받아든 불량식품 같은 희망은 이미 자루 하나에 차고 넘쳤다.
- 어머, 이 언니 시침 떼네? 아직도 삐친 거야? 호호호, 아유, 유치하다, 우리 언니! 그런 일들은 하루 빨리 털어버려야지, 왜 또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또 이 모양인가, 그런 생각만 하고 죽을상을 하고 있으니, 영락없는 팔자치 언니인 거지. 맞죠, 더러운 팔자치 언니? 호호호!
이 순간 절실하게 기대고 싶은 것이 달달한 희망이라고 하더라도, 내 생활의 입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된 희망의 맛을 보지 못했다.
- 호홋, 언니 복 받은 줄 알아요, 나처럼 긍정적이고 지적인 사람을 만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나 같은 사람을 자꾸 만나 좋은 기운을 받아야, 언니 일들도 다 잘 풀리게 되는 거라고요. 또 이 모양이네, 또 이 모양이네, 하는 더러운 팔자도 하루 빨리 벗어버릴 수 있는 거고. 호호호.
화장실 문을 가로막은 그는 거대했다. 키가 커 보이기는 했지만, 남편보다 족히 십 센티 이상 큰 모양이었다. 볼일을 보고 나온 여자 하나가 문을 가로막은 그를 보며 흠칫 놀랐다. 손 씻을 생각도 못하고 그 손으로 입을 막고는 냅다 화장실 입구로 뛰었다. 거구의 그를 피해 후다닥 뛰어나가는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
- 어머머, 쟤 왜 저렇게 오버니? 기가 막혀, 정말.
삐죽이는 입술 주위로 거뭇한 수염 자국이 또렷했다. 요즘 그런 사람들은 하다못해 빚을 내서라도 얼굴을 고치는 것이 먼저라고 하던데, 그의 모습은 기골이 장대한 남자가 분홍색 립스틱 하나를 바른 꼴에 지나지 않았다.
- 그치, 언니? 저런 애들 정말 재수 없지? 한 밤 중에 남자만 뒤에 쫓아오면 다 자기 따라오는 줄 아는 공주병에, 도끼병까지. 옷깃만 스쳐도 악! 손만 닿아도 만졌네, 주물렀네, 악, 악, 악! 어휴, 재수 없어! 흥!
물론 그에게도 세상은 지독히 불공평했을 것이다. 삶이라는 그의 자루 속에도 새빨간 희망은 이미 그득했을 것이다. 알고 있다,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 잠깐만요, 언니.
그는 옆으로 물러선 나를 붙잡았다. 그를 둘러싼 불공평한 세상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알고 그도 아는 일이니 내 삶이 안쓰러운 것처럼, 그의 삶도 안쓰럽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두 발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그를 피해 주춤거리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 언니, 잠깐만!
그는 내 쪽으로 막아섰다.
- 언니, 나 좀 도와주면 안 돼요?
잔뜩 어깨를 구부려 그는 자신의 간절함을 표현했다.
- 요 앞에 약국에 가서 데포훼민이라는 약 좀 사다주라, 응? 미로데포도 괜찮은데. 어쨌든 아무거나 먹는 거 말고, 주사약으로, 응? 언니, 언니, 응?
그는 몸을 웅크려 발을 동동 굴렀다. 그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그는 거의 울상이었다. 알고 있다, 그렇게 잔인하도록 불공평 했던 세상. 네 마음대로 태어나지 못했고, 네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세상.
- 비켜요.
- 아이, 언니, 좀 들어줘요, 응? 우리 언니, 이것도 인연이잖아요, 응? 이렇게 많은 병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두 번씩이나 이렇게 얼굴을 마주치고 이야기하고 그러는 게 쉬워요? 그러니까, 언니, 응? 부탁할게요, 응?
그는 팔짱을 끼려는 듯 내 팔꿈치를 붙들었다.
- 비켜요, 비키란 말이야!
- 어머, 언니?
- 안 비켜요? 안 비킬 거야?
공포에 질린 듯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아이, 언니, 그러지 말고 제발요, 제발, 응?
콧소리를 내며 그는 내 어깨를 감쌌다.
- 악, 악! 악!
구토처럼 비명이 쏟아졌다. 몸서리치며 바닥에 주저앉은 채였다. 문이 열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둘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 뒤에는 좀 전에 도망쳤던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기웃거리고 있었다.
- 당신 뭐야!
- 어머머, 왜 이래요? 아저씨들 왜 이래요? 어머머!
남자들에게 끌려 나가며 그는 동동 발을 굴렀다. ‘언니, 언니!’ 여러 차례 나를 불렀지만, 들을 수 없었다. 이미 나는 내 비명소리에 놀라 귀를 틀어막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자꾸 똑같은 여자 아이가 꿈에 나타나는 걸까. 임신은 아니었다. 그런데 잠에 빠져들 때마다 갈래머리를 한 여자 아이의 뒷모습은 어김없이 내 앞에 나타났다. 흰 꽃으로 엮은 머리 끈. 똑같은 흰 색 리본으로 허리를 묶은 은은한 노랑 빛의 원피스. 바람이 부는지 이마에서 흘러내린 잔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뒤로 넘어 왔고, 살짝 안쪽으로 모은 두 발은 수줍은 듯 가지런했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보고 말테다, 발버둥을 치듯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 나는 여지없이 꿈속에서 튕겨 나왔다.
그렇게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면 마음이 먹먹했다. 아이를 바라는 내 간절함이 그렇게 지독했던 걸까. 십 년이 다 되도록 생기지 않던 아이는 우리를 버린 부모처럼 인연이 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내 간절함이 꿈속에서 커졌던 것일까.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꿈이라는 자궁 속에 아이가 생겼던 것일까.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 해.
어깨 위에 올라앉은 아이를 떠올리던 참이었다.
- 안 해.
- 해.
- 안한다니까?
술병을 뒤집어썼는지, 이른 저녁 말도 없이 나갔다가 들어온 그의 몸에선 시큼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 그냥…… 그냥 해.
- 이성적인 사람이 왜 그래? 오빠 이성적인 사람이잖아?
- 그래도 해.
- 안 한다고 안 해!
나를 노려보는 그의 두 눈에 미약한 불빛이 흔들렸다. 그는 당장 내일부터 의사가 이야기한 치료를 시작하라고 말했다. 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대답했다. 차라리 평온함을 보여 달라고 했다. 겨우 몇 달, 혹은 몇 년의 삶을 담보하기 위해 가진 것 없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일은 당신이 이야기했던 ‘쓸데없는 법석’과 다를 것이 없다고.
- 해.
- 안 해.
- 해.
더 이상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해.
물끄러미 남편을 봤다. 남편은 고꾸라질 것처럼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 해! 해, 해!
갑자기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가 하는 말이 내가 생각하는 말과 같은 것일까.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거나, 어쩌면 내가 모르는 다른 ‘해’를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당연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내가 알고 있는 말과 다른 말. 내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과 언제나 달랐던 그의 언어.
남편 혼자서 가게를 하는 일은 불가능 할 테니 조만간 가게를 정리해야할 것이다. 정리라고 하는 것도 보증금에서 밀린 월세를 제하고, 남는 돈으로 밀린 재료비며 할부로 구입했던 냉장고와 튀김기의 잔금을 재하고, 가게 안 기기들의 중고 값을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나 혼자만의 정리가 남편과 나, 두 사람 모두의 정리가 되지 않도록 애를 써보겠지만, 결국 한 사람을 위한 몫도 남지 않을 것이다.
- 해! 제발…… 해.
남편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문 전화라도 울렸던 것처럼 그는 차가워진 기름의 온도를 높였다. 냉장고에서 토막 낸 닭들을 꺼내 튀김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풍덩풍덩 뜨거워진 기름에 토막 난 것들을 던져 넣었다. 쏴쏴 소리를 내며 뜨거워진 기름이 여기저기 튀었고, 남편은 토막 난 그것들을 새까맣게 탈 때까지 기름 속에서 지글지글 튀겼다.
어쩌면 그 사이, 남편은 또 다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내게 소리를 질렀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항상 그랬듯이 아무 말도 듣지 못했고, 들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렇게 혼자서 마음껏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언제나 남편 혼자만의 언어였다.
맞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남편에게도 반짝거리는 꿈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시인(詩人)이 되는 것이었다. <4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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