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도면호상/[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화> 언니, 탱고 알아요?






r o l o g u e

언니, 탱고 알아요?

 

 

 

 

 

 

 

 

 

거긴, 정류장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모든 것들이 거기에서 멈췄다, 떠났다. 떠나고 돌아오는 모든 것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나는 울고 있는 아이였다.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채였다.

엄마는 작은 입간판 옆에 나를 세워두고 사라졌다. 허리를 숙여 무언가 내게 말했는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물속처럼 엄마의 입은 내 앞에 빠끔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엄마의 언어.

엄마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검은 산들이 나를 둘러쌌다. 검은 물감으로 칠해진 것처럼 새까만 산등성이들은 한발씩 내게 다가오는 듯 했다. 눈물이 가득했던 어린 내 눈에 그건 커다란 망토를 활짝 편 괴물 같았.

하루 종일 간판을 붙들고 엄마를 기다렸다.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는 군복을 입은 남자의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씩씩거리며 울다가 간판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바람에 돌아가도록 물결모양으로 휘어진 입간판은 내게 어깨를 내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간판 위에 글씨가 이상했다.

 

빠쓰 정류장.’

 

누군가 손 글씨로 삐뚤빼뚤 쓴 글자는 분명히 그랬다. 버스가 아니고 빠쓰였을까. 글자를 막 깨우치기 시작한 어린 내 눈에도 그건 이상하게 보였다. 저건 틀린 글씨인데, 저렇게 쓰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나는 또 다시 빼 울고 말았다.

- …… 언니?

기다란 손가락 하나가 내 팔뚝을 두드렸다. 삼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제야 엄마가 나를 찾아 나타난 걸까. 엄마를 찾은 아이처럼 눈물이 가득 담긴 눈을 들었다. 그런데, 눈앞에 커다란 사람이 있었다. 엄마는 아니었다.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는 분명 남자였다.

- 언니, 탱고 알아요?

그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눈물을 훔쳐내지도 못한 채 멍하니 올려보는 나를 보며, 그는 팔꿈치를 들어 올려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 왜 있잖아요? 짠짠짠짠, 짠짠짠 짠짠. 짠짠짠짠, 짠짠짠짠 짠짠. 몰라요, 탱고?

병원의 계단참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선고를 들은 후였고, 기대어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누군가의 가슴이 간절하던 순간이었다.

- 아이, . 이거 있잖아요, 이거!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 그는 아예 몸을 일으켰다.

- 짠짠짠짠, 짠짠짠 짠짠. 짠짠짠짠, 짠짠짠짠 짠짠. 짜라라, 짜라라라. 짜라라!

환자복을 입은 그는 병원 입구를 휘저으며 요염하게 몸을 움직였다.

- 이건 오초! 짠짠짠짠! 이건 히로! 짠짠짠짠 짠짠짠 짠짠!

갖가지 표정으로 병원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그를 올려봤다. 웃으며 수군대기도 했고, 손가락을 들어 머리위로 동그라미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궁금증은 무엇보다 그의 성별일 것이다.

- 아유, 그거 조금 움직였더니 땀이 나네.

환자복 자락을 조심스레 쓸어 모으며 그는 다시 내 곁에 앉았다. 그건 다소곳이 치마를 끌어 모으는 손짓과 꼭 닮았다.

- 화장 번지면 짜증나는데.

꽃무늬가 그려진 손수건을 들어 그는 콧잔등과 목덜미를 찍어냈다. 화장이 들 뜬 턱 주변을 쓸어내리는데, 선명하게 자란 검은 수염이 땀에 젖어 더욱 도드라졌다.

- 문병 왔어요?

말을 할 때마다 불룩 솟은 목울대는 커다랗게 오르내렸다.

- 우리 언니, 아는 사람 중에 누가 아프구나? 아유,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죽는 상을 하고 앉았어요? 아프니 병원 온 거고, 병원 왔으니 주사 맞고 약 먹을 거고, 그러고 며칠 푹 쉬면 깨끗하게 나을 거고, 그러면 되는 거죠, 안 그래요? 후훗.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는 턱을 추켜들었다. 가지런히 모았던 다리를 꼬았는데, 끌려 올라간 환자복 속으로 검은 털이 수북하게 드러났다.

- 죽을 상 하고 그러고 있지 말고, 언니도 나처럼 탱고나 배우지 그래요?

갑작스런 탱고이야기에 내 입은 그대로 벌어진 채였다.

- 탱고가 얼마나 멋진 건 줄 알아요? 그게 우리 인생하고는 달리, 실수가 없는 춤이라고요. 만약에 실수를 하게 되면 모든 스텝이 엉기게 되는데, 그래서 탱고를 출 때에는 리듬을 타는 이 스텝에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거라고요. 알아요?

앉은 채로 그는 발을 곧추세워 물 흐르듯 바닥을 움직였다.

- 불꽃처럼 한 번에 타오르는 격정의 춤! 한 걸음, 한 걸음에 모든 걸 잊는다. 모든 걸 비운다. 음악이 멈추고 거친 아브라소를 풀면 우리는 남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 춤을 멈출 수 없다는 것! 짠짠짠짠, 짠짠짠 짠짠! 언니, 해봐요, 이렇게, 이렇게!

기다란 그의 손이 내 팔꿈치를 들어올렸다. 낯선 체온의 손길이 벌레처럼 살갗 위를 기었다. 화들짝 놀라, 나는 온몸을 털어내며 일어섰다. 허공 위에 몸을 움직이던 그는 물끄러미 나를 봤다.

- 어머머, 이 언니 생긴 거 답지 않게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내 손에 무슨 병 있어요?

샛눈을 뜨며 그는 나를 노려봤다.

- 이 언니, 하도 칙칙하게 그러고 주저앉아 있기에, 좀 기운이나 내라고 말 시켜줬더니만 누가 자기한테 관심이나 있는 줄 알고? , .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잠깐 앉아 봐요.

더듬더듬 그는 내 치맛자락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더 멀찍이 물러났다. 본능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들 앞에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몸의 언어.

- 어머머, 이 언니, 너무 오버하시네? 알았어요, 춤추자고 안 할 테니까, 앉아 보라고요. 딱 봐도, 몸치에, 박치에, 팔자치인 걸 알 것 같으니까 일단 앉아보라고요.

도망치던 내 몸이 팩 돌아섰다.

- 왜요? 맞잖아요? 몸이 말을 안 들으면 몸치, 박자를 못 따라가면 박치, 팔자가 드럽고 사나우니 팔자치, 아녜요?

말문이 막혔다. 어딘가 꼬집힌 것처럼 아파왔다.

-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할 말 있으니까, 이리 앉아 봐요, 이리.

그는 더욱 길게 손을 뻗었다. 똬리를 튼 뱀처럼 그건 어깨 밑에 숨었다가 내 쪽으로 뻗어 나왔다. 병원에 들어서던 사람들이 그와 나의 실랑이를 신기한 듯 구경했다.

- 나도 언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좀 앉아 봐요. 부탁 들어주면 내가 언니 병원 생활 편안하게 해 드릴께. 우리 아빠가 여기 병원 원장이랑 절친이라고요, 절친! 알아요? 그러니까, 언니…….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은 계단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 어머, 언니! 언니!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의 언니라는 말은 단박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무릎을 모으며 그도 일어나 계단을 내려왔지만, 나는 이미 정문 밖으로 뛰고 있었다. 흘끗 뒤를 돌아보니 그는 경비원들에게 덜미가 붙들려 돌아서고 있는 중이었다. 춤을 추는 사람처럼 그는 내 쪽으로 허우적거렸다. 탱고 같은 것,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온 몸도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 <2편에 계속>  





위 기사가 마음에 드신다면 플래터로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에 동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