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있으면 좋겠다, 거기
또 다시 가슴 한 가운데 통증이 밀려왔다. 영락없이 아이 하나가 올라앉은 무게였다. 갈래머리를 늘어뜨린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 아이.
‘아프다.’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아이는 아무데나 내 위에 올라앉은 듯 했다. 어깨가 묵직하고 뻐근하면 아이가 목덜미에 올라와 앉았고, 앉은 다리가 쑤시고 결리면 아이가 작은 발로 마구 짓밟는 것 같았다. 정수리가 쪼개질 듯 아파서 무심코 천장을 올려보았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매번 꿈속에서 만나던 아이는 풀밭 위에 평화로웠는데, 현실 속에서 떠올리는 아이는 언제나 끔찍하고 기괴했다. 뒷모습 때문일 것이다. 한 달음에 달려가 안으려고 하면 움직이지 않는 두 다리로 저만치 멀어지던 아이. 있는 힘껏 달렸는데도 겨우 웃음소리 밖에 들을 수 없는 거리로 멀어졌던 아이. 작정을 하고 필사적으로 달려가, 그 작은 어깨를 움켜쥐었던 날에도 아이는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겨우 수줍은 듯 ‘호홋’ 웃음소리뿐이었다.
- 콜록, 콜록!
알고 있다. 꿈이란 원래 그런 것. 날개 없는 것들은 하늘을 날고, 사랑을 잃은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그런 것이 바로 꿈 속. 팍팍하고 칙칙한 현실을 살고 있는 것들에게는 언제나 보드랍고 환한 희망이던 것이, 그런 꿈 속.
- 콜록, 콜록!
기침을 뱉을 때마다 통증은 심해졌다.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느라, 내 몸은 쪽창에 절이라도 하듯 굽어졌다. 식은땀이 흐르는지 오슬오슬 추워졌다. 바닥에 그려진 네모난 햇살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 갔다. 기도라도 하듯 나는 어느새 햇살 속에 온 몸을 조아리고 있었다.
- 잠깐!
남편의 목소리는 문지방을 넘어오다 그대로 멈췄다.
- 그대로, 그대로 있어!
철컥, 철컥. 연달아 셔터 소리가 들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내 모습을 그는 사진 속에 담았을 것이다. 다행이다. 어쨌든 소멸하지 않고 남겨질 그것. 불노하고 영생하며 언제든 지금의 모습 그대로일 그것. 고개를 들었다.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카메라 안을 들여다보는 그는 매우 흡족한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은 죽음에 대해 말했다. 그가 일하던 직장에서 크레인이 무너지며 근로자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던 즈음이었다. 그 중에 김홍근이라는 사람은 남편과 각별한 친분이 있었다. 여자 아이 쌍둥이를 가진, 쌍둥이 아빠였다. 첨단단지 조금 못 간 신천지구에 임대 아파트를 얻어 집들이를 하던 날, 나도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조용하고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암팡진 느낌이었고, 남편은 에너지가 넘치며 풍채가 좋았지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들면 남편이 나고, 남편이 들면 아내가 나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남편은 그 집 쌍둥이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가 쌍둥이 사진을 자랑삼아 자주 보여주곤 했다고. 나란히 놓은 두 개의 인형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한 두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신기하고 예뻐서, 남편은 처음으로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의 처지에 대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가족이나 결혼을, 행복이나 즐거움과 나란히 떠올리지 못하는 그를 알고 있었기에, 아이 이야기를 하며 달뜬 그의 얼굴을 나는 신기한 듯 구경하곤 했었다.
바로 그 쌍둥이 아빠의 사고 소식을 전하던 날, 남편은 하루 종일 문 밖만 바라보았다. 누구를 기다리는지 골목길을 내다보는 그의 눈빛은 간절해 보였다. 그와의 친분을 알고 있기에, 그의 가족 속에서 남편이 찾던 것을 알기에, 나는 그의 상실감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는 회사 장(葬)으로 장례를 치르고 평상시와 다름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몰론 조금 피곤해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의 장례에 다녀온 사람같이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그 날 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우리들 모두가 죽음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둔다고 했다. 어쩌면 그는 비로소 피안(彼岸)의 경지에 드는 행복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울고 뒹구는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이 쓸데없는 법석이라고 말했다.
죽음은 사랑이라는 감정과도 닮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간을 한 단계 높은 존재로 끌어 올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낯설고 두려운 것처럼, 죽음도 인간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에, 그래서 낯설고 두려운 과정일 뿐이라고.
솔직히 나는 그 때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피안(彼岸)’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종교적으로는 ‘이승의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에 드는 일’이라고 했고, 철학적으로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현실 밖의 관념 세계’라고 했다. 물론 여전히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그것에 대해 남편에게 묻지 않았다.
어쨌든 남편은 평범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왔고, 홍근 씨의 동료들이 회사와 보상금 문제로 단체행동을 하는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남편은 동료들 사이에서 이기주의자로 입에 오르내렸지만, 다행히 그는 평온해 보였다. 그가 이야기했던 피안에 도달한 친구를 보고 있듯이, 남편은 자주 하늘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래서 나는 ‘피안’이라는 말이 ‘천국’과 닮은 것이라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건 졸졸졸 물소리가 들리는 고즈넉한 시간이라고 믿었다. 어쨌든 그 곳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모두가 평온하게 웃고 있을 거라고.
- 김주열 씨?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오른쪽 다리가 컨테이너에 깔려 으스러졌을 때, 나는 그 때의 내 믿음을 의심했다. 보이지 않는 다리를 가리키며 제발 긁어 달라고, 제발 긁어달라고 그가 비명을 질렀을 때, 나는 어쩌면 실망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피안에 도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저 가짜 평화의 뒤집힌 속내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 아이, 주열 씨?
눈감은 그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요즘 남편은 그 때 이야기했던 피안의 한쪽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결국 피안은 존재했던 건지.
- 왜요, 안순옥 씨?
이번에는 내가 피식 웃고 말았다.
- 사진은 많이 찍었어?
- 응.
- 거기가 어디라고?
- 개미마을.
- 풋, 들을 때마다 웃겨, 그 이름.
- 웃기라고 붙인 이름 아냐.
- 누가 그런 이름을 붙였대?
- 모르지.
- 바글바글 모여 산다고 그런 이름을 붙였나, 개미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그런 이름을 붙였나?
- 모르지, 그건.
어쩐지 남편의 얼굴은 쓸쓸해보였다.
- 그래서, 개미 찍었어?
목발을 짚고 다니며 넓어진 어깨 때문에 그가 돌아누울 때마다 산을 안고 누운 것 같았다. 거기, 피안이란 평화로운 산등성이를 닮았는지.
- 맘에 드는 건 있어?
- 응.
- 어떤 건데?
그는 쌍둥이 이야기를 하던 때처럼 또 다시 달뜬 얼굴이 되어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 아까, 당신 방에서 엎드린 거. 그 때 마침 당신 머리 위에 햇살 비춘 거 알아? 정말 그림 같았어, 알아?
그러나 나는 등짝을 짓밟고 있었던, 뒷모습의 여자아이가 떠올라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 근데 무슨 감기가 그렇게 안 나아? 병원에서는 뭐래?
- 죽는대.
그는 또 다시 피식 웃었다.
- 좋겠네. 당신도 그럼 이제 이곳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 가는 구나. 이 끔찍한 인간의 몸을 털어내고 한 차원 높은 경지에 다다라는 거야. 훗, 좋겠다, 좋겠어. 후후후.
그의 웃음은 다행히 피안을 이야기하던 처음 그 때처럼 평화로웠다.
- 근데…… 거기, 정말 있어?
내 물음은 조심스러웠다.
- 모르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후후.
그의 대답은 여전히 평온했다.
- 그럼, 내가 가보고 이야기해줄게.
평화로웠던 그의 웃음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없는 다리를 긁어달라던 때처럼 그는 또 다시 비명이라도 지를 듯 했다. 안 되는데, 죽음이나 절망 앞에 의연했던 남편의 평화가 거짓이면 안 되는데. 그가 이야기했던 ‘피안(彼岸)’이라는 곳이 분명 거기 있어야하는데.
평화를 가르치듯 나는 처음 그 때, 고즈넉하던 남편의 얼굴을 흉내 냈다. 분명히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바라보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씩 물크러졌다.
그의 말대로 꼭 있으면 좋겠다, 거기. 이 끔찍한 고통을 털어버릴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세상으로 들어선다는 거기.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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