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정도면호상/[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5화> 시간의 이름

 

 

 

 

 

 

4.

시간의 이름

 

 

 

 

 

 

 

 

 

- 뭐 그런 델 가자고 그래?

그는 투덜거리며 물었다.

- 그런 데가 있기는 해? 터미널 간판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고? 무슨 포장마차 간판도 아니고, 사람들 다 드나드는 터미널에 그렇게 쓰여 있었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는 또 다시 어깃장을 놓을 것이 빤했다.

- 그게 말이 돼, 그게? 당장에 사람들이 민원 넣고, 공무원들 계장한테 엄청 깨지고, 오기로 어울리지 않게 번쩍거리며 엄청 큰 간판으로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이는 게 보통 일인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창밖을 봤다. 파릇한 이파리들이 터지기 시작한 봄 풍경은 모든 등성이들을 환하게 색칠하고 있었다.

- 게다가 산이 새까맸다고? 꿈꿨니? 아니면 언니, 어린 나이에 술을 좀 하신 거 아니우? 하긴 나도 초등학교 때 술맛을 알기 시작했으니까. , . 어쨌든, 언니, 정말 언니 말대로 그런 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그게 그대로 남아있겠냐고? 부수고 다시 짓고 깔아뭉개고 무조건 번쩍번쩍하게 다시 짓는 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습성인데, 그게 여태까지 남아있겠냐는 말이지.

환자복을 벗은 그의 모습은 더욱 도드라졌다. 하필 분홍색으로 걸쳐 입은 원피스는 가뜩이나 큰 그의 키를 더욱 거대하게 만들었다.

- 그게 다 새마을운동 때 만들어진 습성이라고, 그게. 옛날 것들, 칙칙한 것들 다 깔아뭉개고, 무조건 반짝거리는 걸로만 도배를 해버리는 거.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그 시간을 이겨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번쩍번쩍하는 걸로만 도배를 하는 그 못된 습성, 에이그!

- , 새마을운동도 아니?

흠칫 놀라며 그는 눈길을 피했다.

- ? …… , . 아니, 나도 가게에 있을 때 다른 언니들한테 들었거든.

- 솔직히 말해봐. 몇 살이니?

- ? 어머, 말했잖아? 스물다섯. 팔육, 팔육. 이 언니가 사람을 아주 뭘로 보고, 어머머, 이 언니, 정말? 나 기분 나쁠 뻔 했어, !

그는 토라진 사람처럼 고개를 팩 돌렸다.

- 그럼, 이름은?

- 어머, 리브라고 그랬잖아? 리브 킴!

정색을 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말한 리브 타일러라는 배우를 나는 알지 못했고, 그런 배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 배우를 닮았다고 자신에게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도 믿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배우가 남자가 아닌 다음에야.

- 언니, 반지의 제왕도 안 봤니? 에오웬 공주 몰라? 이 언니 완전 문화생활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 언니 혹시 간첩 아니니? 휴대폰도 없다고 그러고, 고향도 모른다고 하고. 무슨 빠쓰 정류장이니 뭐니 그런 데나 찾으러가자고 하고. 정말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인 거 아냐? 수상해, 수상해?

샛눈으로 그는 나를 노려봤다. 그러나 수상하고 이상한 건 오히려 그였다.

- 간첩도 아니? 남파라는 말도 알고?

- , . 다 들은 거라니까? 내가 기억력이 원래 좀 좋아. 한번 들은 건 절대 까먹지 않는다고. 원래 우리 같은 애들이 천재적인 능력 한 두 가지 쯤은 타고 나는 게 보통이라고! 이 언니, 뭘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 !

이제 그는 아예 내게서 몸을 틀어 앉았다. 어차피 나는 그를 모른다. 그가 이야기하는 리브라는 배우도 알지 못했고, 그가 그토록 빠져있는 탱고라는 춤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내가 기억하는 그곳을 알지 못했다. 처음부터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었다.

- 언니는 거기가 어느 지역인지도 모르지? 아무리 어렸을 때라고 하더라도 기억력이 그게, 그게 뭐니? 원숭이니, 돌고래니?

엄마의 뒷모습을 닮은 여자를 따라 버스에 올랐고, 그리고 내려섰던 곳이 수원이었다. 거기까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그 버스가 어디에서 오는 버스였는지, 그 버스의 이름도 출발지의 이름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갑자기 두렵다. 이름을 잃어버린 내 기억의 정체.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남긴 쪽지 위에 그렇게 쓸 수밖에 없던 것일까. ‘잠깐 다녀올게요,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야하는지. 갈 수 있을지,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일이어서. 어차피 시간에게는 이름이 없어서.

- 그래도 언니가 자란 보육원에는 그런 서류 같은 게 있겠지, . 언니는 거기 갔다가 오는 동안 나는 우리 파트너 좀 만나야겠다. 호홋.

- 파트너?

- , 파트너.

그의 얼굴은 또 다시 금새 발그레 졌다. ‘남자친구같은 것이냐고 물으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가벼이 몸을 섞고 헤어지는 그런 파트너는 아닌지 소름이 끼쳤다.

- 그래, 파트너, 파트너도 몰라?

화가 난 듯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애써 그의 눈길을 피했다. 남자 옆에 붙어 앉아 홍홍 거리는 그의 모습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화장을 고치는지 딸깍거리며 화장품 가방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울 속으로 입술을 내미는 그의 모습을 훔쳐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는 또 다시 분홍색 립스틱을 돌돌거리며 입술에 바르고 있었다.

 

기대 같은 건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미 들었던 똑같은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어 보육원을 나오면서 받아든 서류에는 모든 것이 더욱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떠나온 그 곳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니 별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시 수원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을 정해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닌데, 기다렸다는 듯 리브가 나타났다. 보육원에 들렀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곳에 대한 것들을 좀 알아냈는지 관심을 보이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저 방을 구해놨다며 오늘 밤은 거기서 보내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와 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탐탁지 않았다. 다른 방을 하나 알아보겠다,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는 나를 방에 들여놓고 샤워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모텔방 구석에 어색하게 앉은 나는 엉덩이에 가시가 돋는 것 같은데, 뜨거운 목욕이라도 하는지 욕실에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이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에 이끌려 나는 저 사람을 따라 병원에서 나왔을까. 이렇게 함께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일이 현명한 것일까. 마술 같은 시간들이 슬그머니 일어섰다.

- 언니, 언니도 들어올래?

대답이라도 하듯 몸이 튕겨 올랐다.

- 여기 욕실은 좀 괜찮네. 여전히 좁아터지기는 했지만. 도대체가 두 사람이 들어올게 빤한 이런 데, 왜 욕조는 1인용인거야? 욕조에서까지 포개져서 씻으라는 거야, 뭐야? 그마저도 나처럼 늘씬한 다리를 가진 여자들은 다리도 못 펴게 만들었으니. 언니, 그래도 샤워실 공간은 넓어. 안 들어올래?

- , 아냐, 괜찮아.

되도록 낯선 두려움을 들키지 않도록 나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 물 틀어 놓을까?

반투명의 유리가 단단한지 그는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 아냐, 난 다른 방 가서 잘게.

이번에는 조금 크게 소리치듯 말했다.

- 욕조는 너무 작다니까? 우리 둘이 못 들어가.

그러나 그의 대답은 또 다시 어긋났다. 대답이 틀렸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서 욕실 가까이 가는 일은 내키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갑자기 모든 것이 쓸모없다는 무력감이 온 몸에 스몄다.

- 강원도겠지?

- ?

그는 이제 아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거기 말이야. 산이 굉장히 높았다며? 그럼 강원도지, .

그런데 이번에는 오히려 내 말을 듣고 있는 투였다.

- 강원도?

- 그래, 우리나라에 산이 높은 데가 강원도 쪽 밖에 더 있어?

하지만 자신이 없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저 물결 모양의 입간판만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을 뿐.

- 만나야 된다는 사람은 만났니?

- 아니면 말고. 그럼 간 김에 바다나 보고 오지 뭐. 겨울 바다나 여름 바다도 아니고 봄 바다는 좀 밋밋하긴 하겠지만. , 그래도 바다는 바다니까. 왜 영화 같은데서 보면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들 대부분 마지막에서 바다로 가잖아? 무슨 지들끼리 약속을 했나, 바닷가에 뭐 먹을 걸 묻어 놨나? 호홋.

그의 대답은 또 다시 어긋났다. 이제 아예 나는 바닥에 몸을 뉘었다. 다행히 바닥은 기억을 되살리는 옛날 방처럼 뜨끈뜨끈했다.

- 만나야할 사람을 만나니까 좋았니?

어느새 나도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 그치? 생각해보니까 언니도 웃기지? 계곡이나 강이나, 뭐 놀이공원 같은데 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혼잣말 같은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 , 나 다음 달에 죽으니까 롯데월드에 갔다 올게. 마지막으로 자이로스윙을 하루 종일 타고 싶어. ! 이거 이상한가?

누구를 흉내 내는지 그의 목소리는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 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좋을까?

매번 하얀 얼굴로 떠오르던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번번이 나는 그 속에 아무런 표정도 그려 넣지 못했다. 어렸을 때에는 무작정 웃는 모습을 그렸지만, 지금 내가 그릴 수 있는 건 모든 것이 지워지고 그저 새하얀 무표정의 얼굴뿐이었다.

- 또 자이로스윙을 몰라? 롯데월드는 아니? 에버랜드는? 도대체 그 나이 되도록 뭐하면서 살았니? 노래방은 가 봤니? 명동이나 홍대는 가봤어? 이태원은? 남산은?

씩씩거리며 그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 한 번은……. 만나야하는 거겠지? 한 번은, 살아서.

- 한강은 왜 갔니? 설마 다른 사람들처럼 몸매 생각해서 강변을 뛰느라 갔던 건 아닐 테고. 죽으려고 갔니?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욕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 꼭 살아서, 한 번은.

- 하이고, 그런데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뛰어내리려고 갔더니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해? 그 봐, 그 봐. 죽고 싶지 않아도 다 죽을 때가 오잖니. 뭘 기를 쓰고 한강까지 나가 죽으려고 애를 쓰니?

샤워를 하는지 다시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 그걸 상상해봐. 죽고 난 다음에 물에 퉁퉁 불어 강물 위를 떠다니다가 사람들한테 발견될 걸 생각해보라고. 어우, 쪽팔려. 살아서도 더러운 팔자, 죽어서까지 그런 꼴로 죽어야한다고 생각해보라고! 어유, !

그의 욕지거리가 욕실 밖으로 쑥 튀어나왔다. 어느새 천천히 눈이 감겼다. 피곤했던지 나는 조금씩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언니, ?

- 아니, 안 자.

어차피 들을 수 없는 일,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언니, 침대는 내가 쓴다? 나 워낙 예민해서 곁에 사람 있으면 못 자거든. 그러니까 언니가 이해해?

리브의 혼잣말은 그러고도 한참을 더 이어졌다. 물론 내 혼잣말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손을 내밀면 다시 한 발 앞서 걸었고, 다시 두어 걸음 따라가면 껑충껑충 그만큼 멀어졌다. 문득 아이를 돌려 세우는 일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밤의 무력감이 꿈속에까지 스몄던 건지.

그런데 내 발걸음을 따라 아이도 멈춰 섰다. 바람을 따라 아이의 잔 머리카락은 머리 뒤로 나풀나풀 넘어왔다. 머리끝에 묶인 흰 리본들도 조금 더 바스락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입고 있는 봄빛 같았던 연노랑색도 조금 탁해진 듯 했고. 자세히 보니 아이가 입고 있던 원피스는 남의 것을 빌려 입은 듯 조금 헐렁했다. 아닌가, 아이가 조금 작아진 건가.

아이의 뒤에 물끄러미 서서 내 머릿속은 자꾸 뒤엉켰다. 내가 믿고 있던 기억과 싸우며, 생각은 계속해서 하나씩 무너졌다.

 

아닌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매번 꿈속에 만나던 그 아이가 아닐지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춤주춤 두 발이 거꾸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누런 긴 치마를 입은 구부정한 아이의 모습, 익숙하다. 머리 위에 꽃송이들을 두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꽃들이 시들며 지푸라기로 변했다. 머리를 묶은 흰 천은 나를 부르듯 길게 날렸고. 아이가 입고 있던 치마는 버적거리며 더욱 길어졌다.

소복(素服)이었다. 아이가 입고 있던 것은 상()을 치를 때 입는 소복이었다. 철퍼덕 나는 주저앉았다.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자꾸 짓눌렀다. 꼼짝도 않던 아이의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처음으로 아이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씩 웃는 입 꼬리가 뺨 한 가운데까지 올라갔고, 찢겨진 아이의 눈웃음은 소름끼치도록 길었다.

 

그런데 아이의 눈 위에 눈썹이 없다.

 

!’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집어삼키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천천히 아이가 다가왔다. 미끄러지듯 허공에 둥실 뜬 채였다. 기괴하게 목덜미를 튼 채 그건 나를 향해 쿵쿵쿵 다가오고 있었다. <6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