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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호상/[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6화> 양평의 근처에서

 

 

 

 

 

 

 

 

 

5.

양평의 근처에서

 

 

 

 

비명은 짧았다. 꿈속에서는 손을 들어 입을 막았는데, 깨어보니 나는 팔뚝을 물고 있었다. 아침이 왔는데도 방 안에는 아침이 오지 않았다. 시간은 아홉시. 그런데, 어디에도 아침은 없었다. 꿈틀거리며 리브가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그제야 아침이 왔다. 구석에 웅크린 날 보고, 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내게는 엄마야!’ 하는 그의 비명소리가 늦게 온 아침보다 훨씬 더 고마웠다.

 

- 아주 내가 못살아, 못살아! 언니, 혹시 몽유병 같은 거 있는 거 아니니? 밤에 막 돌아다니고, 대답도 하고, 노래도 하고 그러는데, 정작 자기는 기억 못하는 그런 거, 그런 거 아니야?

돌아갈까. 다그치는 리브의 얼굴은 골탕이라도 먹은 듯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우겨넣은 밥알들이 상 위에 여기저기 튀었지만, 그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갈까.

- 언니, 그거 무서운 거다, 알아?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히히히. 근데, 언니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글쎄, 나 일하던 이태원 가게에서도 그런 보갈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언니. 그 기집애가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 게다가 이 년이 몽유병 같은 게 있었던 거야. 글쎄, 밤에 자빠져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는 화장대 옆에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더니, 글쎄 이 년이 남자들 오줌 싸듯이 이러고, 이러고 오줌을 싸버린 거야, 글쎄?

리브는 숟가락을 든 채로 일어나 아랫배를 주욱 내밀었다. 내 얼굴은 저절로 일그러졌다. 돌아갈까.

- 미친 년, 고상한 척, 예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자기는 천상 여자라나, 뭐라나 지랄을 떨더니, 아주 딱 걸렸지, ? 그 날 언니들한테 뒤지게 맞고, 그 년 우리 아침 먹을 때까지 가게 구석에서 머리 박고 있었잖아? 호호호.

얼마나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지, 작은 식당 밖에 거리를 걸어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들여다보았다.

- 어머, 언니! 난 아니야, 언니. 나야말로 언니가 봐서 알겠지만 천상 여자지, 내가 어디 그런 되다 만 보갈 년하고 같겠어? 언니는 사람을 겪어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야, 언니! 호호호! 이 언니도 참!

자꾸 눈썹이 없는, 치켜 올라간 아이의 눈이 떠올랐다. 날씨가 추운 것도 아닌데 몸이 떨렸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라도 새어 나올까 이를 꽉 물었다. 돌아갈까. 곁에 남편이라도 있다면 이렇게 두렵지는 않을 텐데. 오빠라면 내 두려움을 다독여줄 수 있을 텐데. 자꾸 목이 탔다. 물 잔을 쥐는 손이 미끄러졌다.

- 언니, 왜 안 먹어?

그러나 대답할 수 없었다. 입을 벌리면 비명이라도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 빨리 먹어. 언니 이거 먹을 날도 며칠 안 남았잖아? 어쩌면 이런 핏덩이 둥둥 떠 있는 국밥 먹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생각 없는 그의 말은 입 속의 밥알처럼 마구 튀었다.

- 어머, 언니 시간 다 됐다! 먹을 시간 없겠다, 일어나자!

리브는 내 팔을 잡고 일어났다. 돌아가겠다고 말해야하는데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구경하던 식당 주인에게 계산을 하고서, 그는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양평은 강원도가 아니라 경기도라고 말했는데도 소용없었다. 또 다시 만나야할 파트너가 있다며 그는 막무가내였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이 아니라면 들르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터미널을 향해 뛰는 그에게 나는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가 끌고 있는 캐리어처럼 눈부신 분홍색은 아니었지만, 나는 선명한 두려움의 색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리브는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 통화가 되지 않는지, 전화를 받고도 만나지 않겠다 말하는지, 리브의 표정은 자꾸 조급해졌다. 나는 대합실 한 가운데, 천장에서 길게 늘어진 파란 안내판 밑에 앉았다. 그 위에는 3개 국어로 똑같은 말이 나란히 씌어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도착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겠지만, 그건 어쩐지 절박해보였다.

- 언니, 여기가 아니고 용문터미널이라는데?

물론 거기도 여기처럼 내가 찾는 터미널이 아닐 것이다. 검은 산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여긴 그저 술 박스를 짊어진 젊은 사람들의 놀이터처럼 보였다.

- 뭐가?

- 그 인간 말이야. 아니, 처음부터 똑바로 말을 해야지. 양평이라고 했다가 이제야 다른 데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하지만 양평에 살고 있지 않으면서도 양평에 산다고 말했을 누군가의 마음도 조금은 납득이 갔다. 어차피 리브가 알지 못하는 그 곳을 말해놓고도, 결국 양평의 근처라고 덧붙일 수밖에는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내 두려움은 무엇의 근처일까.

- 어유, ! 거기 가려면 또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된대. 그 인간은 무슨 한국말도 제대로 못해?

무슨 말을 해야 그에게 내 두려움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또 다시 손거울을 들어 화장을 고치는 그를 물끄러미 봤다. 돌아갈까. 이런 쓸모없는 여행, 이런 의미 없는 동행. 그만둘까.

- 어머, 저 오빠들 놀러왔나 보네?

- 안녕하세요.

인상 좋은 젊은이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 , 안녕하세요. 호호호.

금새 다리를 모아 앉아 고상한 척 리브도 고개를 숙였다.

- 언니, 언니, 쟤 귀엽네, 그치? 저렇게 먼저 인사를 한다는 이야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이야기거든. 하리수 언니가 티비에 나오고 나서 저런 사람들 종종 있더라고. 그 언니야 말로 우리들의 잔다르크지, 모든 보갈들의 유관순 누나, …… 아니, 유관순 언니! 호호호!

리브는 대합실이 울리도록 꽝꽝 웃었다.

- , 이거 좀 드세요.

등 뒤로 따스한 손 하나가 넘어왔다. 아까 그 젊은이였다. 그의 손에는 음료수 병 두개가 나란히 들려 있었다.

- 어머, 호호호, 뭐 이런 것 까지, 고맙습니다. 쌩큐! 호호호!

다시 사람들의 무리로 돌아간 그는 살짝 눈인사를 했다. 다른 젊은 친구들도 친근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방인인 내가 보아도 그건 참 고마운 눈빛이었다.

- 저 봐, 저 봐! 저 남자, 나한테 꽂혔어, 언니! 호호호! 아유, 어떡하지? 난 연하 타입은 아닌데, 맨날 연하들이 나한테 꽂히는 타입이란 말이야? 호호호. 언니 수첩, 수첩 있어? 볼펜이랑.

리브는 황급히 들고 있던 손가방을 뒤적였다.

- 어머, 뭐해, 언니? 좀 찾아보라니깐.

버럭 화를 내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 없어? 뭐 적을 것도 없어? 다이어리나 수첩 같은 것도? 이 언니 교양 있는 언니인 줄 알았더니 뭐 그런 것도 안 가지고 다니니? 아이, , 잠깐만!

리브는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창구로 다가갔다. 종이쪽지 하나를 받아들고 남자의 무리로 쪼르르 달려갔다. 돌아가야 한다. 내 생의 마지막을 이런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수는 없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구 쪽으로 다가갔다.

- 광주요.

앞에 섰던 손님이 잔돈을 건네받자, 나는 창구 안쪽에 대고 말했다.

- 어디요?

- 광주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내 목소리는 조금 커졌다.

- 삼천 백 원이요.

내 앞에 내밀어진 분홍색 차표 위에는 분명 양평에서 광주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이상했다.

- 삼천원이요?

작은 창구에 대고 다시 물었다. 창구 안의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어떤 감금의 표시 같았다. 목소리만으로 판단하자면 물론 감금된 건 나였다.

- 삼천 백원이요!

안의 목소리도 커졌다.

- 이게 광주 가는 게 맞아요?

이미 내 목소리도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대합실 안에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내 쪽으로 기웃거렸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당혹스러워하는 젊은이에게 아예 쪽지 하나를 떠맡기던 리브도 무슨 일인가 넘겨봤다.

- 어디 광주요?

- 전라도요, 전라도 광주라고요!

어느새 건너편의 그녀와 나는 거의 악다구니를 주고받고 있었다.

- 여긴 없어요, 다른데 가서 타세요!

불쑥 내밀어진 손이 거칠게 표를 빼앗아갔다.

- 왜 없어요! 터미널에 버스가 없으면 어쩌자는 거냐고요!

나는 거의 멱살잡이라도 하는 사람 같았다.

- 이 아줌마가? 없는 버스는 없는 버스지, 그럼 이 촌 동네에 전국 방방곡곡 가는 버스가 다 있을 줄 알았어요? 전라도 가는 버스는 이천으로 가던가, 아니면 동서울터미널로 가던가, 거기 가서 갈아타라고요!

매표원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 살 거예요, 말 거에요!

그러나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 안 살 거면 비키세요, 다음 분이요!

그녀가 나를 밀친 것도 아닌데, 내 몸은 가볍게 옆으로 밀려났다.

- 어머머! 저 여자, 손님 대하는 태도가 저게 뭐야, 저게? 천박하게 저게, 저게?

다가온 리브는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커다란 몸을 내 뒤에 숨긴 채였다. 처음부터 그는 내 두려움이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버스가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용문터미널이었다. 그러나 그 곳은 터미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너무 후락했다. 마을 한 복판에 자리한 넓은 공터에 그저 오두막 같은 건물이 하나 서 있을 뿐이었다. 낡은 건물 안에는 찰흙으로 빚은 것 같은 매표소가 있었고, 긴 나무 의자들이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버스는 작은 터미널 건물을 끼고 공터로 들어와 승객들을 태워 다시 건물을 돌아나가는 구조였다. 포장이 되지 않아 버스가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먼지가 풀풀 일었다.

- ! 아유, 아유! 요즘도 이런 데가 있나? 마을은 그렇게 낡아 보이지 않는데 터미널이 왜 이 모양이야? 아유, 아유!

리브는 분홍색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버스에서 내려서며 연신 원피스에 묻은 먼지를 떨어냈다. 학생들의 하교 시간인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건물 밖에 주욱 늘어섰다. 버스에서 내리는 리브를 보고는 서로 수군거리며 킥킥댔다.

- 아유, 귀엽네! 안녕, 안녕, 애들아? 호호호!

리브는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구경꺼리라도 만난 듯 아이들은 신났고, 몇몇은 휴대폰을 들어 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아유, 정말 좋을 때다! 애들은 참 순수한 것 같애. 그치, 언니? 우리 같은 것들한테는 저런 아이들의 순수함이 얼마나 고마운 건 줄 알아, 언니? 쟤들은 그냥 신기해할 뿐이지, 좋다, 나쁘다 그런 생각이 없잖아? 아직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도화지 같은. 그래, 그래, 이리와! 같이 사진 찍어 줄게. 호홋.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아이들 무리에게 손을 흔들자, 교복을 입은 몇몇이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아예 리브의 코앞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 아유, 줄 서, 줄 서!

- 아줌마, 너무 멋있어요!

- 예뻐요, 섹시해요!

모여든 아이들 속에서 입에 발린 말들이 쏟아졌다.

- 그래, 그래. 너희들 보는 눈 좀 있구나? 호호호, 그래, 그래, 사진 찍어줄게. 이렇게, 이렇게?

리브는 얼굴이 발그레 져서는 아이들의 카메라 앞에 이리저리 포즈를 취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리브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주변의 상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나와 무슨 일인가 구경을 했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또 다른 교복 입은 아이들을 몰고 왔다.

- 차례로, 차례를 지켜서 찍자! 차례로!

리브는 몰려드는 아이들의 줄을 세우느라,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느라 정신없었다. 학생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학생들과 나란히 서서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 봤지? 봤지, 언니? 이게 다 하리수 언니의 힘이라고! 호호호!

아이들은 연예인이라도 만난 듯 꺅 비명을 질렀다. 몇몇은 사진 속을 들여다보며 좋아라 발을 동동 굴렀다. 리브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들의 카메라 앞에 일일이 포즈를 취했다. 나는 어느새 아이들의 무리에서 밀려나,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벽에 기대섰다. 돌아가야 한다. 나는 또 다시 어딘가에 끌려와 있다. 시간은 언제나 나를 이렇게 내가 모르는 낯선 곳에 내려놓았다.

- ! 어딜 만져요!

리브를 둘러싼 아이들 너머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곁에서 사진을 찍던 한 여자 아이는 가슴께를 가리며 몸부림을 쳤다.

- 어머머, 같은 여자끼린데 뭐 어떠니?

- 으유, 씨발! 변태새끼!

여자 아이는 도망치듯 아이들을 비집고 나와 길 건너로 사라졌다. 리브 주위에서 사진을 찍던 아이들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 아유, 기집애! 유별나게 굴기는. 호호호.

리브는 다시 아이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려 했지만, 이미 아이들의 눈초리는 달라졌다. 수군거리며, 긴장된 표정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경계의 눈빛을 가진 그들에게서는 더 이상 리브가 말했던 순수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 아이들 중에 하나가 리브의 치마를 들치는 장난을 시작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 덧 명의 커다란 덩치의 남자 아이들은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 더욱 희희낙락했다. 아이들 중에 하나를 잡으려고 움직이면 다시 뒤에서 손이 나타났고, 그 아이를 향해 돌아서면 다시 뒤에서 다른 손이 나타났다. 리브를 둘러쌌던 아이들은 킬킬거리기 시작했고, 몇몇 아이들은 치마 속을 들여다보려고 주저앉았다.

- 비켜! 저리 안 가! ! 언니, 언니!

그의 비명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아이들 너머에서 구경을 하던 어른들도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내 옆에 섰던 남자도 킥킥거렸다.

- 히히히, 같은 남자끼린데 뭐 어때?

- , 저놈들 가슴도 만지는데?

고개를 주욱 빼고 다른 남자가 중얼거렸다. 이제 그들은 리브의 가슴을 구경하기 위해 눈을 반짝였다.

- 언니, 언니!

그러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꾸 나는 사람들 뒤로 숨어들고 있었다.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나와는 상관없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이곳을 떠나서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내 삶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어느새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리브의 비명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사람들은 구경을 하기 위해 더욱 몰려들었다. 몇몇 아줌마들이 이제 그만 말려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당황하는 리브의 모습을 구경하며 킬킬거렸고, 내 발걸음은 모퉁이를 돌아, 작은 터미널 지하의 계단 속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7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