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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문득 이 단어 ] 에세이

첫사랑, 그 아름다운 한 마디에 대해 >> 글 : 현 수 "첫사랑 이야기 해 주세요." 사람들은 첫사람에 참 많이 설렌다. 자신의 이야기이든 남의 이야기이든. 첫사랑이라 하면 어쩐지 서툴고,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도 몰라 실수도 많이 하고, 그런데 그것마저도 귀엽고 애틋하고, 헤어짐은 드라마틱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답게 기억된 것이리라는 기대가 있다. 남자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로맨틱한 루머도 있다. 그런 것이 어디 첫사랑 뿐이겠는가. 처음 한다는 것은 늘 서툴고 어색하다. 해본 적 없는 일도 척척하는 사람을 보면 "처음 하는 사람 같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 '처음'이란 어설프다. 그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처음'은 조금 잘못해도 괜찮다. 글자 그대로 "처음엔 다 그래"다. '첫'이란 감동이기도 하다. 취직한 첫 달에 받는 '첫'월급이란.. 더보기
있어야 할 건 다 있나요 - 김밥천국의 '천국' 글 >> 현 수 번영로를 타고 수영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 편에 참 인상적인 간판이 하나 지나간다. 'OO 팩토피아'가 그것이다. 검색해보니 아파트형 공장 상가라고 나온다. 지어졌을 당시엔 획기일지 아닐지는 몰라도 이름 하나는 엽기다. 팩토피아라니. 팩토리와 유토피아를 합친 단어임에 분명하다. 우리말로 바꾸면 '공장천국'쯤 되겠다. '유토피아'나 '천국'이나 둘 다 이상향, 또는 낙원의 의미로 통하니까. 그러나 아무리 해도 머릿속에 연상이 안 된다. 공장 굴뚝이 늘어선 지역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도 낙원보다는 '블레이드러너'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아하, 혹시 팩토리와 디스토피아가 결합된 말? 에이 설마(일리 있어 어떡해 건물주 만세) 대체 천국이라는 말이 뭘까? 팩토피아에서 .. 더보기
있어도 부재중 - 부재중 전화 글 >> 현 수. 몸이 둔해서 큰일이다. 휴대전화를 벨소리로 하는 건 남들에게 민폐다 싶어 주로 진동으로 해 두는데,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은 당최 거대하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기가 영 그렇다. 손에 들고 다니다 액정 한 번 깨먹어봤더니 피눈물이 한강수요, 바지 주머니에 넣자니 이건 좀 변태스럽기도. 해서 뒷주머니에 넣어놨더니 진동이 잘 안 느껴진다. 아놔, 살찐 엉덩이.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가 떠 있는 게 그만큼 잦아졌다. 보통은 '아, 내가 또 전화 온 줄 몰랐네' 하지만, 가끔 짜증스러워질 때면 전화탓을 하게 된다. 전에 쓰던 폴더폰은 스마트한 친구는 아니지만 진동 파워 하나는 안마기 수준이었는데. 진동 하나 못 느꼈다고 사람을 부재중 취급하는 게 못마땅해진다. 전화기 나름이야 아주 .. 더보기
오빠라고 불러주기 싫은데요 - '오빠'와 호칭어 Illust by 스타몬키 나이가 들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드물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며 만나는 관계에서는 엄밀한 호칭어가 존재하는 법이다. 대리면 대리, 부장이면 부장, 윗사람이면 뒤에 '님'을 붙이는 것까지 착착이다. 학교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런 회사나 학교 생활 말고의 관계에서 만나는 사람 사이에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 스물아홉인 사람이 나이 스물다섯쯤으로 보이는 점원을 부를 때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가씨는 스물아홉이 네 살 어린 여성에게 쓸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모라 부르면 스물다섯이 하이킥을 날릴 거다. 우리는 이런 때에 종업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말에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인 지칭어와 그를 부르는 말인 호칭어가 일치하지 .. 더보기
‘번영’ 뒤의 ‘오륜’ - 오륜동, 번영로, 회동저수지 ‘오륜’이라고 하면 맨 처음 생각나는 건 나는 특이하게도 오륜기였다. 88 서울 올림픽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따지자면 여러 의미에서(좋게든, 나쁘게든) 중요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사실 오륜기란 올림픽을 상징하는 깃발인데도 서울 올림픽을 경험한 탓인지 마치 서울 올림픽만을 상징하는 깃발처럼 느껴졌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이라는 숫자에도 동그라미가 다섯 개 있어서 더욱 그런 건 또 아닐까. 사정이 그렇다 보니 오륜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엉뚱한 상상을 먼저 했다. 그 인근에 회동 저수지가 있으니 커다랗고 둥근 저수지가 다섯 개 정도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가 아닐까 하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 이 오륜은 내가 학창 시절에 오륜기보다 몇 배는 더 자주 들었던 한자성어 ‘삼강오륜’의 오륜이었다. 오륜.. 더보기
고독하지 않은 인문학을 위하여 : 인문학 평생학습관의 수업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온다. 배움에 목이 마른 분들이나, 무료한 낮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찾으시는 이 분들 중에는 일반 주부나 정년이 지난 어르신들이 좀 있다. 가장 어린 분도 70년생이니 강사인 나보다 어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렵고 딱딱한 내용은 힘들어 하실까봐 예시를 많이 들면서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쓴다. 특히 이론 부분이나 인문학적 용어를 써야 할 경우에 조심스럽다. 과연 이 분들이 인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는 계실까 하는 고민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인문학의 개념이 급부상한 요즈음에 젊은 사람들도 인문학이 뭔지를 모르는 지경이니 말이다. 인문학에 대한 정의야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학자들이 내리고 있으니 내가 이제 와서 이걸 이야기하면 뒷북이거나 헛소리일지도 .. 더보기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 스타일 아니에요 - 강남, 그리고 스타일 싸이의 신곡 ‘강남 스타일’이 대박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남 스타일의 패러디로 홍대 스타일이나 대구 스타일 등이 나오면서 인기 부채질에 열을 올리더니, 요즘엔 거꾸로 버전에 오케스트라 버전까지 나왔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처음에 지나가듯이 이 곡을 들었을 때 들리는 가사라곤 ‘오빤 강남 스타일’이라는 말밖에 없었기에 되게 웃기다고 생각했더랬다. 강남 스타일이라니. 요즘엔 별별 웃기다 못해 어처구니 없는 가사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가(넌 내꺼중에 최고라느니, 니가 얼마나 잘난 놈이기에라느니, 십점 만점에 십점이라느니) 나 잘났다를 당당하게 외치는 가사들도 많기에 그냥 그런 가사 중 하나이려니 했다. 얼마 못 가 사그라들 반짝 성공일 거라 예상했던 노래가 알고 봤더니 내가 좋아하는 싸이의 노래였다.. 더보기
봄, 봄, 봄, 좋지 아니한가? - 청춘 봄이로다, 봄. 이 아니구나.여름이다. 죽도록 덥기만 한 여름. 아니지. 봄이다. 청춘은 바로 봄이 아니던가. 그러나 내 나이는 서른을 넘었고. 조선시대 기준으로 중장년층이다. 청춘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도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까지를 지칭한다 하니 그만 나이마저 청춘을 넘어가 버렸다. 뜨거운 감자는 노래한다. 다시 오지 않는 나의 청춘 돌아오지 못할 강물처럼 흘러가는구나.1) 청춘. 이 얼마나 아름다운 두 글자인가. 바야흐로 만물이 생동하는 푸른 봄이다. 푸릇푸릇하니 갓 태어난 새싹들의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가득한. 이 사회에 드디어 움을 트는 십대 후반.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한창 활기차고, 바위를 들라 하면 백두산 꼭대기까지 갖다놓을 기세로 충만한 젊음이다. 어찌나 싱그럽고 .. 더보기
사랑에 대한 단상 - 남자 사람 친구는 또 뭐냐 -남자 친구 Boy friend, 여자 친구 Girl friend 1. 사랑이란 참 좋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그것 때문에 속 쓰린 사람도 숱할 것이고, 밤잠 못 이루며 새벽의 시간을 확인하고도 뒤척이는 이도 있겠지만. 괴롭다고 하여 좋지 않은 것은 아닐지니. 그 괴로움도 무릅쓰게 만드는 어떤 힘이 사랑에는 있는 듯하다. 이 세상엔 지금껏 사랑을 논하는 숱한 가요와 문학과 그림과 영화와 퍼포먼스 등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어느 것 하나 사랑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가치는 다양하며, 그만큼 앞으로도 지금까지보다 더욱 방대한 것들이 사랑을 논하게 될 터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정답이란 게 뭐 있겠는가. 정답이 없으므로 사람을 고민.. 더보기
당신은 ‘신용’할만한 사람입니까 -신용카드, 신용불량자- 문제 1. 다음 중 당신이 가장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자기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내는 승훈씨 ②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없는 건형씨 ③ 한다고 말을 했으면 어지간한 일이 있어도 하고야 마는 경우씨 ④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은 하는 법이 없는 유진씨 ⑤ 빌린 돈은 제때제때 척척 갚는 진명씨 지난 2월 집을 옮겼다.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보니 방 곳곳에서 온갖 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콩알만한 방안에 이것들이 다 어디에 그렇게 들어가 있었나 싶을 만큼 잔뜩이다. 이삿짐도 줄일 겸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버린다고 한 무더기의 짐들을 빼놓았는데 그러고 나서도 남은 짐들의 양이 상당하다. 밥그릇, 컴퓨터, 책상, 침대, 이불, 옷가지들, 볼펜 몇 개에 지우개며 이것저것. 나 한 사람의.. 더보기
건강은 별매입니다. - 웰빙, 로하스, 친환경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항상 ‘친환경 농산물’이나 ‘로하스’, ‘웰빙’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한때 이 말들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를 좀 지난 것 같지만 여전히 소비자에게 유효한 모양이다. 아마도 이런 말들이 찍힌 단어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를 떠올릴 것이다. 1. 몸에 좋다. 2. 값이 비싸다. 친환경과 웰빙은 다르다. 그리고 웰빙과 로하스는 단어의 기원으로 보았을 때 거의 반대말에 가깝다. ‘친환경’은 자연에 위해를 가하는 것들을 생산단계에서 최대한 배제시키는 방식으로 얻어낸 생산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웰빙(Well Being)’은 인간이 개인의 삶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 풍족하게 가꾸고자 하는 일종의 복지의 개념이다. ‘로하스(LOHAS)’는 ‘건강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 더보기
가정'식' 백반 혼자 먹는 가정식 백반 - 가정식 백반, 정식, 외식 식당 메뉴판에 적힌 ‘정식’이라는 메뉴를 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린 적이 있다. 대학 초년생 때 선배를 따라 간 식당에서였다. 그 옆으로 나란히 적혀 있는,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두루치기백반, 만두백반 따위의 특화된 메뉴명들 앞에 밋밋하게 적힌 ‘정식’이라니. 저 놀랍도록 단촐하고 무개성적인 이름 앞에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를 시키면 나오는 각종 밥반찬들에서 김치찌개를 뺀 나머지만 나오는 걸까, ‘正食’(실제로는 定食이다)이라는 어감이니 뭔가 바른 밥상쯤 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식단들보다 반찬이라도 푸짐하게 나오는 걸까 따위의 영양가 없는 고민을 풍성하게 늘어놓았다. ‘공기밥’의 ‘공기’가 숨쉬는 공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