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이라고 하면 맨 처음 생각나는 건 나는 특이하게도 오륜기였다. 88 서울 올림픽은 우리나라의 역사로 따지자면 여러 의미에서(좋게든, 나쁘게든) 중요한 사건이라 할 만하다. 사실 오륜기란 올림픽을 상징하는 깃발인데도 서울 올림픽을 경험한 탓인지 마치 서울 올림픽만을 상징하는 깃발처럼 느껴졌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 1988이라는 숫자에도 동그라미가 다섯 개 있어서 더욱 그런 건 또 아닐까.
사정이 그렇다 보니 오륜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엉뚱한 상상을 먼저 했다. 그 인근에 회동 저수지가 있으니 커다랗고 둥근 저수지가 다섯 개 정도 다닥다닥 모여 있는 동네가 아닐까 하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 이 오륜은 내가 학창 시절에 오륜기보다 몇 배는 더 자주 들었던 한자성어 ‘삼강오륜’의 오륜이었다.
오륜동이라는 이름은, 그 인근에 거처하던 한 사람이 오륜을 매우 잘 지킨다 하여 붙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지명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일단의 특징으로 지어졌다. 이순신이 다녀갔다 하면 죄다 충무동이 되는 이치쯤 되겠다. 특히 효나 충은 빼놓을 수가 없는 요소가 아니겠는가. 열녀가 한 사람만 있어도 동네 앞에 ‘이곳은 열녀가 있는 곳’이라 하며 열녀문을 세울 만큼 ‘모범’과 ‘귀감’을 중시 여기는 것이 우리 문화였다. 그런데 무려 오륜동이다. 충과 효를 모두 포함한 매우 모범적인 이름이다. 철저히 유교적인 이름이 양반촌의 느낌까지도 나는 것이다.
한편 회동(回洞)이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 퍼져 있다. 어원의 유래도 다양한데, 사람들이 돌아온 마을이라 하는 곳도 있고, 사신으로 간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을이라는 곳도 있고, 물줄기가 굽어 돌아가는 마을이라거나 혹은 길이 에둘러 가는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 저수지를 끼고 오륜동의 남동쪽에 위치한 회동동의 동 명칭을 따서 붙은 이름이 회동저수지이다. 생긴 것도 꼭 오른쪽을 들어올린 오륜기 마냥 잘도 꺾였다.
실상 저수지를 세 면으로 끼고 있는 지역은 지금은 회동동이 아니라 오륜동이다. 처음보다 계속 넓어져서 마을이 있던 자리까지 물에 잠겼다는 회동 저수지. 어쩌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오륜동을 감싸게 된 건 아닐까. 근대로 접어들면서 부산에 유입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저수지는 점점 더 확장되어 오륜동 마을의 상당 부분을 집어삼켰다. 이제는 오륜마을의 삼면이 이 거대한 저수지에 둘러싸여 있다. 빗대자면 3자 모양으로 세운 오륜기의 아래쪽 홈쯤 되겠다.
게다가 마을로 들어서는 동쪽 도로는 오륜터널을 통과하는 번영로에 가려져 있다. 산업화 시대 도로 공사를 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꾀하던 가치가 그대로 이름에 담긴 번영로는 오륜동이라는 중세적인 이름의 마을을 정확히 가려 버렸다. 중세를 철저하게 끊어내고 근대 사회로 이행한 우리 역사가 마을의 이름이며 모양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지금의 오륜동에는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군신유의(君臣有義)할 임금은 없고 부자유친(父子有親)할 자손은 마을 밖에서 생활하며 방문하는 이들이 더 많아 장유유서(長幼有序)를 할 만한 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의 부군이 별세(別世)하여 홀로 계신 할머니들은 붕우유신(朋友有信)으로 서로 지낸다. 마을 할머니들처럼 나이가 다들 예순에서 일흔을 넘어가시면 외려 나이 차이가 무색한 친구가 된다. 부산에 몇 없는 자연마을-사전에도 없는 이 ‘자연마을’이라는 단어도 참 신통방통하다만 대강 ‘시골’ 정도의 의미로 보면 될 듯도 하다-의 하나라는데 오륜이라는 이름이 한편으로는 쓸쓸한 감회를 주는 건 이렇게 사라져가는 과거의 가치를 떠올리게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회동저수지 주변으로 시에서 갈맷길을 조성하면서 오륜동은 전보다 좀 더 외부에 노출되게 되었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오륜동이 또 어떻게 더 변모할지 모른다. 그런 오늘날에 있어 어쩌면 우리가 할 일은 오륜동을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안다는 말이다. 새 것은 이제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알아야 할 옛것이란 무엇이겠는가.
윤산과 번영로를 에둘러 가다 보면 회동저수지에 회(回)한 오륜마을이라는 곳이 나온다. 마을을 저수지에 묻고, 시대를 가슴에 묻은 조그마한 마을이다. 오륜을 지키는 이가 있던 마을이며, 우리의 옛모습을 담고 있는 마을이다. 갈맷길로 오륜동을 지날 때면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우리의 발 아래에 본디부터 있었던 것은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땅이었음을.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문화이모작 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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