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가정식 백반 - 가정식 백반, 정식, 외식
식당 메뉴판에 적힌 ‘정식’이라는 메뉴를 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린 적이 있다. 대학 초년생 때 선배를 따라 간 식당에서였다. 그 옆으로 나란히 적혀 있는,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두루치기백반, 만두백반 따위의 특화된 메뉴명들 앞에 밋밋하게 적힌 ‘정식’이라니. 저 놀랍도록 단촐하고 무개성적인 이름 앞에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를 시키면 나오는 각종 밥반찬들에서 김치찌개를 뺀 나머지만 나오는 걸까, ‘正食’(실제로는 定食이다)이라는 어감이니 뭔가 바른 밥상쯤 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식단들보다 반찬이라도 푸짐하게 나오는 걸까 따위의 영양가 없는 고민을 풍성하게 늘어놓았다. ‘공기밥’의 ‘공기’가 숨쉬는 공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무렵이었다. 집에서는 ‘공기’라는 말을 잘 쓰지 않으니 내가 얼마나 외식 없는 가난한 집에서 자랐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일고여덟 반찬들을 늘어놓고 계란 후라이나 생선 구이 따위에 국 하나가 더 올라가는 가정식 백반 밥상을 받아 앉고 나니 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전에 따르면 ‘定食’이란 끼니때를 정해 놓고 먹는 음식이라고 나오지만 식당의 ‘정식’은 끼니때가 아니라도 먹을 수 있으니 ‘가정식 백반’으로 보는 게 옳겠다.
이름은 ‘가정식 백반’이지만 내 ‘가정’은 이런 밥상을 내게 잘 선사해주지 않는다. 매일 밥을 차려야 하는 어머니들은 밥상 위에 다섯 가지 이상의 찬을 잘 올리지 못하니까. 가정에서 이만한 밥상을 매일 받는다면 그도 상당한 호사다. 코딱지만한 원룸 방의 독신자들에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
그러니 가정 백반이 아니라 가정‘식’ 백반이다. 이건 반찬 구성이 중요한 것도 아니요, 실제 내가 집에서 받아먹는 상과의 유사도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따뜻한 가정에서 엄마가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내는 식탁,의 컨셉인 거다.
실제로 내 어머니는 김치와 콩나물국에 밥만으로 나의 학창시절 밥상 위를 꾸미기도 했지만(그렇다고 이제와서 어머니에게 타박하려는 뜻은 아니다)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을 먹고 있노라면 집밥을 먹는 느낌이 난다. 이런저런 말을 접어놓아도 짜장면이나 돈까스가 한국에서는 집밥이 될 수 없으니까.
아, ‘가정’이 주는 온기여. 일을 찾아, 학업을 위해, 혹은 그 어떤 이유에서든 ‘가정’의 기본 단위인 ‘집’을 나와 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는 그런 밥상이 그리울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흰 김이 새록새록 올라오는 흰 쌀밥과 정찬이 갖추어진 밥상.
오늘날처럼 시간에 쫓겨 살아야만 바른 인생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가정에의 그리움을 더더욱 채찍질한다. 집에서 밥을 해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 매일 새로운 음식을 계획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으로 인해 밖에서 사 먹기를 선택하는 우리의 식단은 어떠한가. 주머니를 뒤적여 끄집어낸 지폐 몇 장을 들고 돈까스며 김밥, 우동, 라면 따위로 끼니를 해결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중간 중간에 ‘공복’이 가장 많은 빈도로 끼어들겠지.
다른 음식점이 아닌 정식집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풍경 하나. 나홀로 손님들이 많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생각해 보면, 동행이 있어야 어디든 갈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집도 어지간해서는 혼자서 가지 못한다. 돈까스나 스테이크 따위를 혼자서 먹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내 지인 중 Y양은 혼자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와 와인을 시켜놓고 음미하며 먹기도 했다는데, 이건 그 사람의 특별함(혹은 대담함)이자 동시에 그 음식을 향한 애정인 것일 뿐. 대개의 경우에서 ‘외식’ 식당이란 혼자서는 잘 가지 못하는 곳이다.
동행인이 없는 날엔 밥을 사먹기가 곤란한 법이다. 특히 아침이 그렇다. 아침잠 부족으로 아침밥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침 시간에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있어도 그렇게 굶게 될 것 같지는 않다(된다면 그건 습관일 뿐이다). 아침에 라면을 혼자 끓여먹기도 속에 부담되고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니 아침을 굶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내내 허하다. 허함을 채우고자 점심과 저녁,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어쨌든 아침이 돌아오게 되어 있다.
‘외식’이라고 하는 말은 참 신묘하다. 이 말의 존재는 ‘집에서 차린 식탁’으로서의 ‘내식’이라는 말을 전제로 한다. 이 ‘내식’이 ‘정식’ 쯤이 되겠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외식’이 ‘내식’이 되었다. 가정으로부터 독립해 제 혼잣삶을 꾸려가는 이들이 많아진 오늘날에는 말이다. 집안 주방에 있는 거라곤 수저와 컵, 초라한 밥솥에 라면 냄비가 전부인 이들은 결국 ‘외식’에서 ‘가정식’을 찾는다. ‘외식’이 ‘가정식’을 제공하는 아이러니는 이제는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가정식 백반이란 수수하면서도 동시에 든든해야 한다. 이 가정식 백반은 우리에겐 없는 가정의 느낌까지도 줄 수 있어야 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어도 ‘향수(鄕愁)’라는 단어를 들으면 시골의 풀냄새를 먼저 떠올리듯, 내가 집에서 받아본 적 없는 그런 상이라 하더라도 ‘가정식 백반’을 먹으면 어떤 원초적인 부모와 가정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혹은 그래야만 하는 것. “오늘은 밥을 먹고 싶다”라는 말이 나온다면, 나의 삶이 얼마나 외로운 삶인지 굳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공기밥에 대한, 혹은 그러한 공기밥을 퍼 주는 ‘어머니’의 손에 대한 그리움만큼은 하얀 밥김처럼 무럭무럭 솟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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