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1. 다음 중 당신이 가장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자기가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해내는 승훈씨
② 약속시간을 어긴 적이 없는 건형씨
③ 한다고 말을 했으면 어지간한 일이 있어도 하고야 마는 경우씨
④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은 하는 법이 없는 유진씨
⑤ 빌린 돈은 제때제때 척척 갚는 진명씨
지난 2월 집을 옮겼다.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보니 방 곳곳에서 온갖 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콩알만한 방안에 이것들이 다 어디에 그렇게 들어가 있었나 싶을 만큼 잔뜩이다. 이삿짐도 줄일 겸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버린다고 한 무더기의 짐들을 빼놓았는데 그러고 나서도 남은 짐들의 양이 상당하다. 밥그릇, 컴퓨터, 책상, 침대, 이불, 옷가지들, 볼펜 몇 개에 지우개며 이것저것. 나 한 사람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이런 식으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이사를 끝낸 다음에도 새 집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또 돈이 들어갔다. 이사비용만 해도 꽤 들었는데 새 집에 맞게 필요한 것들이 또 어찌나 많던지. 창문이 많아서 커튼도 해야 하고, 거실에 식탁도 놓고, 컴퓨터 책상도 새로 필요하고, 냉장고에 먹거리들도 새로 채워야 하고. 통장 잔고가 아슬아슬한 이때. 나는 지갑에 있는 신용카드를 꺼낸다. 다행이다. 카드 덕분에 당장 돈이 없어도 급한 것들을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신용카드 이전에는 자본을 확보해야만 소비가 가능한 구조였다. 하지만 신용카드 이후로 사람들은 ‘확보가 예정된 자본’만큼을 미리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계산만 잘 하면 된다. 내 월급날 들어오는 돈보다 더 많이 쓰지만 말자고. 쉽게 말해 이건 대출 시스템의 일종이다. ‘벌어서 쓴다’가 아니고 ‘쓰고 나서 갚는다’가 된 시스템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약속한 시기에 대금 납부를 지키는 사람’이 된다. 신용카드라는 말에서 ‘신용’, 즉 ‘credit’은 이런 뜻이 된다. 믿을 信에 쓸 用자가 쓰였으니 대충 ‘믿고 쓰게 해 준다’쯤 되지 않을까.
이 ‘신용’이란 경제학의 용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믿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믿음이란 말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흔히 ‘믿음 소망 사랑’의 3대 가치를 이야기하는 단어인 만큼 뭔가 신성하거나 혹은 순수할 것이 기대되는 단어라서 그럴까. 신용카드의 ‘신용’이라는 말이 그만큼 어색하다. ‘믿는다’라고 하는데 뭘 믿는고 하니까 ‘돈 갚을 것을 믿는다’라는 말이다. 믿고 안 믿고에 조건이 걸리는 것만으로도 순수함이 사라지는데 그것이 돈이기까지 하니.
아마 이미지의 문제쯤이 아니었을까. ‘대출카드’라고 하기엔 현금을 손에 쥐어주는 방식은 아니긴 했고, ‘대지불카드’라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또 쓰는 사람이 마음이 편치 않을 터다. ‘신용카드’라고 한다면 꽤 있어 보이기도 하고 쓰는 사람도 우쭐할만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은 초등학교 6학년. 같은 반의 싸움 잘 하는 친구에게 어쩌다 보니 돈을 빌리게 되었다. 친구는 굉장히 성격이 관대하고 아쉬울 것 없을 만큼 돈이 많지만 한 번 뒤집히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으며 특히 돈 문제에는 칼날 같다. 그 친구는 당신에게 순순히 돈을 빌려준다. 그러면서 당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한다. “믿는다. 내 믿음을 어기면 알지?”
신용이라는 말뜻대로 돈을 제때 갚아내지 못하면 이제 곤란해지는 것이다. 영어에서는 이를 deterioration of credit rating이라고 한다. deterioration은 악화라는 뜻이고 rating은 등급이니 직독하면 ‘신용 등급 악화’가 된다. 이것이 우리말에서는 신용불량이다. 영어의 어휘야 ‘이 사람의 채무상환 능력의 등급 약화’라는 뜻이 되니까 그렇게 말이 독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불량’은 차원이 좀 다르다. 우리가 흔히 ‘불량’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들을 생각해 보라. 불량배, 불량식품, 불량학생. 이 ‘불량’이라는 부정어와 ‘신용’이라는 어휘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위압감을 보라. ‘신용불량’이라는 말은 얼마나 사람을 무시하는 말이 되는가.
그것이 단지 ‘돈 때문에’라는 사실이 살벌한 것이다. 돈이 없으면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세상. 믿음이라는 한 가치가 돈이 있고 없고로 인해 규정되는 세상. 그래서 ‘믿음을 저버린 사람’에게 불량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는 생활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세상. 삼 개월의 유예를 자비심이라고 볼 순 없다. 카드 사용이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면서 카드 사용을 적극 장려하며 전국민의 빚쟁이화를 유도한 것치고는 너무 각박하지 않나. 빌려줄 땐 관대하게, 되받을 땐 가차 없이, ‘신용불량’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긴 채로 죽어간 사람들이 대체 몇이나 되는가.
지갑에 있는 신용카드를 꺼내고, 다행이다, 생각하다가 움츠러든다. 금융권은 나를 잘 모른다. 내가 지금 얼마나 돈이 없는지, 혹은 얼마까지 돈을 갚을 수 있는지. 사실 관심도 없다. 그저 돈을 쓰게 만들고(내 능력 이상 쓰면 더욱 좋겠지) 쓴 만큼의 금액을 나를 파산내면서까지 받아내면 그만인 것. 그 비정함을 ‘신용’이라는 달콤한 말로 덮어씌운 작고 얇은 플라스틱 조각을 본다.
P.S. 그래서, 카드를 썼느냐고? 허허. 허허허.
'+절찬리 생존중 > [ 문득 이 단어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 스타일 아니에요 - 강남, 그리고 스타일 (0) | 2012.09.06 |
---|---|
봄, 봄, 봄, 좋지 아니한가? - 청춘 (2) | 2012.08.02 |
사랑에 대한 단상 - 남자 사람 친구는 또 뭐냐 (2) | 2012.07.05 |
건강은 별매입니다. - 웰빙, 로하스, 친환경 (0) | 2012.05.03 |
가정'식' 백반 (3) | 2012.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