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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 글픽쟁이의 맵시 ] 디자인

깔깔이로 대동단결

최근 국방부에서는 잘못된 언어가 병영문화를 망친다며 군대에서 사용되고 있는 몇몇 일본어, 외래어, 비속어, 신세대 은어 등의 사용을 제한했다. 그러니 앞으로 병영 내에서는 “깔깔이”라는 말도 함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깔깔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기에 아쉽다. 뭐, 딱히 대단한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쁜 말은 더더욱 아닌 듯한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었을까.

 

깔깔이의 어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촉감과 관련한 “깔깔이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과거 열악했던 시절 군 보급품으로 나왔던 “방상내피”가 까끌까끌하다며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관련된 이야기조차도 볼품이 없기는 하나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매력 하나는 일품이다.


항간에 “깔깔이”야말로 국보급 “스테디셀러” 아니냐는 말이 떠돈다.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만 나름 일리도 있다. 국군 장병 당 한 벌 이상씩은 보급받았을 테니 적어도 60만 벌 이상은 팔린 옷이나 다름이 없으며 민간인이 입고 있는 누적량까지 합치면 더 엄청나다는 계산이다. 좀 더 오타쿠스럽게 따져 보자면 대한민국 국군 창설일이 1948년이고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났으니 “600,000 × 60 =” 대략 36,000,000벌쯤이 된다.



'이제는 개나 소도 깔깔이를 입는다 : 특허받은 가축용 방한복'


뭐, 억지 섞인 숫자 놀음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개나 소도 깔깔이를 입는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깔깔이는 누빔이다'


잠깐만 짚고 가자. “누빔”은 수예의 한 기법이며 주로 추운 지방에서 활용되던 전통기법이다. 이 기법은 안감과 겉감 사이에 솜이나 털을 펴 넣어 일정한 패턴이 드러나게 바느질한 것으로, 다른 말로는 “퀼팅_Quilting"이라고도 한다. “깔깔이”도 “누빔” 기법을 이용한 의복이다.


'노페보다 군페'


언제부터인가 방한을 위한 아웃도어 붐이 일었다. 그야말로 대세다.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아웃도어 용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란다. 매년 갱신되는 기록적인 한파도 크게 한 몫을 했을 터. 그런데 이런 아웃도어 용품의 가격은 다른 의류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다. 기본 40~50만 원대의 말도 안 되게 높은 가격은 여전히 합리적이지 못하며 갈수록 가격의 편차도 커지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기능도 가격을 부풀리는 충분한 요건이 되었을 것이다. 방수성, 방풍성, 통기성, 내구성이 어쩌고 저쩌고... 복잡하고 어렵기 그지없다. 누가 보면 “히말라야”라도 등반하는 줄 알겠다. 우리나라 겨울 추위에 유명 브랜드의 고기능성 패딩 자켓은 분명 과해 보인다.

 

자, 이쯤에서 “깔깔이”의 재조명이 필요하다. 말 많던 패딩 자켓의 대안으로도 깔깔이를 추천하고자 한다. 다들 군대에서 그 효능(?) 한 번쯤씩은 맛보았을 것이며 누빔으로 만들어진 “깔깔이”가 방한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군필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오죽하면 그 촌스러운 깔깔이를 민간에서도 입고 다니겠나.

 

적어도 이 방한에 있어서는 이 허름한 “깔깔이” 하나면 “노페”가 아니라도 얼어 죽지는 않으니 너무 유난 떨지들 말자.


'미쉐린맨 코스프레'


다들 잘 알고 있는 미쉐린맨이다. 이 친구의 정확한 이름은 “비벤덤”. 이쯤에서 대부분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아웃도어 열풍”은 이제는 “미쉐린맨 코스프레 열풍”이 되었다. 아웃도어 재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미쉐린맨스럽다.



'미쉐린룩은 이제 그만!'


아무런 개성 없이 두툼하기만 한 그들의 패션! “미쉐린룩”의 탄생이다. 대부분의 아웃도어 재킷은 이런 디자인에 가깝다. 뻔하디 뻔하다. 지금은 주춤하고 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 고등학생들 사이에 “교복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논란이 되었던 “등골브레이커 사태”가 떠오른다.

 

나는 졸업한 지가 꽤 됐는지라 우리 부모님 등골은 다행히 무사(?)하시다. 여러분 부모님들의 등골은 안녕들 하신가!

 

또 얼마 전에는 한 카페에서 패딩 자켓을 입은 커플 남녀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맙소사! 패딩 자켓 안에는 새하얀 반팔 티셔츠 달랑 한 장... 아무튼 존재감 하나는 확실하다. 반팔 티셔츠 한 장으로 “패딩 자켓의 패기”를 보여주셨으니. 이건 레이어드 개념의 파괴다. “패딩 자켓” 하나면 반팔이니 긴팔이니 구분 지을 필요도 없겠다.


'이제는 누빔이 대세!'


요즘은 “누빔 기법”이 트렌드를 입고 새로운 형태의 패셔너블한 아이템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부해 보이는 패딩 재킷에 비해 “누빔 기법”을 활용한 대부분의 제품은 상체를 적절히 압박해줌으로써 몸매의 볼륨감을 살려주고 다양한 스타일과 접목해도 무리 없이 조화를 이룬다. 또 겉으로는 얇아보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방한에도 효과적이다.

 

그야말로 매력 덩어리 완소 아이템이올시다.

 

자, 이제 그만 비싸고 두꺼운 패딩은 벗어 던져 버리자. 올 겨울은 “누빔 기법”으로 만들어진 “깔깔이”로 방한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한 번 잡아보는 건 어떠실는지!

 

참!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베를린”의 첫 장면에서 하정우가 입고 있던 옷도 “누빔”이라는 거! 알고들 계시려나!



'여기서 보너스! 극강의 커스터마이즈!'

대학시절 디자인 전공자였던 내게 “깔깔이”는 훌륭한 작업복이었으며 때로는 크고 작은 웃음을 주는 극강의 커스터마이즈 아이템이었다. 타고난 기질들은 무시할 수가 없었던지 내 주위에는 한땀 한땀 정성들여 손수 튜닝한 “D.I.Y 깔깔이”를 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나이○, 아디다○, 푸○ 등 유명 스포츠브랜드의 로고를 왼쪽 가슴팍에 그리거나 붙이는 기본형 튜닝부터 “청산~리~ 벽계수야~”의 사군자 스타일 튜닝, 또 용, 호랑이, 봉황, 대나무, 붕어 같은 스카쟌(각주) 스타일까지 본인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면 뭐든지 그리고 색칠했다. 그만큼 상상을 초월하는 독특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나저나... 내 “깔깔이”는 어디 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