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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I see you at ELEVEN? - 오월 열한시 앨범 리뷰

글.사진 >> 현 수.

 

 

 

 

 

MAY I see you at ELEVEN?

 

 

부산 동래 복천동은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부산의 외지 중 하나다. 부산 곳곳에 있는 산동네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도시가스도 되지 않는 곳에서 지하수를 받아마시며 살아가는 곳이다. 하지만 여타의 산동네들과는 다른 특징이 있으니, 이 지역에는 고분이 있다는 것. 삼국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복천 고분에는 푸른 풀들이 자랐다. 이곳에 거주 중인 전상천(마틴)은 여기를 아주 좋아한다. 고분을 덮은 새파란 풀들을 보며 그는 말한다. "죽음에서 생을 길어올리는 풀들을 보면서 기운을 얻어."
미국, 호주, 런던, 파리, 중동, 네팔 등 여러 나라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마틴은 최근 부산에 정착했다. 복천 고분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작은 공간을 '클럽 오월열한시'로 명명했다. 고분군을 산책하고 창작에 몰두하면서 여유롭고 고요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끔 동래 시장을 거닐면서 그곳에 가득한 생의 활기를 온몸으로 받는 것. 그것이 그의 최근 일과다.
그가 앨범을 냈다. [오월열한시]는 그의 새로운 활동명이자 그 이름으로 나온 첫 번째 앨범의 제목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인 만큼 느낌도, 감성도 더욱 각별하지 않을까. 그의 음악과 노래가 인도하는 세계로 천천히 빠져들어보자.

 


두 번째 1집

마틴의 앨범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앨범은 전상천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허영의 무덤]은 자살한 친구를 위한 레퀴엠인 피아노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낮고 고요한 속에서 느리게 침잠하는 분위기의 곡들이 많았다. 소나타 풍의 '걷는 동안', 관악기의 활용으로 동양적인 애잔함을 살린 '춘궁', 글래스오르간의 하울링으로 우울한 느낌이 더욱 강조되는 'Lamento', 단조로 깔리는 베이스 음이 묵직한 맛을 더하는 'Knock'등. [허영의 무덤]은 무덤이라는 단어의 느낌만큼이나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겁게 울리는 느낌이 강한 앨범이었다.
그랬던 그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앨범을 냈다. 그의 필모로는 두 번째 앨범이지만, '오월열한시'라는 이름으로는 첫 번째 앨범이다. 이번 앨범은 그 전의 앨범에 비해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번 앨범은 기타 앨범이다. 피아노가 건반을 누르는 행위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면 기타는 현을 튕기거나 울리는 방식이다. 그런 악기의 특성이 반영된 듯, 무겁게 누르던 [허영의 무덤]에 비해 [오월열한시]의 곡들은 밝고 가볍다.
전곡을 기타로 리드하는 가운데 마틴이 직접 보컬링을 한 노래 앨범이라는 것이 [허영의 무덤]과의 또 다른 차이이다. 그렇기에 [허영의 무덤]을 뉴에이지 앨범으로 보자면 [오월열한시]는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으로 볼 수 있겠다.
악기를 복잡하게 사용하진 않았다. 곡에 따라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등이 결합되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기타를 베이스로 하여 보컬이 들어가지 않는 부분(간주 등)에 이들 악기가 조음을 하는 형태가 기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곡의 한 음 한 음이 명징하게 들리면서도 가득찬 느낌이 있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미니멀리즘 음악으로, 화성을 단순하게 구성하면서도 계속 변화를 주도록 곡을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듬이 귀에 금방 익는다.
이에, 그는 보컬 부분에서 화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의 목소리는 두텁지 않기 때문에 반가성의 화음이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기에 좋다. 신시사이저의 여린 하울링이나, 길게 끄는 현악기 음에 더불어 하울링이 강한 코러스는 종교적인 신비로움까지도 떠올릴 만큼 몰입감이 강하다.

 


시와 노래와 그리고 음악

마틴은 시인이다. 노래하는 사람은 시인이라는 넓은 카테고리에서의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시 창작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노래들에는 함축적인 맛과 깊이가 있다.
그의 모든 노래들에는 일관된 맥락이 있다. 이원화된 세계를 과정으로 거쳐온 풍경들이 그것이다. 곡들에서 나오는 과거의 시간은 전반적으로 괴로움을 깔고 있다. '내가 살아온 텅빈 날들'이나(목도리) '병든 바람이 저'었던(초록에 대하여) 시간들이며, '그들에게 맞춰서 웃'어야(사표) 했던 과거다. 그리고 화자는 그 시간을 지나와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게 도달한 오늘은 '옛몸을 버'린 후 '봄빛이 내'린(나들이) 날이다.
일면으로는 험한 시간을 헤쳐온 이로서의 여유도 느껴진다. 그런 여유는 대개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괴로움에 빠져 있으면 주위가 보이지 않는 법이며, 자기 안에 침잠해 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노래들에는 응시와 연민이 있다. '눈부시도록 하얗게 웃는 너의 미소'를(하얀 미소) 보며 감격스러워 하는 모습이나, '니가 날아오르길 바'라는(연극) 모습에서 그러한 여유가 드러난다. 사표를 내려 가는 그녀에게 이입하여 말은 잘 통하지 않더라도 손 잡고 걷는 여유를 들려주는 모습은 그러한 선택을 한 이들을, 일종의 선구자적 시각으로 격려해주는 감정이 느껴진다.
물론 잊기 싫을 만큼 따뜻했던 순간들도 그 과거 속에는 존재한다(거리가 지나간다). 저 먼 어린 시절에는 '세상도 모르고'(여름방학) 행복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만난 세상은 '답에 가까워지면은 누군가 질문을 바꿔버리는'(환상의 커플) 바람에 무너지고 꺾이길 반복한 것이었다. 자신을 '붙잡아줄 말을 모아' 그런 괴로운 시간들을 '가르며'(연극) 지나와 이제는 '우주를 품은 밤바다'에(Wave)에 도달했다.
괴로웠던 과거와 이를 극복한 현재를 분리시키는 것은 평화를 찾은 지금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 잘 견뎌냈어'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손길은 우리들 누구에게라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이번 앨범은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그가 사는 곳으로 산책


10곡이 담긴 정규앨범 CD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틴은 깊은 고민을 했다. 요즘처럼 한두 곡만 든 미니앨범이 대세인 시대, CD가 죽어가는 시대에서 과연 10곡이나 든 앨범을 만드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그러나, 한 장에 10곡을 넣었어도 들을 건 타이틀곡을 포함해 두 곡을 채 넘기지 못하는 어설픈 상업 앨범과 이 앨범은 다르다. 10곡 전체가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큰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틴이 사는 곳인 복천동에는 무덤 위에 푸른 풀이 자라고 있다. 죽음 위의 삶이요, 겨울 뒤의 봄이다. 이번 마틴의 앨범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클럽 오월열한시에서 그는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금요일이면 대체로 그의 앨범 콘서트가 열리고, 토요일이면 그의 주도 하에 음악감상회가 있다. 복천 고분 위로 노을빛이 떨어지는 순간을 보면서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앨범 구매도 이곳에서 가능하다. [오월열한시]만 구입할 경우 12,000원, [허영의 무덤]을 함께 구입하면 20,000원이다.
소년의 짓궂은 장난기와 철학자의 사색적인 통찰을 모두 가진 마틴은 이제 복천동의 주민이자 부산의 음악가가 되었다. 음악은 부산만의 것이 아니지만, 그는 부산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또 새로운 영감을 받고 음악을 창조할 것이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지 않다. 동래역에서 6-1번 마을버스를 타거나 명륜역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동호탕' 정류장에서 내리면 얼마 가지 않아 클럽 오월열한시가 나온다. 그곳에 가면 때로는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할 수도 있고, 볕 좋은 복천동 고분군을 고요히 산책할 수도 있다. 혹은 그가 들려주는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거나, 그의 기타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준비물은 간단하니 잘 챙겨갈 것.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을 잠시 끊어두고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가벼운 마음 차림. 그것만 있으면 그가 사는 곳으로 '나들이'를 갈 수 있다.

 

 

 

전곡 듣기

트랙 1. 나들이
첫 번째 트랙으로서의 의미가 분명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새로운 시작을 맞아 그는 옛몸을 버리고 새 몸을 갖는다. 이루지 못한 꿈,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날들을 묻는 행위는 결별이자 동시에 기림이다. 과거의 자신을 맺고 새로이 시작하는 곡이자, 몸을 끌고 밖으로 나온 이의 감흥이 곡 전체에서 우러난다.

트랙 2. 여름방학
부신 봄볕 느낌이 가득한 '나들이'에 이어 한층 경쾌한 템포로 간다. '나들이'에서 묻은 시간보다 훨씬 이전의, 가난이나 부러움이나 외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모르던 어느 순간을 회상한다. 이 노랫말에는 성장하며 만나게 될 쓸쓸한 삶을 은연중에 깔려 있으나, 곡에 담긴 회상 그 자체는 순수하기만 하다.

트랙 3. 하얀 미소
노래에는 '너'와 '나'가 분리되어 있지만, '서울을 떠난 너'는 마틴 자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법하다. 서울에서 만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대안은 '태평양'라는 천연의 공간. 이곳은 생명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흔들흔들', '살랑살랑', '찰랑찰랑'의 의성어와 솟구침의 동적 이미지들은 '하얀 미소'로 긍정된다. 전보다 더 커 보이는 '너'를 바라보는 '나'에게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타자화하여 격려해주는 뭉클한 감동이 느껴진다.

트랙 4. 사표
다시 명랑한 분위기다. 체제가 강제하는 비본래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던지는 사표를 노래했다는 곡이다.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적인 가치를 포기하는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들을 대표하는 '그녀'가 드디어 그 삶에 사표를 낸다. 물건을 팔기 위해 남에게 맞추는 삶에 사표를 던지는 순간 미래는 불투명해도 손잡고 걸을 사람을 만날 거라는 희망이 있다. '사표'라는 단어는 묵직하지만, 사표를 내러 가는 걸음은 한껏 가볍기만 하다.

트랙 5. 환상의 커플
전체 곡들의 흐름과는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곡들이 어제를 지나온 오늘을 노래하는 반면, 이 곡은 그 자체로 어제의 이야기이다. 한 번도 구체적으로 들려주지 않은 어제의 괴로움들이 이 한 곡에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너'와 '나'는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소통도 거부한다. 그들의 관계는 잠깐 썼다 지우는 일회성의 관계다. '내 부모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선험자의 과오를 그대로 따라간다. 이것이 어떻게 단지 연인들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사랑이라는 관념을 무기로 상대의 심장을 할퀴는 모든 사람들의 관계의 덫인 것이다.

트랙 6. 거리가 지나가네
너와 나는 그대로이나 거리는 변해버렸다. 환경이 변한다는 것은 그 환경 속에 남아 있는 추억들까지도 사라짐을 뜻한다. 첫사랑에게 고백했던 커피숍이 폐업한 것을 보는 듯한 쓸쓸함. 내가 기억하는 따뜻한 순간들이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여실하다.

트랙 7. 초록에 대하여
코러스 부분이 여타의 곡들에 비해 강조되어 메인 보컬과 대등한 스케일로 들어가면서 성가적인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병든 바람과 슬픔을 견디고 광합성을 하던 치열했던 순간의 상징이 초록이라면, 갈색으로의 변화는 무르익는 성장이다. 낙엽을 퇴색으로 보던 수많은 상징들과는 대조적으로, 마른 잎의 이미지는 차가 되어 더욱 구수하게 우러난다.

트랙 8. 연극
이 곡에서는 좀더 적극적이다. '나'는 이 세상의 시련을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했다. 아직 그러한 시련 속에 힘들어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자신의 방법을 들려준다. '너'를 괴롭히는 어둠은 '너'만의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은 다른 이도 겪은 어둠이다. 어둠이 드리운 사람들이 상대를 위해 자신의 어둠을 누르고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연극'을 하는 동안 그 자신이 치유된다는 말은, 정서의 공유와 타자의 존재 인정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역설한다.

트랙 9. 목도리
목도리는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정성이다. 화자는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일회적인 언어를 사용했기에 금방 망각하고 만다. 화자로부터 순간적으로 발화된 언어는 '너'의 마음에 남아 목도리로 돌아오지만, 언어를 망각한 화자는 자신의 말이 그렇게 따뜻한 목도리를 받을 만한 것인가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다. 언어가 우러나온 자신의 삶을 '텅빈 날들'로 인식하고 있기에 그러한 의식은 더하리라. 이전 곡인 '연극'에서 말의 긍정성을 시사했다면
이 곡에서는 자기를 돌아보는 매개가 된다.

트랙 10. Wave
밤바다의 감흥을 노래한 곡. 아침햇살로 시작한 앨범은 밤의 우주로 끝이 난다. 삶의 여러 낮밤을 지나서 우주를 품은 밤바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 발끝부터 온몸이 어둠에 잠기는 밤에 기타를 연주하며 자신의 세상 끝으로 가는 모습은, 지금까지의 삶의 고비를 넘겨와 마침내 고요히 정착한 감격스러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