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여 만에 찾은 서동은
그간 간판 몇 쪽이 바뀌었다.
여러 채, 새 집이 올랐고, 시장에도 댓 군데 새 점포가 들었다.
하지만 오밀조밀, 얽히고설킨 마을의 풍경은 여전하다.
담벼락을 발라놓은 세멘 자국, 벽돌의 질감이 생생하게 가까웠고,
저녁이면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부엌의 훈기를 맞을 수 있었다.
29번 버스를 타면 갈짓자로 둘러둘러 이십 분.
한달음이면 닿을 거리.
그러나 가깝지만은 않은 것은
그 고갯길을 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가깝고도 먼 곳. 나에게 서동은,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고개 이쪽은 그동안,
도로가 넓어지고
집과 집 사이가 멀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상을 찾아,
보다 빠르고 더욱 큰 도시를 만들었다.
저마다의 이상은 부풀어 올라
마천루가 되었고,
서로 다른 듯 비슷한 빛깔의 희망들은
8차선 도로를 따라 대굴대굴,
서울과 부산 사이를
시속 110킬로미터로 굴러다니게 되었다.
꿈은 저 높이, 하늘에
심전도 꼴의 윤곽을 그리며 솟았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삶은 지층에
때로는 그 아래에만 머물렀다.
반짝이는 커튼월에 말끔한 대리석 타일,
꿈에서 본 듯한 순백의 패널들.
티비에는 형형색색의, 매끄럽고 보드라운 세상이
5.1채널, 스테레오 사운드로 펼쳐졌고,
아구가 딱 맞아 떨어지는 보도블럭 위를 걸으며,
나는 킁킁. 오드뚜왈레, 넘버파이브 따위를 상상했다.
놀리듯, 도시는 스스로 아름다웠다.
저 혼자 발광하고, 발화했다.
형편에 맞춰,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이어지는
어제 오늘이 까닭 없이 부끄러워지는, 멋진 신세계.
서동은 종종 걸음으로 일이십 분이면 되었지만,
마을 안은 더욱 가까웠다.
팔을 뻗으면 두 벽에 손이 닿을 듯한 골목,
현관을 마주하는 집과 집 사이가 그랬다.
한길 따라 내려오는 이차선 도로 주변과 고개 위 버스차고지,
주차장 몇 군데를 빼고 나면,
온 곳이 적당히 한두 가족 규모의 아담한 둘레였다.
조롱하는 이상과 꿈의 세계에 지친이라면
서동을 찾는 것도 괜찮은 일탈이 될 것이다.
한 마디 한 마디, 울대를 거쳐
덩어리 채 뱉어내는 말의 결이 살아나는 곳.
웅장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롯이 자리를 지킨 자들의 편이 되는,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사람들의 마을로.
/글: 싫은데요
* 이 기사는 금정구의 지원을 받은 "서동, 고개를 넘다" 책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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