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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장소&문화

[문화 - 서동특집] 계란만두 ING

 

 

 

어릴 적에 학교 담 넘어 군것질을 해본 적이 있으세요?
여느 학교나 그 주위에는 인심 좋은,
혹은 까탈스러운 이모가 있는 분식집이 있었지요.
그런 곳들 중엔 문구점을 겸하면서 떡볶이, 오뎅을 파는 곳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던, 지금도 살고 있는 서동에는 더 특이한 분식집이 있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널찍하게 깔아놓고 그 위에 이리저리 엉킨 당면,
그리고 조금 살짝 익어가기 시작하면
탁 탁 쭈욱~ 계란 한 알을 터뜨려놓아 옷을 입혀서 만들어내는 1,000원짜리 음식.
매일 점심시간 혹은 해질 무렵엔 교복을 입은 채로 몰려와
이 부침개 비슷한 것을 먹으려는 학생들로 북적대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는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 고등학교 앞에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줌마 할머니들로만 가득할 것 같은 시장통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서동에는 서동고개 길을 따라 형성된 서동시장이 있습니다.
이 시장의 진면목은 고갯길을 따라 좁고 길게 늘어선 오르막길 상권에 있습니다.
고갯길의 정상 주위에는 중고등학교가 여럿 있었고
매일 정해진 시간대에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찾아
고갯길을 내려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시장에는 간식거리가 풍부했는데,
교복을 입기보다 더 어릴 때부터 엄마랑 시장에 오면 유독 맛보던 것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겁니다.
시장을 따라가면 꼭 맛난 거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
제게 뚜렷한 기억은 밀가루 반죽과 당면, 계란이라는 매우 간단한 재료지만
그 배합이 맛을 좌우할 것 같은 이 음식을
당시 500원에 맛볼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했고
처음 맛보던 그 날 엄마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이거? 계란만두.'

 

 

 

 


부침개처럼 생긴 모양인데
왜 만두라고 부르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동에만 있다는 이 음식의 자부심과 신비로움을
애써 벗겨내고 싶지는 않아서 더 궁금해 하지는 않지만,
서동시장의 계란만두는 십여 년 전부터 있었다 하니
아마도 오랫동안 시장통에서 장사를 해온 분에게 여쭤본다면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십여 년을 서동에서 살아왔음에도
제가 그 유래를 모르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어쩌면 곧 사라져
그 기억조차 잊혀지진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서동시장 안쪽의 고갯길 상권이 시작되는 입구에 제일 큰 계란만두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면 서너 군데의 계란만두집이 있었지요.

하지만.
이 동네를 벗어나고픈 마음이 다들 컸던 것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청소년들이 시장통에서 보이질 않았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손을 잡고 어디 멀리 갔나 봅니다.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서 출산율도 낮아진다던 이야기가 심심찮던 요 몇 년만에
교복으로 넘쳐나던 계란만두집들이 하나둘씩 없어졌습니다.

고갯길 앞마당의 가게부터 시작해서
정통 계란만두 전문점이라 가히 부를 수 있을 만한 가게들이
다 없어지거나 업종을 바꿨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 정통성을 인정해줄 만한 노점이 한 군데 남았지만
그마저도 쉬는 날이 많습니다.

다른 분식점에서 먹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 가게가 아니면 아무래도 백분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요즘도 주말에 집에 있을 때, 혹은 평일에라도 일찍 마쳐서 집 가는 길에
서동시장을 들렀다 집에 갈 때면 생각납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계란만두라든지 군것질을 하고
다시 고갯길을 넘어가던 시절이.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사복을 입고 대형 패스트푸드점의 자리를 가득 메운 청소년들의 모습만 보입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하여도 계란이 저가의 고단백 식품으로서 사랑받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워낙 많은 먹거리들이 즐비하니,
자극적이고 서구적인 맛에 길들여져 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비교적 싱거운 계란만두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좁은 평상에 끼어 앉아 계란만두를 먹는 것보다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기름진 햄버거와
콜라를 곁들이는 것이 더 폼나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동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거기서 어떻게 사냐고 하는 말이 많습니다.
서동에 사는 사람들도 자조 섞인 말을 많이 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 남아서 지키고 싶고 기억하고 싶어집니다.
다 떠나면 정말로 아무 것도 없게 되니까요.
우스갯소리겠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라도 삼고 싶을 계란만두의 레시피,
그리고 서동고개 시장통의 이야기가 없어진다면 어찌할까요.

제가 서동시장에서 기억하는 것을,
제가 여기서 지내온 세월만큼 더 흘러간 훗날에도 맛보고 듣고 싶습니다.

'이게 머꼬?'

'계란만두.'

 

 

 

/글: 기재성



* 이 기사는 금정구의 지원을 받은 "서동, 고개를 넘다" 책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