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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장소&문화

있어도 보이지 않는 시장에 대하여

글, 사진 : 박진명

motwjm@naver.com


 



도대체 이노무 동사무소는 어디에 붙어 있단 말인가. 예전에는 어디어디 시장이라거나 동사무소 근처라고 하면 꽤 친절한 안내였겠지만 요즘은 무슨 은행이니 프렌차이즈 다방이니 하는 곳이 표지판을 대체한지 오래다. 요즘 시장은 대로를 빗겨 어느 귀퉁이에 있기 마련이어서 그 동네 사람이 아닌 경우 찾기가 쉽지 않다. 건물을 뚫고서 보는 투시력이 있다면 모를까 시장은 영 뵈질 않는다.


유명한 관광지의 시장은 어떤가. 해변을 따라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광안리나 해운대의 시장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적지 않게 그 주변을 적잖이 오간 사람도 시장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광안리 근처의 시장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광안시장, 세흥시장, 광안새시장, 민락어패류시장, 광안어패류시장, 민락골목시장, 광안종합시장 정도가 나오고 해운대의 시장을 검색하면 해운대시장과 우일시장 정도가 있다. 대략 해변으로부터 1Km 내외의 가까운 시장만을 보자면 이렇다. 이렇게 시장이 있는데도 시장을 만난 적이 없으니 곡할 노릇이다.


민락 회센터에서 죽 늘어선 어패류를 이것저것 골라 담기는 해봤지만 그곳이 시장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비슷한 어패류들이 실내에 죽 늘어서 다라이에 담긴 모습을 보면 시장이라는 느낌보다는 패스트푸드 공장 같을 때가 있다. 비슷한 품목으로 그렇게 큰 장이 형성된다는 것은 그만큼 신선한 생물들을 싼 값에 구할 수 있다는 증표겠지만 한낱 회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그저 살아있는 뷔페다. 썰려 나온 것이 내가 찜한 게 맞는지 감정할 능력도 없는 하급 미각을 가졌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르고 2층에서 기다리면 회가 나오는 거대한 횟집.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시장보다 회센타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 해운대에 와본 기억을 되새기면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시장이 꽤 크게 있었다. 그 동안 스펀지며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서인지 최근에는 몇 년 동안 오가면서도 해운대해수욕장 인근에 시장이 있는지도 몰랐다. 찾아보니 관광객들에겐 꼼장어가 유명한 가게가 있는 곳 정도로만 알려진 모양인데 이 해운대시장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다. 점포도 100개가량 되고 잡화나 식육점 등 웬만한 것은 다 있다. 다만 시장정비사업을 진행해서 모두 똑같은 간판 디자인에 한 블록에 일렬로 죽 늘어서 있어 시장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상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소비자들의 편의나 위생을 이유로 시장을 정비했는데 오히려 정취는 옛날만 못하다. 시장은 요렇게도 저렇게도 돌아보고, 도는 순서나 어디서 꺾어 가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 맛인데 그런 맛이 없다.


나름 큰 시장이지만 두 시장은 각자의 이유로 시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 시골에서 온 놈이 깽판 부리냐 할지 모르겠지만 시장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파라솔이나 색색이 천막(일명 가빠)이다. 각 구역을 표시하기도 하고 그늘을 만들기도 하는 천막들이 모여 멀리서도 오늘 장이 섰구나 하고 눈으로 먼저 알 수 있어야 달려갈 맛도 난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열리는 5일장만 보다가 가끔 가건물이나 공동집하장 같은 곳에서 열리는 도시의 시장을 걷게 되면 어둑한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빈 공터에 가건물처럼 천장을 놓다보니 그리된 것 같은데 빛을 가리는 정도가 아니라 빛이 모자라다. 시장은 소란스럽고, 붐비고 해야 제 맛인데 수행자들이 모여 있는 동굴 같은 느낌이랄까.



해운대시장과 광안리의 어패류시장은 규모는 크지만 일렬로 상가가 죽 늘어선 형태라면 광안리 해수욕장 뒤편에는 작은 규모의 생활시장들이 여러 곳에 있다. 바닷가 뒤쪽으로 주택들이 많아서 그런 모양인데 가보면 알겠지만 그 시장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시장이 아니다. 규모도 그렇지만 외부인의 동선과 전혀 상관없이 일요일이면 미용실 몇 개, 통닭집 몇 개만 문을 열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과일과 채소만 팔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난 해운대나 광안리의 시장을 상상하면서 관광객들이 뻑 갈 만한 그런 시장을 떠올렸다. 그러나 광안리나 해운대에는 시장이 없다. 해변의 낭만을 충족시키고 바로 인근에서 아기자기한 시장도 거닐면서 요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혹 하신다면 포기하시라. 해변에 늘어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먹는 것이 더 어울리니 말이다. 그 동네를 알자고 온 것도 아니고, 그 동네를 걷자고 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해변의 모래 한 번 밟고 짠 바닷물에 몸 한 번 담구고 까데기 한 번 치고 가면 그만인 것을 무슨 놈의 시장이냐. 애초에 마음속에 시장이 없으니 있어도 시장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생활이다. 외부인이 와서 노닐다 가는 바닷가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이 자리 잡을 틈이 별로 없다. 가족의 밥상을 고민하는 어머니와 아이의 양육을 고민하는 부부 대신 홀로 좁은 방에 몸을 누인 몸뚱이들은 자기 동네 시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가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광안리며 해운대라고 해서 시장이 그 뭣이겠냔 말이다. 눈 뜨면 코 베어 가는 것이 아니라 눈 뜨고 시장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