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황
여행시기 : 5/10 ~ 5/17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조지 말로리는 말했다ㅡ“Because it is there"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고. 세상에. 그걸 왜 올라? 산은 그냥 멀리서 바라보는 존재 아니었나? 이름난 명산을 찾아 오르기는 커녕 동네 뒷산에 등산로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지낼 정도로 산과는 인연을 일절 쌓지않고 지내왔다. 그런 내가 순전히 트레킹 하나만을 위해서 네팔을 찾았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까닭은 ‘히말라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형용하기 힘든 ‘무언가’ 때문이 아닐까. 신들이 사는 땅, 히말라야. 그 곳을 올랐다.
다양한 트레킹 코스 중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오르는 길을 택했다. 통칭 ABC코스로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 벌써 우기에 접어들었기에 트레킹을 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지만(1) 설산을 보지 못한다거나 산행이 불가능한건 아니다. 포터와 가이드는 고용하지 않았다. 딱히 믿는 구석이 있는건 아니다. 난 산행 경험도 거의 없고 그렇다고 힘세고 오래가는 백만돌이인 것도 아니니까. 심지어 길치에 방향치이기까지 하다. 즐거운 트레킹이 한순간에 극기훈련 내지 생존게임이 될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내 배낭은 내가 메고 올라가고 싶었고, 산을 마주하는 순간엔 혼자이고 싶었다.
배낭의 짐을 전부 헤치고 다시 싸기 시작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일주일간 산을 타야하는만큼 짐무게는 단 100g이라도 줄이는게 좋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을 제외한 나머지 짐을 모두 빼냈다. 그렇게 빼낸 짐의 부피와 무게가 만만찮다. 필수품만 챙겨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만큼이나 여분의 짐을 지고 다닌셈이다.
장비를 점검하고 힘차게 산행의 첫 발을 내딛는다. 해발고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산세가 한국의 산세와 비슷하다. 산행 중간에 마주치는 네팔리들과는 물론, 세계 각국의 트레커들 사이에서도 인사는 “나마스떼”로 통한다. “헬로”를 주고받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따뜻함이 흐른다. 네팔리들의 마을을 지나치며 첫날의 코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헛간 처마 밑에서 잠깐 비를 피하는데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버팔로를 치던 예쁘장한 여자애가 우산을 흔들거리며 내게 손짓을 한다. 이 시대의 포카혼타스를 만났다는 기쁨에 비를 맞으며 달려갔지만 여자애가 던진 한 마디는 내 환상을 와장창 깨버렸다ㅡ“Give me a chocolate, give me money" 어흐흑, 이 세상에 순수는 다 죽었어.
겨우 등산 이틀째에 몸에 탈이 났다. 오후에 비가 내리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기 위해 무리하게 페이스를 높였던게 화근이었다. 그렇잖아도 ABC루트 최고의 난코스로 악명높은 구간이었던터라 숙소에 다다랐을 때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제 때 도착하긴 했지만 식사를 할 생각조차 못한채 방전된 몸을 이끌고 침대에 쓰러졌다. 활짝 열려있는 방문도 닫고싶고 물통에 물도 좀 채워넣고 싶지만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다. 그렇다고 내 대신 방문을 닫아주거나 물을 떠 줄 사람도 없으니 그냥 둘 수 밖에. 혼자일 때 아프니 괜히 서럽다.
해발고도가 4000미터에 가까워지자 산세와 풍경이 확연하게 바뀐다. 우거졌던 수풀들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마른 수풀과 바위, 들꽃이 채운다. 어느 사이엔가 운무가 밀려들어 사방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지워버리는 자욱한 운무 속에서 눈앞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간다. 여긴 어디? 현실과 꿈 사이를 걷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에 취하는 기분이다. 마침내 베이스캠프가 보이자 어쩐지 가슴이 짠하다. 이 곳에 오르기 위해 지난 며칠간 그렇게 (개)고생을 했던가. 캠프에 도착했지만 기대했던 설산은 운무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고산증 탓에 머리만 지끈지끈거렸다. 옷을 겹겹이 입고 따뜻한 보온물통을 꼭 안은 채 침낭 속으로 몸을 묻는다. 산 위에서의 밤은 춥다.
<롯지는 보통 이런 분위기. 허름하지만 몸을 누이면 의외로 아늑하다. 조용한 밤의 롯지에 혼자 누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어두운 조명 아래 책을 읽으면 절로 감상적인 맘이 든다.>
<사진에서 하늘처럼 보이는건 하늘이 아니라 짙은 운무로 인해 전방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든 모습. 안개 너머에 있는 모든 풍경을 가렸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구름이 걷혔을 때 본 ABC에서의 풍광은 분명히 멋있었다. 캠프를 360도로 둘러싼 설산의 자태는 캠프를 찾은 이들로 하여금 셔터질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 정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ABC를 나와 돌아오는 길에 정면으로 본 마차푸차레(2)의 모습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그 뾰쪽한 봉우리를 마주했을 땐 숨쉬는 법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내 앞에 펼쳐진 이 뷰만으로 지난 노고를 모두 잊고 산행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아, 카메라에 담긴 설산의 모습을 눈앞의 설산과 비교하면 어찌나 초라한지!! 걸음을 내딛고 멈춰선다. 산을 올려본다. 탄성을 내지르고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또 멈춰서고 산을 올려다보고. 산을 향해 걸어갈수록 ‘눈앞의 마차푸차레와 한걸음만큼이라도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어린아이처럼 들뜬다. 신이 사는 곳이 있다면 바로 저 봉우리겠지. 오를 수 없는 곳. 하지만 오르고 싶어 참을 수 없는 곳. 만년설이 품은 억겁의 세월 앞에 내가 서 있다.
*** 여담. 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음식이었다. 산장의 음식들은 예의상으로라도 맛있다고 할만한게 못됐고 하나같이 비쌌으며(3), 무엇보다 메뉴에 고!기!가 없었으니까. 베지터리안 식단을 일주일간 강제체험하고 피골이 상접한 채 하산하는 내 몰골은 과연 볼만했다. 하산길에 온천마을에 들러 온천욕을 하고 갈망했던 콜라를 한 캔 마셨을 땐 피 대신 코X콜라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4) 산행이 끝나자마자 짐승의 눈빛으로 쳐들어간 한식당에선 내 인생 최고의 닭도리탕을 맛봤다.
1) 계절풍인 몬순의 영향을 받는 6월~9월은 우기로 접어든다. 이 시기에는 궂은 날씨로 산행이 힘들뿐더러 최고의 볼거리인 설산이 운무에 가려지는 날이 많다. 항상 거머리와 함께하니 외로움이 덜하다는 것 정도가 장점.
2) 해발 6993m. 높지는 않지만(?) 네팔리들이 가장 신성시 여기는 산으로서, 정부에서도 등반을 불허하는 까닭에 히말라야 유일의 처녀봉으로 남아있다. 그냥 생긴것만 딱 봐도 저건 진짜 영산이다,싶다.
3) 산장에서 파는 음식들의 가격은 해발고도와 비례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음식의 질에 비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청구함. 그 높은 곳까지 물자를 인력으로 나르는 네팔리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비싼 가격은 어쩔 수 없다지만 양심적으로 음식 맛만큼은 좀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4) 훈련병 때 마신 코X콜라 맛을 떠올리자. 바로 그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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