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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리 생존중/[글로발로 걷다] 세계여행

프롤로그 - 여행을 왜 가느냐고?

글 : 김 황 



# "여행은 왜 가는거에요?"

여행계획을 주변에 알리고 난 이후부터 부쩍 자주 듣는 질문이다. 뭔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은 부록이다. 자주 듣는 질문인만큼 미리 모범답안을 준비했다가 그들의 감수성을 자극해주면 참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내겐 딱히 여행을 떠나는 이유랄게 없으니까. '자아 찾기' 따위의 청춘내음 물씬 풍기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평소에 여행을 즐겼던 것도 아니다. 여행에 대한 동경 정도는 갖고 있지만 딱히 남들보다 그 마음이 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집안의 배경이 따사로와서 맘껏 돌아다니며 놀 수 있는 처지인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던건 5년전, 수능을 치고 제주도로 자전거 여행을 갔을 때였다.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해방감에 취해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당연히 그 결심에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건 아니다. 그냥. 좋아서. 그게 전부였다. 그러면 지금까지 여행준비를 해오면서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찾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유’란 점점 아무래도 상관없는게 돼버렸다. 여행경비와 여행자료를 모으고 D-day까지 달력의 하루하루를 지워나가는 사이, 여행이 더 이상 뭔가 특별하고 남다른 것으로 느껴지지 않게됐다. 오히려 여행은 내게 있어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이 됐다. 낡은 츄리닝을 걸치는 것만큼이나 몸에 익은 느낌.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게 여행은 왜 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일까? 출국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처음엔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일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니만큼 조금은 더 호들갑을 떨어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오랫동안 별러왔던 일이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있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다. 떠남을 전제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 여행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됐다. 그러니 내게 여행을 ‘왜’ 가냐고 묻지 마시라.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에 가는 것일 뿐이니까. 어쩌면 이것도 관성이라고 부를만한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 물론 떠남에 있어 장애요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깝게는 가족의 반대도 있었는데, 아버지께 처음으로 여행얘기를 꺼냈다가 볼따구에 후천적 보조개가 생길 뻔하기도 했다. 주변 현실도 만만찮아서 당장 신문 한 부만 집어들면 "청년 실업 30만" 이라는 불길한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재수없는 기사라고 욕하면서 옆을 돌아보면 친구는 앉아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있고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오니 'XX자격증 취득', ‘OO기업 취업설명회' 따위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태평하게 여행 따위 할 시간은 없어”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현실 속에서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 당연히 초조하고 또 불안하지만 그런 불안함을 안고 떠나는거다.


여행을 위해서 내가 감수해야만 했던 것들도 있다.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서 남들보다 조금은 더 바쁘고 피곤한 학교생활이 이어졌다. 한 푼이라도 더 모으고자 아르바이트를 두세 개씩 뛰어야 했고 아르바이트와 학업이 겹치니 자연스레 학교생활에 제약이 생겼다. 틈틈이 하고싶은 것들을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욕구불만에 젖어있는 생활들의 연속. 그럼에도 여행경비는 여전히 부족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비자를 얻어 호주로 갔다. 낯선 땅에서 1년간 외국인노동자가 되어 원정앵벌이를 하고 한국에 돌아오니 통장잔고는 제법 든든해졌지만 친구들은 어느덧 졸업반이 됐다. 내년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들 정장이 어울리는 사회인이 돼있겠지.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하지만 나도 친구들이 부럽긴 마찬가지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니까.


# 내가 안고 있는 불안감, 내가 포기해야했던 것들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면 신음소리는 더 깊어지지만....에잇, 지금 와서 답답해하면 어쩌겠나. 그냥 한 번 '질러보는'거다. 응? 졸업이 2년이나 늦어졌다고? 아 몰라, 뒷일은 어떻게든 되겠지. 스펙 열심히 쌓고 빨리 취업해서 돈 마이 벌면 뭐하겠노, 소고기 사묵는 것밖에 더 하겠나. 이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그 후회가 두려워서 여행을 포기한다면 역시 후회할거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는게 낫지 않나? 지나간 일, 앞으로 오지 않은 일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지금에 충실할 것.


처음 결심은 충동적이었지만 이후의 준비는 신중했다고 자평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짧지 않은 준비기간을 거쳐 이제 첫 발을 내딛는다. '과정에도 의미가 있다'는 교과서적인 말까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노력해온 스스로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남은 일은 여행을 맘껏 즐기는 것 뿐. 나는 이제 히말라야의 산자락에서 대자연의 경이를 느낄 수 있게 됐고 바라나시 강에 서서 삶의 단편을 엿볼 수도 있게 됐다.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지구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터키의 기막힌 음식에 감탄할 수도 있다. 메시의 드리블을 눈앞에서 응원할 수 있으며, 남미의 미녀들과 함께 살사를 출 수도 있다. 내 두 발을 디딜 세상은 넓다.



< 예상 여행 루트 >


# “여행은 어땠어요?”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가장 자주 듣게 될 질문 중 하나가 아닐까싶다. 내가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는지는 모를 일이다. 여행은 열려있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일이 생길지, 내가 어떤 것들을 보고 느낄지 어떻게 섣불리 예상할 수 있겠는가. 단지 미련이 남는 선택은 안 한 셈이니 즐길 수 있는만큼 최대한 즐긴 다음 짜잔, 하고 건강하게 돌아오면 그게 바로 최고로 멋진 여행이 아닐까?


엄청나게 대단한 결과를 냈으면 하는게 아니다. 항상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바랄 정도로 염치없지도 않다. 하지만 ‘여행’이란 단어에 담겨있는 가능성과 에너지에 기대를 걸고있는 것도 사실이며, 지치고 힘든 순간들을 지혜롭게 이겨낼 현명함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크다.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인 여정이겠지만, 나를 위한 모든 것이 그 때, 그 곳에 마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것들로 가득찬 길 위에 서 있을 스스로에게 응원 한 마디. “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