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원하는 진짜 이야기’ <미열>이 나오기까지.
문) <미열> 첫 호가 발간되기까지 고열의 과정을 거치셨을 것 같은데요?
답) 구체적으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다만 잡지라는 형태를 너무 좋아하다보니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때 곧바로 <미열>이라는 지금의 형태를 생각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쌓으면서 사람만큼 재미난 세계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는 동안 직장을 다녔고 그만뒀고 사랑도 하고 이별도 했어요. 모든 것이 사막처럼 건조했어요.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어요. 어쩌면 제 인생에 가장 큰 반항이 아닐까 하는데요. 두 달 여행간다고 갔는데 거기서 한 달 더 연장해서 세 달 여행이 됐어요. 외로움과 고독과 싸우는 여행이었지만 매 순간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제 삶에 조금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미열> 봄호를 발간하게 되었어요.
◆ <미열>, 너는 누구냐?
문) <미열>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 제목에 대해 많이 물어보는데 딱 잘라 말하기는 좀 어렵네요. 개인마다 자신을 뜨겁게 하는 건 하나씩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거 아닐까요. 그 하나에 대해 우리의 삶이 흔들리고 안달나하게 되는 그 미완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미열은 그 온도에요.
문) 잡지를 만들 때에는 대개 어떤 원칙을 두잖아요? <미열>에도 그런 게 있는지요?
답) 어떤 조건들을 생각한 것이 있긴 해요. 우선 누구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아마추어들도 쓸 수 있다는 그런 거요. 그리고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잡지라는 것. 내용이든 형식이든요. 또, 내가 어디에서 살든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지역 등에 국한되지 않고 크게 보아 사람을 다루는 잡지라면 제가 어느 곳에 가든 <미열>을 만들 수 있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의 구독료만으로 만들어지는 잡지를 하려고 해요. 아까 독립적인 잡지를 이야기했었는데, 다른 자본에 얽히지 않고 독자의 구독료로만 만들 수 있다면 순수하게 독자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그게 제 개인의 이상이기도 하고요. 이런 조건들이 제가 <미열>을 만드는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문) 가격 문제도 미열을 힘들게 했겠지만, 잡지를 만들면서 다른 힘든 일도 많았을텐데요?
답) 아무래도 <미열> 발간비를 만드는 게 가장 힘들어요. 독립출판이나 1인 출판이 부산에 없으니 <미열>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요.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미열>을 자꾸 일반 대중지처럼 되길 원했어요. 또 발행비가 많이 든다고 하면, 그럼 웹진으로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이야기하면서 <미열>을 그 자체로 봐주지 않아요. 서울에서는 너무 많고 익숙하니 그냥 그 자체로 보거든요. 아무도 가격에 대해서나 웹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죠. 그런 일이 자꾸 생기다보니 첫 호에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어요.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3호까지 발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웃음)
개인적으로는 1인 출판이니 외로울 때도 많죠.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데 <미열>이 나오면 너무 좋기도 하고, 또 그 동안 편집하면서 느꼈던 고독이 터져 나와서 자꾸 베시시 놀게만 돼요. (웃음) 물론 새로 발간할 때마다 새로운 어려움이 생기겠죠. 그 지혜를 지금 모으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답니다. (웃음)
문) 어려움을 딛고 계속 발간될 <미열>의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요.
답) 가장 좋은 걸 만나기 전까지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싶어요. 사실 <미열> 자체가 저에게 실험이니까요. 또 언제까지 할지 모르지만 <미열>이 <미열>을 읽는 사람의 삶의 증인이 되면서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사람의 품에서 나와서 다시 품 속에 들어가며 손때 묻어가며 나도, 필자도 독자도 모두 즐겁게 <미열>의 발간을 기다리게 되는 잡지가 되길 바라요.
◆ <미열>의 편집장에게 묻다.
문) 잡지를 만들 때 자신만의 편집관이 있으신가요?
답) 첫째로는 글을 써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 그 글을 잘 살려주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렇게 서로 만나고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함께 <미열>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매 계절마다 새롭게 투입되는 필진도, 글을 읽는 독자도, 발행한 저도 만족할 수 있도록, 실수하지 않고 잡지가 발간되도록 하는 게 제 나름의 편집관이에요.
문) <미열>의 여는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단어 하나하나도 그냥 고른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감각 있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편집자가 아닌 ‘작가’로서의 꿈을 키운 적이 있나요?
답) <미열>을 발간할 때마다 새로운 필자인 것처럼 저도 매번 글을 써요. 스스로 만든 지면이지만 그 글을 쓸 때는 저 역시 필자라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써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가짐이요. 예전에는 꿈꿔본 적 있지만 지금은 이렇게 <미열>에 쓰면서 고통을 즐기는 게 좋아요. 혹시 모르죠. 60살에 새내기 시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 인터뷰를 마감하며,
문) <미열>의 발행인, 편집자말고, ‘윤은미’ 자신의 미래의 방향이 궁금해요. 실례가 아니라면 미래의 방향이나 꿈을 귀띔해 주세요?
답)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많이 느끼고 사랑하면서.
문)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청춘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해야하는 일과 고민하며 좌절하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답) 방황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이 방황했으면 좋겠어요. 겁부터 먹지 말구요. 그런데, 사실 저도 아직까지 방황중이에요.(웃음)
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소감이나, 바싹에 덕담 한 마디 마지막으로 부탁드려요!
답) “바싹 좋아요.” 사실 묘한 연대감도 있어요. 형태는 다르지만 함께 여기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바싹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미열>에 도움을 많이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덧붙여서 이렇게 직접 만나서 한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사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부끄럽네요. 그래도 기꺼이 <미열>과 저를 위해 시간 내준 바싹에게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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