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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가마골소극장에서 <미스 쥴리>를 만나다

중세적 질서 속에서 자아 찾기, ‘미스 쥴리

 

 

<출처 : 가마골소극장 홈페이지 http://www.kamagol.co.kr/>

 

부잣집 딸인 쥴리는 남편과의 파혼을 맞고 폐인처럼 되어서 집안의 하인들과 어울려 노는 기행을 벌인다. 하인들은 그녀를 미쳤다고 하면서도 자신들보다 지위가 높기에 복종하고는 있다. 그중 출세를 꿈꾸는 야심가인 하인 장과 쥴리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고, 사랑으로 유혹한 장의 실체를 간파하면서 쥴리는 목숨을 끊는다.

언뜻 보면 지극히 중세적 신파로 보이는 내용. 그러나 이 이야기는 복종과 상실감을 심리의 기반으로 둔 한 여인의 자아 회복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쥴리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남자로 크기를 바라는 어머니와 그렇지 않은 아버지 사이에서 이중성을 획득하며 자라났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남성성이 강하지는 않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던 모친의 우울증의 파급 영향으로 쥴리는 원치 않지만 남성성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가 이를 거부했을 때, 물론 아버지가 그녀에게 다시 치마를 입힌 것이긴 하지만, 어머니의 자살을 체험하게 된다. 이때부터 쥴리에게는 불복-상실로 이어지는 코드를 자아에 내재한 채로 살아간다.

자아의 자존감이 부족한 쥴리는 항상 복속 가능한 대상을 찾는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명령을 내려줄 존재를 추구했다. 그로 인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강박적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백작으로 대표되는 중세적 가부장 질서에 순응할 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백작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중세적 질서를 상징한다. 작품의 공간은 항상 감시를 당하고 있다. 사람들의 말과 시선을 두려워하는 장이 궁극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 바로 백작인 것이다. 쥴리는 이런 백작으로 이어지는 남성성으로부터 복속할 대상을 찾아간다.

그 첫째가 전남편이다. 역시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전남편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것은 인간은 평등하다였다. 이 한 마디로도 전남편은 쥴리가 바라는 명령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복종하려던 대상이 떠나자 쥴리는 방황한다. 그녀 안의 위계 질서가 뒤바뀌고, 그녀는 하인들과 놀아난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대상을 장으로 돌린다. 하강을 지향하는(하인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복종할 곳을 찾는) 쥴리는 상승을 지향하는(언젠가 백작을 떠나 부자가 될 것을 욕망하는) 장에게 복속하려고 한다. 하지만 장에게는 애정이 부재하고, 쥴리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한다.

쥴리는 그것마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나(그녀는 장이 부드러운 말명령해주기를 원하니까) 이후 장이 자신의 새를 죽이는 순간 적대적으로 돌변한다. 쥴리에게 새는 매우 소중한 대상이다. 새는 그녀를 둘러싼, 지배로 가득 찬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복속된 존재다. 쥴리가 균형감을 지닐 수 있었던 자아의 위로처가 장과 백작으로 대변대는 명령적 자아에게 살해당하는 순간, 그리하여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서 상실되는 순간, 그녀는 이 명령적 자아가 그녀의 복종적 자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복종적 자아는 이제 명령적 자아를 살해하려고 한다.

크리스틴은 부수적으로 등장하지만 사실은 비중이 대단히 강력하다. 첫곡에서부터 드러나는 그녀의 가치관은 모든 것은 제자리에라는 것이다. 장이 상승 지향이고 쥴리가 하강 지향이라면 크리스틴은 그들과는 다르게 안정과 섭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이며, 이는 중세적인 보수성인 종교성을 시사한다. 쥴리가 장을 살해하려는 순간 등장한 크리스틴. 쥴리는 곧바로 크리스틴에게 의지하려고 한다. 같은 여자임을 강조해 보지만, 그렇게 해서 동질성을 획득하고 약자로서의 위치를 부각하려 하지만 크리스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가 가장 먼저 들어가리라를 외치는 크리스틴의 말은 쥴리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지만, 이후 크리스틴이 그녀를 홀로 버려둠으로써 결국 쥴리는 자신의 원죄에 대한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던 종교적 구원의 가능성조차 상실하게 된다.

크리스틴은 장에게 백작의 이미지를 중첩시키면서 다시금 명령체계로 귀환을 시도한다. 칼을 주는 행위를 하는 것은 장이지만, 장에게 덮어씌운 백작의 이미지는 쥴리가 만든 것이다. 쥴리는 이 중세적 명령체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이 마지막 순간에, 장은 그 앞까지의 야망을 깡그리 버리고 백작의 명령에 고개를 숙여 버린다. 이제 쥴리는 장도, 백작도 모두 떨쳐버릴 수 있다. 죽음을 택하는 순간 그녀는 장을 경멸할 수 있다. “자살도 못하는 새끼.” 그녀의 죽음은 그렇게 해서 상징적인 죽음이 된다. 복종적 자아를 자기 손으로 끊어냄으로서 쥴리는 마침내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가마골소극장, 그리고 불모지 부산

 

가마골소극장이 폐관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산일보와 국제신문에 각각 기사도 떴다. 극단 운영상의 난관, 시민들의 관심 부재, 등 돌린 행정 등으로 인해 밀양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단다. 이후에는 기장에 직접 소극장을 만들어서 들어올 생각도 있다고. 뮤지컬 <미스 쥴리>는 그런 가마골소극장 폐관공연 작품 중 하나다. 총 네 편의 폐관공연작이 있는데, 이 작품은 세 번째. 마지막 작품은 그 유명한 <오구>.

폐관 공연이 있는 가마골소극장은 연제구에 있다. 중앙동에서 시작해서 여러 곳을 거처하다가 연제구로 옮겨온 것은 2009. 4년 만에 떠나는 가마골 소극장 공간은 내가 지금껏 다녀본 부산의 소극장들을 통틀어 가장 깨끗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이었다. 신설극장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이었다.

실내에는 지금까지 가마골에서 상연되었던 작품과 이루어진 행사들이 벽보로 붙어 있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처음 방문한 곳이건만 묘한 아련함이 느껴진다. 안타까운 이별을 준비하는 이의 회고가 그를 지켜보는 이에게 가져다주는 어떤 감정과 같은 것이리라. 한쪽 서가에는 각종 출간물들이 판매용으로 비치되어 있다. 상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제각각 시선을 어딘가로든 두고 있다.

<미스 쥴리>의 공연 시작 전. 극단의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왔다. <미스 쥴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스웨덴에서는 발레로든, 연극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전국 각지에서 하루에 한 번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작품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뮤지컬 형태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한국에서는 이 가마골소극장에서 처음으로 뮤지컬 형식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 속에 가마골에 대한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공연은 몰입도가 높았다. 비록 다소 난해하고 파국적인 전개가 불편할지언정, 이야기가 주는 속도감과 전형적인 사건의 상승과 하강 구도와 템포 덕에 졸리거나 집중이 흐트러지지는 일은 없었다. 안정적이고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뮤지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노래. 노래들은 팀 버튼의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보다 좀 더 기괴하고 음습하다. 보컬 음성의 키높이와 미묘하게 불일치하는 음악이 작품 내내 신경을 자극하면서 불안정한 심리를 고조시켰다. 배우들의 노래 성량을 받아내지 못하고 버즈를 내는 스피커가 아쉽지만, 폐관 공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술적인 문제는 고려사항이 되지 못한다. 위에서 작품 해설을 길게 다룬 건 그만큼 좋은 작품이 보다 더 의미 있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욕심에서였다.

 

 

국제신문의 기사(2012. 10. 17일자)에 따르면 가마골 소극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임차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2년간 극장 임대료를 지원받아왔고, 앞으로도 2년 간 추가 지원이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 있는 가마골소극장마저도 떠난다니.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이어서 부산 연극의 산실로 불리는 가마골이다. 땅을 치며 아쉬워해도 부족할 판국이다. 또 같은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광복동의 실천무대’, 사직동의 미리내소극장도 올해 운영을 포기했다고 한다.

부산에는 소극장이 의외로 많다. ‘이런 곳에 소극장이?’ 싶은 곳에 문득문득 알알이 박혀 있다. 부산이 문화의 불모지인 양 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가 있는 남구에만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공간소극장, 초콜릿팩토리, 윤형빈소극장, 용천지랄 등등. 소극장들마다 사실 운영 사정이 좋은 곳이 없다.

부산이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서울에 가면 다양한 공연이나 문화행사가 즐비한데 부산에는 그것이 부재해서 어렵다고들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지역 문화가 자생력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극장들은 이를테면 이제 막 움트는 싹이다. 싹이 자라려면 물을 주고 햇볕을 받게 해줘야 할 것이 아닌가. 부산에 문화공연이 부족하다고? 싹을 키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나무를 바라서야 될 일인가. 잘 나가는 것, 비싼 것, 있어보이는 것에만 눈을 두면 판 전체는 서서히 죽어간다. 보기 좋다고 큰 나무를 가져다 심어서 그 나무가 토양의 양분을 다 빨아먹어 버리면 결국에는 다른 싹도 자랄 수가 없고 그 큰 나무조차 잃게 되는 법이다.

가마골소극장 폐관 소식은 비극적 현실 그 자체이자 더 나아가서는 그에 대한 상징이 된다. 우리가 관심을 온전히 두지 못하는 한 이만큼 성장한 역사마저도 무너질 수 있다는 상징 말이다. <미스 쥴리>가 가마골소극장의 폐관공연 작품이라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억압적인 현실에서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는 쥴리의 마지막 가는 장엄한 모습이란.

마지막 폐관공연인 연희단 거리패의 <오구>1220일부터 16일까지 상연된다. 가마골소극장에 마지막 힘을 실어주고 싶은 사람, 가마골소극장을 추억하는 사람, 한국 연극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이 기회다. <오구> 첫 공연은 벌써 매진되었다 하니 서두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