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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가 있는 마을놀이터

남산동, 꽃님 어린이공원 “영화가 있는 마을놀이터”

(상영작: “소중한 날의 꿈” 애니메이션)

동일한 활동을 하더라도 무엇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달라지는 걸 경험한 적이 있나요? 예를 들면 등산은 싫어하지만 날씨 좋은 날, 맛있는 요리를 싸들고 산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 산 정상에서 준비한 것들을 펼쳐놓고 경치를 구경하며 식사를 하는 겁니다. 한번 경험해 보세요. 아주 그냥 “신선이 따로 없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겁니다.

요즘 서울의 어떤 영화관은 식사를 하며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서두에서 말한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사업적으로 잘 승화시킨 것 같습니다. 대신 이용하는데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죠.

남산동에 가면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토탈 엔터테인먼트가 가능한 공간이 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곳은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저렴한 음식부터 비싼 음식까지, 냄새 상관없이 거의 모든 음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음식은 본인이 직접 준비해 오셔야 한다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습니다. 또 놀라지 마세요. 상영관 내에는 놀이시설이 있어요. 뛰어 놀고 소리 질러도 괜찮습니다. CGV 골드 클래스의 서비스가 부럽지 않은 이곳은 바로 금정구 남산동에 있는 꽃님 어린이공원입니다. 지난 9월 어느 토요일 저녁 “소중한 날의 꿈” 애니메이션을 상영하였던 곳이지요. (“영화가 있는 마을놀이터”는 금샘마을공동체가 2008년부터 꽃님어린이공원에서 꾸준히 해오고 있는 마을행사 입니다.)

이곳은 공원이라고 불리지만 모양새는 놀이터와 더 닮았습니다. 흔한 놀이터의 풍경처럼 애니메이션 상영 전까지도 아이들은 스크린 앞을 뛰어 다니고, 장난치고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어떤 아이는 앞의 스크린을 가로질러 가려다가 양쪽으로 넘어오지 않게 쳐놓은 밧줄에 배가 걸려 빨래처럼 널리기도 했는데, 해가 없는 시간이라 줄이 잘 안보였던가 봅니다. 많이 다치지 않았는지 걱정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뛰어 노는 모습이 참 건강하게 보이더군요. “그래, 아이들은 이렇게 뛰놀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와중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부터 나오고 있던 “금샘마을 어린이뉴스"가 끝나고 본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 애니메이션은 7~8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 국내 애니메이션입니다. 남녀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을 다루고 있지요. 그래서 극 중에 교실, 운동장, 상점 앞 등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때마다 음향효과로 입혀진 사람들의 인위적인 시끌벅적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자주 흘러나왔죠. 그 소리는 순전히 놀기 위해 모인 상당 수의 어린친구들이 시끄럽게 뛰어 돌아다니는 소리와 오버랩 되었습니다.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영화 감상에 거슬릴 법도 한데, 스크린의 영상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져 마치 내가 그 스크린 속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흡사 4D입체 영화관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요?

공원에는 엄마, 아빠, 아이들, 할머니까지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다 모여 앉았습니다. 주민 모두가 편하게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미리 깔려있던 돗자리 때문입니다. 영화 홍보지에 “돗자리 가지고 나오세요~”라는 문구가 있지만 깜빡하고 가지고 나오지 않았거나, 집에 돗자리가 없는 분들을 위한 금샘마을공동체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바람은 시원하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엄마는 잠자는 아이를 안고 영화를 보고 있는 풍경을 보니 사뭇 몽환적인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저는 출발하기 전 분식점에서 떡볶이와 김밥, 튀김을 사왔는데 날씨도 좋고, 영화도 재밌고, 아이들은 뛰어놀고, 두 다리는 쫙 펴고 앉아 떡볶이를 집어먹으니 “신선이 따로 없네”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영화는 막을 내렸고, 잠에서 깨어난 아저씨, 무릎을 톡톡치며 일어나는 할머니, 여전히 놀이터에 남아있으려는 아이들을 보니 이제서야 현실로 돌아온 듯 합니다. 스크린 시설이 서서히 정리가 되고, 내일 아침이면 다시 일상적인 놀이터의 모습으로 돌아갈 이곳을 생각하니 약간 서운한 느낌도 듭니다. 문득 어릴 적 삶의 많은 부분이 환상적일 것 같았던 때가 떠오르더군요. 나이를 먹으면서 환상이란 현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허상이라는 점을 점점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날 꽃님 어린이공원에서 보았던 풍경은 현실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환상적일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할머니와 놀이터, 돗자리와 집 앞, 영화와 떡볶이 등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이 있는 이곳은 “영화가 있는 마을놀이터”, 금정구 남산동의 꽃님 어린이공원입니다.

출처: 금샘지역아동센터 다음 카페 (http://cafe406.daum.net/)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생활문화공동체'사업에서 금샘마을 공동체가 만든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