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음을 움직이는 말들
눈을 떴을 때, 내 곁에서 나를 지키고 있던 것은 리브였다. 침대 맡에 머리를 두고 그는 잠이 들었다. 언제 또 화장은 했던 건지, 분홍색 립스틱은 흰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뭉개졌다. 드르렁 드르렁 코까지 곯고 있었는데, 버스 안에서 화들짝 놀라던 중년 여자와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 훗.
- 음, 음. 일어났어, 언니? 아함.
크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는 그의 모습은 남편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컥컥 잠긴 목을 가다듬는데, 보통 남자들처럼 걸고 굵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어머머, 나도 모르게 그만……. 호홋.
스스로 생각해도 머쓱했는지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었지만, 그건 여전히 실패한 목소리였다.
- 어디 갔니?
두리번거리며 나는 물었다.
- 아니, 아무데도 안 갔는데? 나 그냥 여기 계속 있었어. 내가 언니 업고 오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다고. 뼈다귀 밖에 없는 사람이 도대체 왜 그렇게 무거운 거야? 언니 똥배 장난 아니지? 그 가운데 타이어 같은 거 두르고 있는 거 아니니? 아니면 변비 있니? 똥 덩어리가 뱃속에서 푹푹 썩고 있는 거 아니야?
리브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두 손을 움직여가며 썩고 있는 덩어리를 자기 앞에 그렸다. 정말 냄새라도 나는 것처럼 코끝을 씰룩이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물론 그와 나의 언어도 여지없이 틀어졌고.
- 그 사람 말이야. 어디 갔어?
- 아, 형부? 글쎄? 언니 병원에 업어다가 놓으니까 안 보이던데? 형부도 다쳤나? 언니 업으려고 하다가 넘어져서 그 통로에 있는 의자에 부딪혔거든.
기억은 나지 않았다. 새빨간 것을 들여다보다가 몸 안에서 무언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은 것이 전부였다. 나를 업으려고 발버둥 쳤을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다가 덜커덕 의족이 빠져나와 좁은 통로 위로 던져졌을 그의 모습도. 어느 구석에서 자괴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를 자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또 다른 모습의 불안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 형부 불쌍하더라. 언니 업으려고 어찌나 애를 쓰던지, 근데 잘 안 되더라. 하이힐 신은 내 두 다리보다 못하다는 게……. 그게 참 씁쓸하고 그렇더라. 우리 형부 곁에는 언니처럼 비실비실한 사람이 있을 게 아니라, 나처럼 건강하고 섹시한 사람이 있어야하는 건데. 아유, 사람의 인연이란 참.
눈물이라도 찔끔거리는지 그는 커다란 손을 들어 눈가를 찍어냈다.
- 언니, 언니. 근데 여기 일하는 의사가 되게 귀엽다? 형부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아, 괜찮아. 호홋. 언니 업고 딱 들어서는데 내 든든한 힘에 완전 홀딱 빠져버린 것 같더라니깐? 하긴 내가 좀 묘기 같기는 했어. 십이센티 하이힐 신고 언니를 들춰 업었으니까. 언니를 받아들면서 내 섹시한 가슴을 훔쳐보는데, 또 빠졌구나. 내 매력에 또 어느 남자가 퐁당 빠져버렸어. 그랬다니깐? 호홋. 나도 뭐, 좀 끌리기는 했지만. 호홋.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는 거잖아? 정말 어디서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니우?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말이야. 호홋.
금방 눈물을 찍어내던 그의 눈가는 이내 눈웃음으로 구겨졌다.
- 그래서 내가 화장도 못 지우고 잤잖아? 언니 침대에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가 당장 화장고치고 그랬다는 거 아니우? 호홋. 아, 참! 이거 다 지워진 거 아니야, 이거? 언니 깨어난 거 알면 금방 또 올 텐데?
리브는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져 거울을 꺼냈다. 얼굴을 비추기에 너무 작은지, 손 안에 거울은 그의 커다란 얼굴 여기저기를 움직여 다녔다.
- 이름이, 뭐니?
- 응?
손거울을 든 채 그는 나를 바라봤다. 그의 손에는 분홍색 립스틱이 들려 있었다.
- 누구? 그 의사? 모르지 나는.
입술에 립스틱을 덧바르며, 그는 웅웅 거렸다. 그와 나의 언어는 또 다시 보기 좋게 어긋났다.
- 아니, 너 말이야, 네 이름.
- 이 언니가 정말 몇 번을 말해? 언니 정말 공부 너무 안 했구나? 머리가 그렇게 나쁘면 공부고 뭐고 세상 사는데 지장 있다? 리브라니까, 리브 킴? 내가 몇 번을 말했니?
그는 내가 모르는 여배우처럼 나름대로 요염한 어깻짓을 보여주었다.
- 그런 이름 말고 진짜 이름말이야. 진짜 이름. 집은 어디니? 형제나 가족은?
그러자 그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눈을 흘겼다.
- 어머머, 우리 언니, 피를 토하시더니 그 새 동사무소 직원 신이라도 강림하셨나? 웬 갑자기 호구조사를 하고 그러셔? 호호호.
그는 수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 너, 우리 남편이 좋으니?
빙판 위를 걷듯 내 물음은 조심스러운데, 그는 깔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 형부? 아유, 우리 형부! 귀엽지! 애써 남자다운 척, 센 척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데? 그리고 그 눈이 얼마나 매력적이우? 요즘은 박물관에나 가야 찾을 수 있는, 남자다운 그 순수함! 형부 눈에 그런 게 있어, 언니! 언니는 그런 거 볼 줄도 모르지? 뭐 남자를 만나봤어야 그런 게 있나, 뭐가 다른가 알지. 머리도 나빠, 남자한테 매력도 없어, 게다가 죽을병까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쯧쯧쯧. 내 팔자도 더러운 걸로 치면 탑 쓰리에 들 텐데, 언니 팔자도 정말……. 쯧쯧쯧.
이번에는 팔짱을 끼고 앉아 끌끌 혀를 찼다.
- 그럼, 네가 지켜줄래?
샛눈을 뜨며 나를 흘겨보던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 내 곁에 있었던 것처럼, 네가 우리 오빠 곁에서……. 내 대신 그렇게.
자꾸 말이 끊겼다. 준비해야할 미래인데, 그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 아니, 무슨 사귀라던가, 연애를 하라던가,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없어도 힘들지 않도록 그렇게 많이 웃게 해줄래? 나나 오빠나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웃어도 괜찮은데, 어쩌면 그게 제일 큰 위로일지도 모르는데 그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었거든. 근데 너라면, 너라면 웃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리 힘들어도 너라면. 언제든, 어디서든 웃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문득 그가 이야기한 ‘인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말. 무엇으로 설명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는 갑작스런 시간의 말. 과연 그런 걸까. 그래서 우리들은 이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일까. 내가 비운 자리에서 리브는 남편을 지키고, 꿈속에서 보았던 아이는 남편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를 지키고. 까맣게 몰랐던 미래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머릿속에 그려졌다. 먼데를 더듬듯 희미하기만 하던 것들이 눈앞에 바짝 다가왔다. 고요하고 아득한 풍경 속에서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작은 산짐승들처럼 그건 불쑥 나타났다.
어느새 내 입가에 웃음이 그려졌다. 이번에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지, 듣고도 믿지 못하겠는지 그는 입술을 반만 그리다가 만 채 얼어붙어 있었다. 괜찮겠구나, 그렇게 어긋나더라도. 고마운 거구나,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말들.
어느 어둠 속을 헤매다가 온 건지, 어스름 새벽이 밝아올 즈음에 돌아온 남편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비닐 봉투 안에 따스하게 온기가 도는 죽 그릇을 내밀면서도 남편은 꾸지람을 듣는 아이처럼 잔뜩 고개를 숙였다. 리브가 이야기했던 의사가 들어와서 남편을 데리고 나갔을 때, 나는 그가 남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병실에 들어선 남편은 내게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내가 하얗게 질려 자신에게 매달리기를 바라고 있는 눈치였지만, 나는 열심히 남편이 주고 간 죽 그릇을 비웠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처럼 스티로폼 그릇 바닥을 싹싹 핥았다. 침대를 내려서며 조금 현기증이 났지만, 나는 리브의 손길을 밀치며 부러 남편에게 힘주어 매달렸다.
- 우리 오빠 팔뚝 봐라? 멋지지?
제 주머니 안을 자랑하는 애들처럼 그렇게 말했을 때, 남편은 내 손을 뿌리치고 나가버렸다. 물론 나는 섭섭해 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내 안에서 어떤 확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평범하지만 그 어떤 희망보다 더 밝고 환한 위안.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어쩌면 이제는 아무도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그리운 말은 ‘수다’였다. 그것도 시영이 엄마처럼, 창주 엄마처럼 별 것 아닌 일상들을 토해놓으며 깔깔거리는 그런 수다. 말을 하는 일에 두려움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닌데, 말을 그리워할 정도로 말수가 적어진 것은 아마도 버려졌다는 충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배우지 못한 건 겨우 ‘엄마’라는 그 한 마디 말 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든 말들이 자꾸 줄어들었다. 함께 보육원에 있던 몇몇 아이들은 주일마다 한 번 씩 봉사활동을 오는 사람들과 자꾸 이야기를 나누며 오히려 내향적인 성격들이 바뀌었는데, 나는 ‘엄마’라는 말을 잃고 내 안에 언어를 모두 잃은 듯이 오래도록 입을 열지 않았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건축사사무소에서 경리로 일을 하는 중에도, 나는 지극히 사무적인 말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일 년도 되지 않아, 여자 아이가 나이답지 않게 음침하다,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쫓겨났을 때에도 나는 내 해고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동정을 사는 핑계를 대기 위해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같이 살자.’라는 멋없는 이야기로 사람들이 말하는 프러포즈를 했을 때에도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처음부터 내게 없었던 아빠 같았고, 또한 오빠 같기도 했던 남편이 좋았다. 하지만, 그 흔한 행복이나 꿈같은 것을 떠올리며 결혼 생활의 희망이나 소망을 나열하는 일도 나는 할 줄 몰랐다.
언젠가부터 나는 내 언어를 믿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언어도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외로움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 밤마다 나를 깨우는 공포를 지워낼 수 없다는 사실. 그런 현실 앞에, 말에 대한 내 신뢰는 조금씩 무너졌다. 아무 곳에도 가 닿지 못하는 말,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기만 하는 말. 나는 되돌아오지 않고 사라져버린 말 앞에 어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조금씩 내 안에서 퇴화되는 언어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것들을 되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맨 처음 내게 말을 가르쳤을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면 모든 것은 해결 될 텐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자전거타기처럼 ‘엄마’라는 말을 따라 금새 내 안에서 말끔히 되살아나게 될 텐데. 그래서 나는 자주 말을 잃어버린 공포에 시달릴 때마다 ‘엄마’하고 중얼거렸다. ‘엄마, 엄마.’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서, 겨우 그 한마디를 반복해 중얼거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그렇게 위태롭게 실어(失語)의 위기를 비껴갔다. 그리고 그것은 내 안에서 말하지 못하는 그리움이 되어갔다.
남편은 어땠을까. 남편도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았을까. 그가 지나온 시간의 무게가 얼마큼이든, ‘그리움’이라는 말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을까. 문득 그가 시인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건져내는 보석 같은 언어. 오래도록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고픈 내 안의 언어.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구석에서 그렇게 쓰고 또 썼던 걸까. 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가족’이라는 말을 잃고 모든 말을 잃게 될까 두렵고 안타까워서.
- 언니, 버스가 여기서 안 선다는데? 버스 서는 데가 도로 공사 때문에 저 위로 옮겨졌대. 한 이십 분은 걸어가야 한다는데? 택시 탈까?
하늘이 파랗게 밝아왔는데도 도로 위는 적막했다. 여전히 하이힐을 신고 있는데도 그의 걸음걸이는 신기하게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게 ‘엄마’는, ‘가족’은 또 어떤 말일까. 나와 남편은 가족에게 버려졌는데, 그는 스스로의 생각과 결정을 믿음으로써 자신의 가족을 버렸다. 그렇다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을 그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말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어디에다 쓰고, 또 어떤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을까.
- 택시 부를까? 일일사에 전화해서 한번 물어보지 뭐. 휴대폰, 형부, 휴대폰 없어요?
그러나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형부라는 말이 싫었는지, 없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 싫었는지, 어쩌면 둘 다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돌아서지도 않았다.
- 괜찮아, 천천히 걸어가지 뭐.
- 우리 언니, 또 무리하다가 피 토하고 쓰러지는 거 아니야? 그러면 나 더 이상은 옷 못 빌려 준다? 피 묻으면 지워지지도 않는단 말이야, 언니.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옷인데.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우리 아기들 내가 얼마나 아끼는 것들인데?
리브는 정말 가족이라도 껴 안 듯 곁에 놓은 분홍색 캐리어를 꼭 껴안았다.
- 그래, 알았어. 안 토 할게. 이제 안 토해.
- 그래, 언니. 토하지 마라. 울컥 밀고 올라오면 꿀꺽 삼켜. 그게 다 언니를 살게 하는 영양분 덩어리 아니우? 그러니까 오바이트 쏠리는 거 입 꽉 다물고 꿀꺽 삼키듯이 입 꽉 틀어막고 꿀꺽! 그게 처음에만 힘들지, 한번 그렇게 버릇 들이고 나면 찝찌름한 그 맛도 괜찮다? 나, 가게 일할 때도 그랬거든. 너무 많이 먹으면 영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술은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그렇지만 안주는 넘어오는 것도 꿀꺽 삼키고. 그게 얼마나 비싼 것들인데 그걸 다 토해? 미친년들이지 그게. 그러니까, 언니도 꿀꺽! 입 꽉 틀어막고 꿀꺽!
내 앞에 쭈그려 앉아 그는 꿀꺽꿀꺽 무언가를 삼키는 흉내를 냈다. 볼을 한껏 부풀린 그 모습은 커다란 개구리 같았다. 그 모습이 하도 우스워 웃음이 새는데 남편은 리브를 밀치고는 내 앞에 등을 내밀었다.
- 업혀.
- 아냐, 괜찮아, 오빠. 걸을 수 있어. 그냥 걸어갈게.
또 다시 그를 곤혹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어딘가 질질 새고 있는 내 몸은 바람에라도 날리듯 휘청거렸다.
- 형부, 내가 할게요. 아까도 내가 업었으니까 이번에도 내가…….
- 놔! 됐어! 내가 해, 내가 한다고!
남편의 목소리는 빈 도로를 쩌렁쩌렁 울렸다.
- 자, 빨리 업혀.
그의 등이 하는 말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건 남편과 나만 아는 우리 둘만의 언어였다.
- 형부, 그럼 둘 다 위험해서 안 되…….
리브는 걱정스런 얼굴로 다시 그를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내가 리브의 손길을 막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 오빠, 나 며칠 사이에 살 많이 쪘는데 괜찮아? 여행 다니며 이것저것 좋은 것도 많이 먹어서 빵빵해졌는데, 정말 괜찮겠어?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까짓 것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다짐을 하는지, 그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제법 단단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몸의 무게를 남편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기우뚱 한 쪽으로 기우는 듯싶었지만, 이내 남편의 몸은 내 밑에서 균형을 맞추었다.
- 끙!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는데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안간힘이 느껴져 아슬아슬했다. 술기운이라도 빌린 건지 그의 목덜미에서 시큼한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그러나 그는 조금씩 몸을 일으켜 안정되게 나를 받치고는 리브가 가리킨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를 일으킨 것이 무슨 힘이었는지, 그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어떤 절박함인지, 남편의 걸음걸이는 이번에는 미끄러지지 않았다.
- 우와, 역시 우리 오빠네. 역시 우리 오빠야, 호홋.
나는 부러 큰소리로 말하며 남편에게 몸을 맡겼다. 여전히 내 안은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이었지만, 내 편안함을 느끼라고 남편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 언니, 언니, 같이 가!
리브는 도로 위에 남겨진 가방들을 끌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남편의 걸음걸이가 빠를 리도 없는데 그의 모습은 자꾸만 멀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걷고 있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말들이 무엇이든, 우리가 잃어버린 말들이 무엇이든, 우리는 지금 같은 길 위에 있다. 같은 곳을 향해,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기억났다, 이런 발걸음들. 맞다, 사람들은 이것을 동행(同行)이라고 부른다. <16화에 계속>
'+이정도면호상 > [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7화> 커튼 콜 (1) | 2012.10.30 |
---|---|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6화> 아리아 (0) | 2012.10.16 |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4화> 빨간 웃음 (0) | 2012.09.17 |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3화> 그녀의 이름은 안미옥 (0) | 2012.09.06 |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2화> 고래의 말 (0) | 201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