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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호상/[ 빠쓰정류장 ] 장편 연재 소설

長篇小說 '빠쓰 정류장' - <제14화> 빨간 웃음

 

 

 

 

 

 

13.

빨간 웃음

 

 

 

 

 

남편은 리브와 실랑이 중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남편과, 남편에게 말을 시키려는 리브. 그는 모를 것이다. 침묵이 남편에게 얼마나 많은 말인지, 생각의 말을 하고 살지 않았던 리브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형부, 형부, 여기 손수건 있다니까요?

남자 화장실 앞에 서서 리브는 남편을 기다렸다. 언제든 들어가도 괜찮을 화장실 앞에서 그는 기웃거리며 남편을 기다리고 섰다.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만큼의 법석 뿐일 텐데. 오히려 남자들은 피식 웃어버리고 마는 쪽일 텐데. 리브는 금지된 곳 앞에 선 사람처럼 그저 안쪽을 기웃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남편이 나오자 들고 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물론 남편은 쳐다보지도 않고 매표창구로 다가갔다. 서로가 나눈 약속이었다. 그와 함께 하는 대신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을 강요하지 않기로. 남편이 침묵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고마웠다.

- 형부, 형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내가 우리 형부를 위해 간식 정도는 크게 한 턱 쏠 수 있는데. 여기서 강원도까지 가려면 꽤 멀다면서요? 그 빠쓰인지, 빤쓰인지 강원도 어디라면서요? 그러니까, 내가 한 턱 쏠게, ?

남편은 홍 선생님에게 들었다고 했다. 경찰이 맨 처음 나를 발견했을 때, 나는 영동선을 타는 버스 승강장 앞에서 울고 있었다고.

- 우리 멋진 형부를 위해서라면 내가 아무리 비싼 거라도 쏠 수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말 해봐요, ? 에이,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어머머, 우리 형부 얼굴 빨개지네? 호호호, 아유, 귀여워! 호호호.

커다란 몸을 흔들며 리브는 졸졸졸 남편을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높은 하이힐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남자인 리브를 손가락질 하며 쳐다봤고, 끌끌 혀를 차기도 했다. 남편도 다 듣고 있을 것이다. 지금쯤 침묵의 언어로 고성을 지르며 리브에게 소리치고 있을 것이다.

- 형부, 형부, 그럼 우리 오뎅이라도 하나씩 먹을까요? 부산에 왔는데 오뎅 정도는 먹어야하는 거잖아요? 형부도 오뎅 좋아하죠? 젊었을 때 언니랑 데이트 할 때 빼고는 먹어보지 않았죠? 그러니까 우리 한번 먹어봐요, ? 언니 빼고 형부랑 나랑 둘이서 나란히 서서. 호호호!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리브의 웃음소리는 이쪽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원래 크기도 했지만, 남편을 만난 이후로 그의 목소리는 허공에 붕 떠 있었다.

- 이 원피스 어때요? 저한테 너무 잘 어울리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인데, 우리 형부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내가 특별히 꺼내 입은 건데, 호호호!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리브는 끊임없이 커다란 목소리로 말을 떠벌리고 있었고. 서로에게는 들을 수 없고, 또한 말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언어들.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말해 주더라도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을 말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 그걸 무어라고 불러야하는지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는 또 다시 같은 버스를 탈 것이다.

 

아이는 남편과 리브가 터미널 대합실의 가장 먼 구석으로 사라졌을 때, 다시 내 곁에 와 앉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새 낮은 대합실 의자에 앉아서도 아이의 두 다리는 시멘트 바닥에서 둥실 떴다. 그만큼 아이는 작아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확신했다. 마치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듯 아이는 작아지고 있었다. 내가 그려준 분홍색 원피스는 점점 이불처럼 커져 아이를 덮고 있었고, 신발은 맞지 않아 뒤꿈치가 벗어져 덜렁거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처럼 나도 환상통에 시달리는 것이 아닐까. 사라진 다리가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느끼던 남편의 환각. 그래서 나는 내 삶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를 꿈속에서, 혹은 이렇게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 말해봐, 진짜 이름이 뭐니?

이제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 이름 같은 거 없어요.

지난 번 버스 안에서처럼 호홋 웃어버릴 줄 알았는데, 아이의 대답은 제법 또렷했다. 이름이 없다고 하는 그 말은 지붕이 낮은 집에 살던, 대성이라는 아이의 대답과 너무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순수한 아이의 눈빛은 그 때 그 아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 그럼, 너는 누구니? 누구길래 내 곁에 이렇게 나타나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는 거니?

그러자 아이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반짝 올려보았다.

- 이끄는 게 뭐에요?

- 네가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잖니?

버스 안에서 창밖을 가리키며 고래 이야기를 하던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가 가리키던 허공 속에서 나는 분명 고래를 보았고,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 내가요? 아닌데? 난 아줌마 모르는데? 여기에 온 건 아줌마지, 내가 아니에요. 아줌마가 원해서 왔지, 내가 원해서 아줌마가 온 건 아니라고요. , 그건 핑계에요, 핑계! 메롱!

아이는 입을 삐죽이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 내가, 내가 죽으면……. 내 영혼을 거두어 가려고 나를 따라다니는 게 아니고?

그건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생각의 저 깊은 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말이었다.

- 영혼이요? 그게 뭔데요?

갸웃거리며 묻고 있는 아이의 말에, 문득 말문이 막혀버렸다.

- 영혼은……. 영혼은 말이야.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나는 것. 모든 사람들을 살게 하는 사람안의 그것.

사전을 뒤적거리듯 내 대답은 어색했다.

- 죽는 게 뭐예요?

아이의 물음은 또 다시 이어졌다.

- 그건 사라지는 거지. 여기에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

목이 멨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들을 눈으로 보며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라지다니, 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다니.

- 어디로요? 어디로 사라지는데요?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손가락으로 찔러가며 묻는 미운 네 살 같았다.

-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만…….

난감하게 머릿속을 뒤적거리는데, 곁에 앉았던 아이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황급히 두리번거리는데, 어색하게 그려진 눈썹을 단 아이는 등 뒤에서 갑자기 고개를 내밀었다.

- ! 살았다! 호홋.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소리쳤다.

- 그죠, 난 죽었다가 살아난 거죠, 그죠?

말문이 막혀 허공만 보고 있는 눈앞에서 아이는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의자 밑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 ! 또 살았다, 그죠? 히힛, 이거 재밌는데? 죽었다 살아나기 놀이. 아냐, 죽는 건 재미없어, 살아나는 게 재밌지, 그죠? 그냥 살아나기 놀이, 살아나기 놀이. 호홋.

어이가 없어 킥킥거리는 아이를 물끄러미 봤다. 그런데 아이는 이번에는 의자 밑에서 나와 표를 사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뒤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 커다랗게 외쳤다.

- 아줌마, 아줌마! 이제 내가 어디서 살아나는지 잘 봐요! 호홋!

그렇게 말해놓고 아이는 사람들 뒤로 사라졌다. 나는 또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날 아이를 기다렸다. 누군가의 다리 사이에서, 표를 파는 매표원의 등 뒤에서, 어쩌면 아이는 천장에 매달려 나타날지도 모른다. 남편을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리브의 어깨에 매달려서 나타나거나, 혹은 침묵의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남편의 의족을 붙들고 나타날지도 모르고.

 

지금, 아이는 죽었다.

 

물론 금방 어디서든 살아날 것이다. ‘!’ 하고 나를 놀리며, ‘호홋.’ 그렇게 웃으며. 문득 입가에 웃음이 그려졌다. 분명 지금 아이는 죽고 사라져 이 세상에 없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조금도 두렵거나 슬프지 않았다.

 

- .

남편은 내 얼굴을 뜨악하게 바라보았다. 버스에 오르고서도 그는 리브와 앉는 자리를 놓고 한참 실랑이를 했다. 리브는 남편과 같이 앉으려고 기를 썼고, 남편은 내 손을 꼭 붙들고 놓지 않았다. 그래서 리브가 우리가 앉은 자리 앞에 와 앉으려고 하면, 남편은 또 다시 저 뒷자리로 가버렸고, 리브가 따라오면 다시 앞자리로 내 손을 이끌었다.

- 웃지 마.

남편의 그을린 얼굴은 홍시처럼 발개졌다.

- 이왕 같이 가기로 한 거, 그냥 편안하게 가면 안 돼?

남편은 다시 내게 무어라 긴 이야기를 하려고 돌아앉았다가, 이내 입을 닫아버렸다.

- 정말 쑥스러워 그러는 건 아니지?

- 이 사람이?

- 아니, 리브가 이야기한 것처럼 오빠 정말 쑥스러워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 지금.

- 쓸데없는 소리 말고, !

내게 자라고 말해놓고 눈을 감은 건 남편 자신이었다. 나는 등받이에 모로 기대 발갛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 만약에, 우리 아이가 있었으면 좀 덜 힘들었을까?

남편은 뜬금없는 내 이야기에 고개만 반짝 들었다.

- 뭔 소리야, 그건 또?

-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에 아이가 있었으면 좀 더 씩씩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병 걸린 거, 죽는 거, 그런 거 애들은 모르잖아? 그런 애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그런 생각들 지워버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무심결에 나는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버스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당장이라도 또 어디선가 그 아이가 나타나 살았다!’ 외치며 킥킥거릴 것만 같았다. 지금은 죽어서 세상에 없는 아이.

- 아닌가? 그런 아이가 있었으면 아이를 남겨놓고 떠나야하는 일이 더 아플까?

모르는 데를 더듬는 생각은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 에이, 참 피곤하다니까.

남편은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모로 기댔다. 그 며칠 사이 살이 좀 빠졌을까? 그의 등은 부쩍 작아진 듯 보였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데, 괜히 내 기침처럼 깊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 언니, 언니! 이거 좀 마실래?

리브는 버스 복도에 켜진 흐릿한 등불 밑에서 우유 곽을 들고 나타났다. 낮은 버스 천정 때문인지 그의 그림자는 더욱 거대했다.

- 형부는 자?

눈을 감은 남편을 보고 리브는 금방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분명 자고 있지 않을 것이다. 리브의 목소리가 다가오자, 움찔하는 몸짓이 곁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 , .

그에게 우유곽을 받아들었다. 딸기우유였다. 딸기맛 우유. 나는 또 다시 아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리브의 등 뒤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 아유, 우리 형부 자는 모습도 귀엽다? 호홋!

리브는 남편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어 자는 모습을 살폈다. 자신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온 리브의 체취를 느꼈는지, 남편은 잠결인 것처럼 얼굴을 움직여 아예 팔꿈치 속으로 묻어버렸다.

- .

잔뜩 오그라든 그의 두 다리에서는 불쾌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는데,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리브는 아기를 들여다보듯 웅크린 남편을 이리저리 살피며 킥킥거렸다. 덜컹 버스가 흔들리자 리브는 하마터면 남편의 위로 들고 있던 우유를 쏟을 뻔 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남편의 잠자는 모습에 대해서 속삭였는데, 어쩐지 나는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 ‘, 살았다!’ 하고 외치던 아이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내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버스가 달리는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생각의 주머니가 터진 것일까.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만나는 일도, 마지막 삶을 발버둥 치며 지나야하는 일도, 저 깊숙한 곳까지 나를 끌어내리는 무거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터진 웃음 때문에 나는 부쩍 가벼워지는 듯 했다.

스멀스멀 그려지는 웃음을 감추느라 자꾸 헛기침을 했다. 잠이 들었는지, 든 척을 하는지, 곁에 모로 누운 남편이 내 웃음소리를 들었다가는 또 다시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것이냐, 어깃장을 놓을 것이 뻔한데. 그런데도 웃음소리는 잔기침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텅 빈 딸기우유 곽들을 잔뜩 품에 안은 리브는 길지 않은 의자에 모로 누워 잠이 들었다. 그의 큰 키 때문에 뒤통수는 통로 쪽으로 삐죽 삐져나와 있었다. 뒷자리에 앉았던 중년 여자는 잠결에 눈을 떴다가 그 모습을 보고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러고 나니, 내 웃음은 더욱 커졌다. 예쁘고 고상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잠이 들어 온 몸을 벅벅 긁어대는 모습이나, 드르렁드르렁 코를 곯아대는 모습이나, 정말 가관이었다.

- !

웃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내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리브의 코고는 소리가 짜증스러웠는지, 남편은 몸을 뒤척였다. 나는 서둘러 기침으로 웃음을 감추었다.

- 콜록, , ! 콜록, 콜록, 호홋!

그러는 중에도 내 웃음은 기침 밖으로 아무렇게나 새어나왔다.

- , 왜 그래? 괜찮아?

남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부스스 일어났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려는데, 뒤집어진 리브의 얼굴을 보았던 건지, 남편도 화들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 나니 내 웃음은 이제 아예 퍽 터져버리고 말았다.

- , 콜록, 콜록! 아유, 배야, 왜 이러지? 오빠, 나 미쳤나봐, 그치? 콜록, 콜록! 아유,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호홋!

놀란 남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는데, 드르렁 드르렁 리브의 코고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짜증스러워하는 남편의 얼굴은 흐린 등불 밑에서 우스꽝스럽게 구겨졌다.

- 호호! 아유, 배야. 콜록, 콜록! 아유, 나 정말 정신이 좀 이상해졌나봐? 아유, 아유, 배야. 호호호! 콜록, 콜록.

남편은 웃느라 기침하느라 잔뜩 허리를 구부린 나를 일으켰다.

- 이 사람이?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나를 감싸던 남편의 팔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 위에 드리웠던 그림자가 깊어졌다. 드르렁 드르렁 리브의 코고는 소리는 여전한데, 남편의 목소리가 끊긴 버스 안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나는 웃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미끄덩한 것이 입가에 잔뜩 흘렀다. 침까지 흘리며 웃고 있었다니. 괜히 머쓱해 입가를 닦으려고 손을 올렸다. 그런데, 남편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내 팔을 붙잡았다.

- 호호호! , 왜 그래, 오빠?

그러나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크러지는 남편의 얼굴이 언젠가 내 얼굴과 참 닮아 있었다. 나는 그제야 건너편 창문에 비춘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남편이 붙들고 있던 내 손을 들여다보았다. 양 손 바닥에, 얼굴에 흥건한 내 웃음은 눈이 시리도록 새빨갰다. <15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