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녀의 이름은 안미옥
78년 4월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산에서 제일 좋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신랑은 숙박할 곳을 제대로 예약하지 않아 난감하던 차에, 겨우겨우 신부를 설득해 해운대에 도착했다고 했다. 마침 한창 마무리 공사 중이었던 호텔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호텔 측이 신랑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공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방에 신방을 꾸미게 한 것이, 그들이 이 호텔의 첫 번째 투숙객이 된 사연이라고 했다. 사진 속에는 그 당시의 숙박료 만원과 세금 천 팔백 원이 적힌 영수증이 함께 담겨 있었다. 새치름한 신부와 머쓱한 얼굴을 한 신랑의 젊은 시절 모습도 나란히 같이.
나와 남편이 여기에 왔을 때보다 이십 여 년 전의 일이었지만, 마치 그 때 그 곳에 있던 신랑과 신부가 바로 우리들이었던 것처럼 모든 건 눈앞에 생생했다. 삶이란 옷을 바꿔 입는 계절과 같은 것인지.
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에 커다랗게 구멍을 뚫어 나와 남편의 얼굴을 그려 넣어 본다. 생전 처음 해보는 두꺼운 화장이 불편했던 나와, 억지로 빗어 넘기느라 번들거리는 머리 모양을 가진 머쓱한 표정의 남편. 그렇게 그려놓고 보니, 어느새 내 얼굴에도 사진 속처럼 싱긋 웃음이 그려졌다.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 사진 속에 담겼더라면 이렇게 싱긋 웃는 추억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문득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뻐지라고, 너희들도 사진 속에 담기고 있으니 예뻐지라고 사진을 찍는다던 그의 말.
- 어머머, 왜 화장실을 못 쓰죠?
커다란 호텔 로비를 들어설 때부터 그를 주시하고 있던 경비원들은 여자 화장실 앞에서 또 다시 그를 가로막았다.
- 저 뒤에 직원용 화장실이 또 있습니다. 거기에서 사용하시면 훨씬 더 편하실 것 같아서 안내해 드리는 겁니다.
다행히 그는 정중하게 리브 앞에 고개를 숙였다. 호텔을 이용하는 객실 손님이 아닌 것도 뻔뻔스러운데, 리브는 지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쳤다. 로비에서 전시회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 왜 여긴 안 되는 데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차별하는 건가요? 설마 그 정도 교육도 받지 못한 거예요?
-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화장실이라, 여기보다는 뒤쪽 화장실이 고객님께 더 편할 것 같아 안내해드린 것뿐입니다.
곤혹스러웠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 왜 우린 사람들이 많이 쓰는 화장실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거죠? 이거 인권 침해인거 몰라요? 소수자를 차별하고 멸시하는 인권 침해, 이런 국제적인 호텔에서 설마 그런 것도 교육 받지 못한 거예요!
얼굴이 벌게져 리브의 목소리는 더 악다구니가 되어갔다.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내 뒤에서 전시된 사진을 보던 사람과 어깨가 부딪히고 말았다.
- 죄송합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또 어찌 벗어나나, 곤혹스러워 내 목소리는 어디론가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막아선 그의 발걸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놔 봐요, 이거! 언니! 언니, 저기 우리 언니 있어요! 우리 언니가 다 증명해줄 거야, 놔 봐요!
그러나 리브가 가리킨 곳에서 나는 내 앞을 막아선 사람을 물끄러미 올려보고 있었다. 아이를 만나던 꿈속처럼, 바람에 풀풀 날리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는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예뻐지지 못한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듯, 부쩍 까칠해진 그의 얼굴을 감상한다. 그리고 그의 얼굴 주변에 생각의 연필로 사진 액자를 그려 넣어 본다. 예뻐지라고, 그가 말했듯이 사진 속처럼 예뻐지라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리브에게 해버렸다. 하지만, 말이 태워버리는 담배 개비 같은 것도 아닌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도 해야 할 말을 찾고 있는지, 주저앉은 무릎 밑에 알 수 없는 말들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지웠다. 우리 서로 다른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 그는 얼마나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말들을 혼자서 썼다 지우고, 썼다 지웠던 건지.
지금이라도 시인이 되라고 말해줄까. 시인에게 증명서 같은 것이 배급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동안 시인처럼 예쁜 말만 하며 살았으니 당신은 이미 시인이었다고 말해줄까. 문득 보고 싶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남편의 가방을 열어 뒤지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집어넣던 남편의 가방은 동굴처럼 깊고 컸다.
- 뭐 해?
남편은 그제야 처음 입을 떼었다. 오랜만의 해후를 기념하는 첫 마디.
- 어딨어?
- 뭐가?
- 그거 말이야. 그거.
- 그거 뭐.
고린내가 나는 양말과 속옷이 담긴 비닐봉지, 허름하게 낡은 등산바지 한 장, 셔츠 두 장, 그리고 시영이 아빠가 준 조기 축구회 트레이닝 바지 한 벌. 그런데 그건 없었다.
- 어디다 뒀어?
고개를 들어 그제야 남편의 얼굴을 봤다.
- 뭐가 어딨어?
- 오빠 맨 날 쓰던 공책, 시 쓰는 공책. 오빠 맨 날 나한테 시 하나도 감상할 줄 모르는 반편이라고 놀리고 그랬잖아? 그래서 이제 오빠가 읽어주는 시도 들을 줄 알고, 그럴 듯한 감상도 이야기할 줄 아는 그런 와이프가 좀 되어보려고. 호홋. 안하든 짓 하면 죽으려고 그러는 거라던데, 어쩜 그렇게 옛날 말이 딱 맞니? 신기하네, 그치?
어느새 나도 남편처럼 무릎 밑을 끼적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고 멀리 바다를 봤다. 손에 들었던 작은 돌멩이는 멀리 던져 버렸다. 어차피 바다에도 닿지 못하지만, 그래도 될 수 있는 한 멀리.
- 없어? 안 가지고 왔어? 그럴 리가 없는데? 오빠 가방에는 맨 날 소설책이나 시집 같은 게 들어있었고, 그리고 그게 없더라도 그 노트는 꼭 있었는데.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 그럼 시 하나 들려줘봐. 오빠 외우는 시. 이제는 내가 뭐라 안 그럴게. 이렇게 바다보고 있으니까 오빠가 들려주는 시가 듣고 싶네. 해봐, 응?
그러나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시가 떠오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며칠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진 것일까. 낮은 한숨을 내쉬는 것 같더니, 드디어 그의 입이 열렸다. 시를 웅얼거리듯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흔들렸다.
- 안미옥이래.
- 응?
- 장모님 이름.
모래 속에서 불쑥 샘이 솟을 듯 했다. 남편이 했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건 남편도 처음 해보는 말이었을 것이다.
- 너희 어머님, 안미옥이래. 안, 미, 옥.
말을 처음 배운 사람처럼 남편은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아무리 어려운 시를 말해주더라도 이번에는 끝까지 듣고 이해하는 사람의 흉내라도 내려고 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과,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더라도 투덜거리거나 어깃장을 놓지 않겠다, 다짐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이번에 그가 내게 건넨 시는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난해한 것이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알 수 없는 말들이었던 건 아닌데, 오히려 그건 내 이름을 닮아서 너무 익숙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은 가슴에 와 닿지 못하고 둥둥 떴다. 오랜만에 남편에게서 들은 너무도 쉬운 시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내게는 너무 어려운 시였다.
남편은 그 당시 보육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직접 받고 함께 지냈던 홍 선생님을 찾아갔다고 했다. 이제는 수녀님이 되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를 하신다는 그녀는 얼마나 그악스럽게 울어댔던지 그 때의 나를 꽤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셨다고 했다. 그 때 내가 ‘안미옥’이라는 이름을 내내 외쳤다고 했는데,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그 이름을 가진 여자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 이름도 그 이름을 따, 안순옥이 되었다고.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것이 집게에 집힌 고지서 같은 것이어서 언제든 들춰볼 수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것은 돌아서다가 주운 옛날 물건 같았다. 옷장 밑을 긁어내다가 찾은 오백 원짜리이거나, 지갑 속에 깔려 있던, 납부기한이 지난 체납통지서처럼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물론 대부분 시뻘건 줄이 그어진, 후회를 독촉하는 체납통지서 같은 기억들뿐이었고.
리브는 남편과 앉은 점심 식탁 위에서도 계속 떠들었다.
- 이게, 편견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라고요!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일들 속에 이미 발길질이나, 주먹질이나 다들 하고 사는 거란 말이지.
그의 입에서 밥알이 아무렇게나 튀었다.
- 편견이라는 건 정말 아무도 모르게 우리들한테 스며드는 거야. 왜, 그 피부 자외선 있잖아요? 우리 피부의 자외선도 보이지만 않았지 얼마나 나쁜 영향을 우리 몸에 주고 있는 거냐고요? 그래서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너나나나 선크림 안 바르면 큰일 나는 줄 알잖아?
여전히 엉뚱하게 어긋나는 그의 말은 사람들 속에 숨어드는 편견과, 피부 위에 숨어드는 자외선의 문제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었다.
- 여기, 여기, 이 피부를 통해 들어오는 자외선이라는 게…….
남편의 볼 위에 리브가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벌레라도 떼어내듯 그의 손을 팽개쳤다. 리브의 얼굴은 단번에 굳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내 호호 웃었다.
- 호홋, 우리 형부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시는 구나? 에이, 안 그러셔도 되요. 언니랑, 나랑은 이번 여행으로 친 자매 같은 사이가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형부도 예쁜 처제 대하듯 그렇게 편안하게 대해주시면 되요. 제가 다니는 피부 관리 센터가 있는데 언니랑 형부랑 언제 한 번 제가 근사하게 모실게. 마사지도 좀 받으시고, 레이저 치료도 좀 받으시고, 주사 살짝 맞아주시면 단번에 십 년은 젊어 보이시는데. 여기, 여기에도 맞고, 여기에도 한방 맞아 주시면…….
그러나 또 다시 리브의 손이 다가오자 남편은 아예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그리고 들고 있던 젓가락을 그릇 속에 팽개쳤다.
- 어머머, 우리 형부 너무 터프하시다, 호홋. 남성적인 매력이 정말 철철 흘러넘치시는 게……. 아유, 우리 언니처럼 매력 없고 심심한 여자한테는 정말 과분하다, 과분해! 호홋!
리브는 두 손을 모으며 탄성을 이어갔지만, 남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기우뚱거리는 발걸음을 감추지도 못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킥킥거렸고, 그건 마치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 같았을 것이다. 물론 그런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리브는 여전히 경탄에 마지않는 눈빛이었다.
- 같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남편은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그런 그의 눈빛은 좀 생소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의 눈빛이나 말 속에는 적막 같은 게 흘렀던 것 같은데. 그건 어쩐지 평화로움과 닮아 있었는데. 그러나 리브와 같이 여행을 해야겠다는 내 이야기에 남편은 불같이 일어났다. 당장 정신을 차리라고 뺨이라도 후려칠 기세였다.
- 며칠 동안 내가 신세진 것도 많고, 쟤도 만나야할 사람이 있다고 하고.
에둘러대는 내 말은 아무렇게나 흐느적거렸다.
- 만날 사람? 누구?
그러나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던 ‘파트너.’라는 말은 아무리 남편이 시인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괴하고 자칫 소름끼치는 말이 될 것이다.
- 저 놈도 부모한테 버려졌대?
- 오빠.
- 저 놈도 죽을 날 받아놓고 마지막으로 자기를 버린 부모 얼굴이나 봐야겠다고 뛰쳐나온 놈이냐고?
이번에는 아예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물음은 지금 대답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구토처럼 그는 자신의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의 역류를 그저 쏟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 가, 지금 당장 들어가서 가방 가지고 나와.
- 오빠.
- 왜? 돈이라도 빗진 거야? 그럼 내가 지금 당장 은행에 가서 찾아다가 갚아 줄 테니까, 당장 가방 들고 나와!
- 오빠!
- 어서! 안 가지고 나와!
그의 말은 점점 악다구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 오빠 왜 이래? 오빠, 이런 사람 아니잖아? 요즘 정말 왜 이래?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을 만큼, 이해심 많고 생각 많은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냐고?
- 됐어! 저런 자식 이해할만한 생각 같은 건 없어. 그런 쓸데없는 거 이해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그러니까 잔말 말고 가서 가방 가지고 나와. 저 자식이야 어디로 가든 말든, 이제 나랑 다니면 돼! 나랑 다니면 되니까 저런 자식이랑 같이 다닐 필요 없어. 그러니까 조용히 들어가서 가방 가지고 나와.
식당 안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이 흔들렸다. 리브는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에서 어떤 꽃을 본 건지,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 오빠, 저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야.
- 불쌍해?
남편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불쌍하다는 말이 어떤 칼인지, 남편은 심장을 찔린 사람처럼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 불쌍하다고? 저 놈이?
그는 울먹이고 있었다.
- 그만, 그만, 오빠. 그만, 그만해.
남편의 들썩이는 몸을 끌어안았다.
- 불쌍한 게, 불쌍한 게 뭔지……. 저 놈이 알기나 해? 저 놈이, 저 놈이 불쌍한 게 뭔지, 그게 뭔지……. 흑!
남편은 구토를 하듯 입을 막았다. 취객처럼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울고 있던 건 언제나 남편의 등짝이거나 뒷머리였는데, 꿈속의 아이처럼 내가 볼 수 없는 그런 뒷모습뿐이었는데. 이렇게 내 품에 안겨 우는 그를 나는 처음 보았다. 울고 있는 남자의 어깨가 이렇게 작고 안쓰러운 건지 미처 알지 못했다. 불쌍하다는 말은 틀린 말이었을까. 틀린 말이 아니라면 그건 나쁜 말이었을까.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사람으로 폄하시키고야마는 그 이기적인 말.
불쌍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고맙다고 할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 왔다. 미안하다, 라고 말하지 않고 고맙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반갑고 고마운 사람이라고.
토닥토닥 아이를 달래듯 남편의 등을 두드렸다. 그런데도 남편의 흐느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불쌍하다는 말 한 마디로 얼마나 많은 아픈 시를 떠올리고 있는지.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내 사람. <1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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