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줄무늬 물고기
문득 그에게 필요한 건 그냥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그저 그를 사랑하고 그를 떠나지 않을 든든한 사람.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가 하는 생각들을 믿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런 사람.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고, 음악이 없는 춤이라도 같이 출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래서 그가 찾고 있던 것은 애인이나, 남자친구가 아니라 ‘파트너’였을까.
- 언니, 언니! 나 죽이지?
화장실에서 나온 그는 속이 훤히 비치는 긴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오늘은 제모라도 했는지 모르지만, 갈라진 스커트 자락으로 까슬까슬한 털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건 마찬가지였다.
- 아, 참! 모자, 모자!
분홍색 캐리어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 커다란 챙을 가진 모자는 한쪽이 구겨졌다. 흰 셔츠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 싸구려 선글라스도 어디에 깔렸던 건지 한쪽 다리가 틀어졌고.
- 오케이, 됐어! 가자, 바다!
이번에는 깔깔거리며 웃지 않았다. 바다를 가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막힘없이 탁 트인 바다의 모습은 첩첩산중이었던 삶을 살았을 그에게 어쩌면 가장 간절한 것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공연이라도 하려는 광대를 바라보듯 리브를 신기해하다가, 이내 끌끌 혀를 찼다. 물론 리브는 신경 쓰지 않았다. 좀 더 바다 쪽으로 가까이 가는 버스를 탔는데, 그건 우리가 놓쳤던, 의정부에서 익산을 거쳐 군산으로 가는 직통버스였다.
삶이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런 것들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게 계속되는 깜짝쇼를 견디며 무뎌지는 일이 사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 어머머, 기가 막혀! 뭐니, 이건?
맞다, 여기는 바다. 넘실대는 물결이 보이고 끼룩끼룩 갈매기가 날고 있는 그 바다, 맞다. 그런데 그건 리브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바다였다. 널따란 해변이 펼쳐져 있는 대신, 진흙바닥에 생선을 담았던 상자들과 바닷물에 쩐 부표들이 여기저기서 썩어가고 있었다. 외롭게 드문드문 떠 있는 섬 대신, 방파제 시멘트 구조물들이 눈앞을 떡하니 가로막았고, 겹겹이 쌓인 어선들 위에서 어부들은 킬킬거리며 리브의 꼬락서니를 구경했다. 알고 있다. 한 번도 생각했던 대로 되어지지 않던 그런 삶. 알고 있다.
- 정말 센스 없는 사람들 천지라니. 아니 그 아저씨는 이런 꼴로 바다를 가자고 했으면 근사한 백사장이 있는 바닷가를 데려다가 줘야지, 여기는 뭐니, 여기는? 이런 꼴로 갈치, 고등어 배라도 따고 내장이라도 긁어낼 줄 안거니? 아니면 사내들과 섞여 으쌰으쌰 그물이라도 끌어당길 것처럼 생겼던 거야, 내가? 허이고, 기가 막혀! 으유, 정말 센스 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으유!
리브는 모자를 벗어 물어뜯었다.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긴 스커트 자락은 진흙탕에 끌려 엉망이 되어 갔고, 공들여 발랐던 발가락 매니큐어는 공판장에서 흘러나온 썩은 물로 새까매졌다. 얼결에 바닥에 누워 있던 손바닥만 한 생선을 밟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생선이 퍼드덕 발밑에서 튀었다.
- 으아아아악!
질겁하며 리브는 비명을 질렀고, 재미있다는 듯 구경을 나온 어부들이 삑삑 휘파람을 불며 킬킬거렸다.
다시 군산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 왔을 때, 리브와 나는 이미 진흙구덩이에 땀범벅이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가뜩이나 리브의 차림새를 보며 뒷걸음질을 치던 사람들은 이제 아예 코를 틀어막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리브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도망을 치는 사람들은 그물을 피해 다니는 물고기 같았다. 리브는 그 물고기들을 모는 어부 같았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는 리브를 보며 대합실 나무 의자에 앉았는데, 건너편 의자에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는 손에 연필 하나와 활짝 편 노트를 들고 있었다.
사람의 기척이 들리자 아이는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손에 든 작은 노트를 사람들 앞에 내밀었는데, 물고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아이를 피해 우르르 도망쳤다. 아이가 다가가면 다시 도망치고, 물끄러미 서 있으면 뒤에서 수군거리며 뒷말을 주고받는 사람들.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리브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이는 이번에는 리브에게 달려갔다.
- 이게 뭐니?
마스카라를 다시 칠했는지 리브의 눈꺼풀에서 검은 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 서명 좀 해주세요.
- 됐어, 바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이도 지지 않았다.
- 누나, 누나! 그러지 말고 서명 좀 해 주세요.
놀랐던 건 리브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 뭐……라고?
- 서명 좀 해달라고요.
- 아니, 그 전에 말이야, 그 전에.
아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 그 전에는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냥 누나가 서명 안 해주고 가니까 누나한테 서명 해달라고 그런 건데.
멀리서도 리브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그는 함께 춤을 추었던 그에게 처음 ‘누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 흠, 흠. 근데 누나는 이름이 없는데.
‘리브 킴’이라고 소리치던 그 모습과는 분명 달랐다. 무언가를 꿀꺽꿀꺽 삼키며 그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 이름이 없어요?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 되물었다.
- 응, 아직은. 이런 거는 서류에 있는 진짜 이름 쓰는 거잖아, 그치?
- 네.
- 근데 누나는……. 누나는 아직 이름이 없어. 아직.
그가 하고 싶은 말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말들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듯 했다.
- 네,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누나.
아이는 리브의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만이었다. 이름이 없다는 말에 한번쯤 거짓말이라고 외칠 법도 한데, 그토록 여러 사람에게 외면을 당한 터라면 섭섭함 때문이라도 이름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소리를 칠만도 한데 아이는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 잠깐, 잠깐만! 이리 와봐!
리브는 돌아서는 아이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 언니, 언니! 이거, 이거 좀 써줘.
리브는 아이에게서 노트와 연필을 빼앗아, 내게 내밀었다.
- 여기, 언니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하고 주소하고, 그런 거 적어. 언니는 그런 거 있지? 그치? 그러니까 빨리 적어. 언니 남편 것도 알지? 그럼 그것도 적고.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듯 했다. 생각 같아서는 아이 대신 사람들에게 일일이 쫓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처럼 자신도 물고기를 몰아내는 어부의 꼴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렇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머릿속 희미한 남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떠올리며 연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누나라고 불러 준 리브의 고마움을 담아 정성스럽게 이름과 신상정보를 적어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득 몇 개 채워지지 않은 칸 위에 삐뚤빼뚤 적혀 있는 아이의 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름을 적던 연필 끝이 툭 꺾였다.
- 어머, 이 언니 뭐 그렇게 세게 눌러 써? 연필 더 없니? 없어?
마음이 급한 리브는 아이의 작은 가방을 뒤적이고 있었지만, 나는 어떤 연필이라도 그 위에 이름을 적어 넣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름을 가진 누구라도 그건 적을 수 없을 듯 했다. 그건 한 줄의 문장으로 증명할 수도 없는 말이었고, 쉽사리 확인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고개를 들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거짓 없고 순수한 아이의 눈망울. 아이의 작은 입은 금방이라도 노트 위에 적힌 것처럼 그렇게 중얼거릴 것만 같았다. ‘우리 아빠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라는 말을.
- 여기 있다, 연필! 자, 언니! 빨리 써, 빨리!
그러나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아마 이름이 있는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투명한 유리상자 위에는 ‘제브라 다니오’라고 씌어 있었다. 검은 색의 긴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들은 어항 밖의 세상일이야 어쨌든, 그 속을 제법 여유롭게 유영했다. 그러나 유리 상자 바깥의 작은 방은 내장을 드러낸 물고기처럼 모든 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빨지 않아 때에 전 옷 가지들과 밥그릇들이 뒤엉켰고, 던져진 가방 밑으로 넘어진 물병이 쿨럭쿨럭 물을 쏟고 있었다. 아이는 방에 들어서자 익숙한 모습으로 엉킨 것들을 발로 스윽스윽 밀어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 이름이 뭐니?
- 없어요, 이름 같은 거.
물고기가 들어있는 어항에 눈을 두고 물었더니 자신에게 묻는 말인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익숙하게 게임을 실행시켰다. 그러고는 곧 삐용삐용 소리를 내는 구부러진 등이 되었다.
- 언니, 언니, 잘 됐지, 그치? 돈도 절약하고 잘 됐잖아, 그치?
‘누나들이 가서 자도 돼?’라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건,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잠이 들고 혼자서 깨어야하는 시간들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기를 떠날 수 없었던 건 분명히 아빠가 돌아올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팽팽 돌아가고 있는 입간판이 떠올랐다. 아이가 붙들고 있는, 삐용삐용 소리를 내는 화면 속으로 무언가 틀린 글자가 뱅뱅 돌아가고 있을 것만 같았다.
- 친척들은 없니?
하지만, 떠난 것들이 돌아올까. 이미 내 것이 아닌 것들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 일일까. 괜히 화가 치밀었다. 아이를 이 끔찍한 구석까지 몰아낸 시간이 억울했다. 원하지도 않는데 시간에 휩쓸려 엉켜버린 아이의 꿈들이 내 것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 물고기는 누가 갔다 줬니?
- 일주일마다 한 번씩 오는 보호산가, 심리치료산가, 뭔가 하는 여자가 갖다 준거라던데? 차라리 개새끼 한 마리를 가져다 줄 일이지, 저게 뭐야, 저게? 게다가 줄무늬? 무슨 죄수복 입은 물고기도 아니고. 아야야!
철퍼덕 주저앉은 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생각 없이 내뱉는 그의 말은 여전했다. 삐용삐용 소리를 내던 아이의 등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유리 상자 안을 유영하는 물고기를 들여다보았다. 그 조그만 공간 속에 누구를 떠올리는지는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아야야! 이 언니는 왜 꼬집고 그래? 영락없이 맞는데 뭘? 어떤 심술 맞은 인간이 너희 아빠 그런 꼴로 갇혀 있다, 이런 너희 아빠 꼬라지를 너도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다,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는 것 같은데 뭘!
- 너, 정말?
이죽거리는 그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래도 제 잘못을 모르겠는지 그는 커다랗게 그려진 입술만 삐죽거렸다. 생각 없는 말 몇 마디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러운데, 물끄러미 유리 상자 안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다시 컴퓨터 화면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 밥 먹자, 아줌마가 밥 해줄게.
그러나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말을 잃은 아이의 구부러진 등은 여전히 삐용삐용 대답할 뿐이었다.
텅 빈 냉장고 안에서는 모든 것들이 썩고 있었다. 노란 불을 켜고 윙윙 돌아가고 있었는데, 냉장고 바깥보다 안의 냄새가 훨씬 더 고약했다. 계란이라도 한 줄 사려고 슈퍼에 들어섰다. 그랬더니 주인 여자는 기묘한 표정으로 아이와 어떻게 되는 사이냐고 물었다. 확실하게 누구다, 말을 하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봉사하러 오신 양반들이냐, 그녀는 자신이 먼저 대답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아이의 사정이야기를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금고를 만드는 공장을 다니다가 사고로 사람을 죽이게 된 아빠의 이야기에서부터, 그래서 가족들을 데리고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아내와 어린 딸아이는 죽어버리고, 정작 아이 아빠와 아이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이야기까지.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이 그 집이 터가 세서 그렇더라고 덧붙였다. 그 집이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식구들도 귀신이 씌워 여자가 미쳐버렸고, 아이들마저 줄줄이 시름시름 앓다가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한번 하면 되는 일인데, 날마다 쌀이며 물건이며 해다 나를 일이 아니라 굿을 한 번 하면 될 일을 저렇게 이사 오는 집들마다 족족 박살이 나게 하는 바보짓을 이해할 수 없다고 혀를 끌끌 찼다.
애써 귀를 막으며 계란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계란 한 줄을 들고서도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제 애비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사람들 서명을 받으러 다니는 모양인데, 그래야 애비가 정상참작이 되어서 형을 조금 낮게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이 지워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 목소리를 높였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사람을 셋이나 죽인 건 죽인 것이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는 어딘가 익숙했다. 다 필요 없다, 무조건 용한 무당을 데려다가 굿판을 벌이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시급한 일이다, 그렇게 그녀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참으로 객관적이지 못한 결론으로 끝이 나버렸다.
계란을 받아들며 돈을 내밀기가 싫어졌다. 어쩌면 초등생 아이를 붙들고도 그런 이야기를 했을 생각을 하니, 당장에 계란을 그녀의 발밑에 팽개치고 싶었다.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악다구니를 끅끅 집어삼키며 나는 겨우 그 곳을 빠져나왔다.
타인의 절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두 가지다. 동정하거나, 외면하거나. 조금이라도 그 절망 곁에 다가간 사람들의 시선도 역시 두 가지 뿐이다. 정작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을 당사자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탓하거나, 어이없게도 신의 탓을 하거나.
더욱 끔찍하고 진안한 것은 그것마저 신의 뜻이라고 위로할 때다. 네가 겪고 있는 고통들도 결국 신의 뜻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는 거라고. 신의 뜻을 이해하고 나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의 위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 이게 뭐니?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을수록 더 깨끗하게 씻고, 더 깨끗하게 입고 그래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지 않지? 이러면 지는 거야!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그대로 되고 마는 거라고!
역겨웠다. 위로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그저 역겹게만 느껴졌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틀을 벗어버릴 수 있는 위로가 무얼까. 부모의 손에 의해 버려진 아이라는 껍데기를 지워버릴 수 있는 위로가 무얼까.
- 빨래할 건 한군데다가 차곡차곡 쌓아놓고, 일주일마다 한 번씩 봉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집도 치워 준다면서? 근데 이게 뭐야, 이게! 이제 중학교도 들어갈 텐데, 자기 방 정도는 자기가 청소하고 그래야지!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하고 살아, 알고 있니?
방안 구석에 쌓여있던 것들을 끌어내며 내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다 필요 없다.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도 내내 위태로울 것이 너의 삶이다. 쓸모없는 감상이나 순수함 같은 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지독함만이 너를 살게 할 것이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혀를 내두르게 하는 오기만이 너를 생존시킬 것이다. 터져 나오는 악다구니 사이로 그런 말들이 촘촘히 박혔다.
- 언제까지 이렇게 사람들이 도와줄 줄 아니? 보육원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끝까지 너희 아빠를 기다릴 거라면서? 당당하고 멋지게 커서 아들 노릇하는 네 모습을 아빠한테 보여줄 거라면서? 그게 이 정도니, 그 다짐이 이 정도야!
나는 어느새 마당에 쌓인 빨랫감들을 집어던지며 발로 마구 짓밟고 있었다.
- 어머머, 언니 무섭게 왜 그래? 애가 뭘 잘못한 게 있다고? 부모 없이 크는 애들이 다 그렇지, 이 쪼그만 게 뭘 할 수 있겠어?
화장도 하지 않고 수염자국이 시커먼 턱을 문지르며 리브가 문 밖으로 나섰다. 화난 얼굴로 쪽마루에 서있는 아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 누가 그래? 부모 없는 애들이 다 그렇다고 누가 그러냐고? 저렇게 쪼그만 아이가 아픈 할아버지 할머니 병 수발하고, 동생들 뒷바라지까지 하는 거 TV에서 안 봤니?
뭉개진 빨랫감들을 끌어안고 수도꼭지로 다가갔다. 마당 한 구석에 솟아있는 그것은 물을 뿜어본지가 언제인지 까만 흙 때가 엉겨 있었다. 물을 틀기 위해 수도꼭지를 비트는데, 새빨갛게 녹이 슨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누가 그래? 부모 없는 애들이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누가 그랬냐고? 도대체 누가……. 익!
그러나 수도꼭지는 단단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가락 사이에 시뻘겋게 피가 몰렸다. 달아오른 건 손가락인데, 자꾸 얼굴이 뜨거워졌다. 순간 날을 세운 생각들이 아무데서나 솟구쳤다. 벌게진 얼굴을 들고서 벌떡 일어섰다. 입을 벌리자 생각지도 않은 말들이 마구 쏟아졌다.
- 넌 뭘 아니? 네가 뭘 알아서 그런 소리를 해?
아이를 껴안고 있는 리브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 너희 아버지 교수였다면서? 그 병원 원장이랑 친구지간이라면서? 너희 부모가 대주는 돈으로 대학까지 다니며 공부해놓고 그 꼴로 살고 있으면서,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니? 당장 죽어 넘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수술을 할 돈이 있으면 나 같으면 먹고 사는 데 보태느라 정신이 없을 거다, 알고 있니? 여자니, 남자니, 그런 거 생각하며 살만큼 사는 게 만만한 줄 아니? 다 먹고 살만 하고 편안하니까 그 따위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 거지? 내 말이 틀려, 틀리냐고!
한참을 그렇게 소리쳤지만 나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둑이 터지듯 그저 한순간 무언가 쏟아져 나왔을 뿐이었다. 아이의 어깨를 쥔 리브의 손이 떨렸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그의 입이 힘없이 벌어졌다. 근데 왜 자꾸 이렇게 눈물이 고이는지. 그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뿐인데, 애들처럼 왜 이렇게 눈물이.
- 세탁기는 저 뒤에 있어요.
아이는 리브의 손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와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던져진 옷가지들을 끌어 집 뒤로 옮겨갔다. 아이의 걸음걸이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제 할 일들을 하고 있을 뿐. 잠시 후, 동작 버튼이라도 눌렀는지 쏴하며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나는 리브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한참을 그렇게 물끄러미 섰다. 벌게진 얼굴로 서 있는 나와 리브를 방안의 줄무늬 물고기들은 줄을 서서 넘겨보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건 가식의 껍데기를 벗어버린 내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허겁지겁 다시 껍데기를 둘러쓰는 내 형편없는 모양새를 그는 금새 알아차릴 것이다. 처음부터 그도 나처럼 동감이나 이해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린 그저 똑같은 곳을 향해 함께 걷고 있을 뿐.
쪽마루에 걸터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는 요강처럼 꼴사나운 모양새를 하고 있는 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다시 활짝 편 노트를 집어 들고 나왔다. 아이는 무어라 말도 없이 운동화를 꿰어 신고 지붕 밑을 빠져나갔다. 리브와 함께 나선 건지, 그의 기척도 아이를 따라 사라져버렸다. 도무지 왜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없는지, 왜 나는 언제나 가장 지독한 구석에서 고개를 들고 후회를 해야 하는 건지. 더 이상 눈물이 새지 않도록 팔뚝으로 두 눈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조금씩 잠 속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도 거기 있었다. 내가 그려준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채 그대로였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이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괜찮으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다시 그렇게 환한 웃음을 보여 달라고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다가서자 다시 성큼 도망쳤다. 분홍색 원피스 자락과 꽃냄새는 여전히 향기롭게 내 쪽으로 흘러왔지만, 아이는 또 다시 등을 돌린 채였다.
- 안 돼, 가지 마!
또 다시 아이를 쫓아 다가섰지만, 아이는 다시 그만큼 도망쳤다. 그러고는 허공 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안 돼, 가면 안 돼!
아이를 쫓아 달리는데, 안개 속 같던 허공 속에서 거대한 건물이 드러났다. 아이는 제 집인 듯 모퉁이를 돌아 그 건물 뒤쪽으로 사라졌다. 황급히 아이를 따라 돌아서는데, 텅 빈 승강장이 눈에 들어왔다. 목적지가 지워진 간판들이 기우뚱 매달렸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뼈대만 드러낸 채 저만치에 서 있었다.
- 어딨니? 어딨어?
텅 빈 승강장으로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아이를 불렀다. 그러나 어디에도 아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허공 속에서 나를 태우기 위한 버스가 스르르 다가올 것만 같았다. 오금이 저렸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 제발 어딨니? 어딨는 거야? 제발…….
어느새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자꾸 구겨졌다.
- 힝.
등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린 건 그 때였다. 돌아보니 아이의 뒷모습은 건물 입구에 우뚝 섰다. 내가 돌아서자 아이는 한 발 더 건물 속으로 다가섰다. 아이가 들어간 건물 속은 새까맸다. 어찌나 까만지 그림자만으로도 아이의 분홍 원피스는 순식간에 검은 가루를 뒤집어 쓴 것처럼 보였다.
- 안 돼!
나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의 손목을 붙들었다.
- 안 돼, 가면 안 돼!
그러나 아이는 검은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조금씩 안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안 돼, 안 돼! 익!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끌어 당겼다. 아이의 팔꿈치는 장난감처럼 뒤로 꺾였다. 아이의 몸은 조금씩 검은 허공 속으로 삼켜지고 있었다. 초록색 머리띠가 검은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뭉개지고, 원피스자락이 아무렇게나 구겨지며 새까매졌다.
- 익! 안 돼! 절대 안 돼!
어느새 내 몸도 검은 허공 속으로 질질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 악! 안 돼! 악!
온 힘을 실어 아이를 끌어 당겼다. 이제 아이의 모습은 검은 허공 속으로 모두 사라져 팔 하나만 주욱 빠져나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온 힘을 다 해 팔을 잡아 당겼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악문 이 때문에 턱이 아렸다.
- 안 돼!
비명이 온 건물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자 아이의 몸뚱이가 조금씩 내 쪽으로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조금만, 익!
아이의 어깨가 드러나고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제야 내 얼굴도 조금씩 환해졌다.
- 그래,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검은 허공 속에서 아이의 머리가 딸려 나왔다. 쏟아지듯 머리 하나가 밖으로 떨어졌다. 어둠 한 가운데 덜렁 매달린 얼굴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건 아이가 아니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의 노파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악!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피가 터져 나오도록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는 내 쪽으로 노파는 검은 허공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고 있었다. ‘순옥아, 순옥아!’ 그렇게 내 이름을 부르며 그건 검은 허공에 매달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발버둥을 치듯 몸을 일으켰다. 있는 힘껏 승강장 밖으로 뛰었다. 순옥아, 순옥아, 내 이름을 부르는 노파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귀를 틀어막은 채였다. 천둥이 치듯 안개 속 같은 허공 한쪽이 밝아졌다. 그리고 네모 낳고 기다란 것이 내 앞에 천천히 다가왔다. 앞 유리에 매달린 번쩍이는 푯말이 천천히 다가오며 점점 커졌다. 그 위에는 손 글씨로 커다랗게 ‘장항’이라고 씌어 있었다.
눈을 떴다. 가슴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는 온 몸으로 물이 새고 있는 건지 얼굴이며 몸이며 온통 땀범벅이었다.
- 리, 리브야, 리브야!
있는 힘껏 리브의 이름을 불렀다. 분명히 보았다. 거기,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그 사람, 분명히 보았다.
- 리브야!
장항이었다. 장항터미널이라면 여기에서 멀지 않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은 그래서 나를 이곳까지 이르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마지막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내가 모르는 시간의 의미를 알게 하려고.
나는 있는 힘껏 밖으로 내달렸다. 신발이 벗어졌고, 낮은 지붕에 이마를 부딪쳤지만, 희망으로 가득 찬 내 얼굴은 달빛처럼 반짝였다. 괜한 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건 이제는 없다.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달려 내려가는 시골마을 한 가운데 깜빡 불이 켜졌다. 신의 뜻을 말하듯 그건 새빨갛게 반짝이며 서로 엇갈려 있었다. <11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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